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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린 Jun 13. 2023

머나먼 코펜하겐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된 사연

인생사 새옹지마가 동양에서만 통용되는 건 아니더이다

덴마크에서 살 집이 없다고?


우리 교환학생들은 보통 기숙사를 배정받는다. 정해진 날짜에 원하는 기숙사를 선택해서 신청서를 작성해 보내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외국의 웹사이트는 UI나 버튼 같은 것들이 생소하기 때문에 나는 함께 코펜하겐으로 떠나게 될 다른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어 고민한 끝에 기숙사 지원을 완료했다. 이걸 밝혀두는 이유는, 과정 상의 미스가 없었음을 미리 일러두기 위함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결과 메일을 받고서 나는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 죄송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기숙사를 배정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살 수 있는 기숙사가, 코펜하겐에 없다고?

가뜩이나 추운 나라인데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건가?

그럼 학교 도서관에서 노숙을 해야 하나?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 이러한 사태는 나의 체류 기간이 짧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교환학생들이 1년 간 해당 국가에 체류하는 데 비해, 나는 이런저런 경제적 여건 및 상황으로 딱 6개월만 지내기로 얘기가 됐는데 기숙사에서 단기 체류자의 신원이 확실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다른 학생을 우선적으로 선발한 것이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듯 같은 모교에서 파견된, 다음 해까지 체류할 예정인 학생들은 순탄히 기숙사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솔직히 억울했다. 이미 기숙사 배정을 위한 행정 처리 비용으로 이미 25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게 이해도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머나먼 유럽 땅으로 떠나기까지 10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그 곳에서 살 집을 찾을 수 없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회신을 보내도 받을 수 있는 답은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화가 났지만 원래 덴마크를 포함한 북유럽의 일처리가 느리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데다, 지구 반 바퀴 만큼 떨어진 나라에선 손 놓고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입국을 위한 행정 절차는 그것대로 또 밟아야 하는데다, 비자 발급도 꽤 딜레이가 되어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째서 왜 시작도 전에 문제부터 줄줄이 소세지로 생겨나는지.


몇 주가 지난 뒤 학교에서 내놓은 해결책은 홈스테이였다.

썩 내키는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거절한다면 알아서 집을 찾아봐야 한다고 하도 으름장을 놓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본인들이 오퍼 안 내줘놓고 한 번 더 공실 확인해달라는 문의도 하지 말라는 기숙사 행정 Class..



뒤이어 받은 메일에는 호스트의 전화번호와 이메일만 달랑 적혀 있었다.

집세도 자세한 위치도,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내용에 당황했지만 우선 Call부터 먼저 해 보라는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생에 처음으로 국제전화를 걸던 날이었다.


나의 호스트인 Eva는 혼자 사는 미망인이었고, 나는 그녀의 첫 홈스테이 게스트였다. 그래서 그런지 걱정했던 것보다 월세도 합리적이었고 (사실 내가 민간 거주지를 알아봤을 때 집세가 워낙 비쌌기에 더욱 다행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크게 걸리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이메일로 필요한 정보 -계약에 필요한 인적사항과 방에 대한 사진- 를 주고받기로 한 채 그 날의 짧은 통화는 막을 내렸다. 좋은 예감까진 아니었어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화였다.


Eva가 보내준 집의 사진들. 20190607


그렇게 나는 코펜하겐의 남쪽 구역, Sydhavn의 한 작은 동네에 혼자 살던 Eva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너무도 다른 두 삶의 공존


다소 우당탕탕 시작된 우리의 동거였지만 지금은 그 기회가 내게 온 것을 아주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처음에는 역시 뭐 하나 순탄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손에 쥐었던 행운 중 가장 값진 것이었다.

만약 그 때 내가 겁나는 마음에 홈스테이 오퍼를 거절했다면, 코펜하겐에서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살며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해 나열해 보겠다.

주1회 이상 함께 하는 저녁식사, 현지 적응을 위한 동네 가이드, Eva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티타임,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 (2회), 마을 플리마켓 및 여름 축제 참여, 데니쉬 쿠킹 클래스, 현지인과 함께하는 덴마크 예능 시청, 덴마크에서의 생일상차림, Too Good To Go 앱 소개, 요가 소모임 체험, 책 선물, 자전거 대여, 공항 픽업.

이 모든 것들을 오로지 그녀의 호의 덕에 대가 없이 누릴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한국에서 출국할 때 그녀에게 줄 한국식 선물을 준비하고, 적당히 교류하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러나저러나 국제 사회에서 한국인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보니 그녀에게 괜찮은 하우스메이트였-다고 믿-겠지만 그렇다 해서 삶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은가.

한국에서 온 스물셋의 나와 유럽에서 줄곧 살아온 60대의 할머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의 자취를 걸어온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나 그래서 더 특별한 시간이었다.

도무지 맛을 느낄 수 없는 데니쉬 소울 푸드를 애써 웃으며 먹던 내 심정을, 고추장 돼지고기 찌개를 처음으로 먹어본 날 그녀도 똑같이 느꼈을까 상상해보면 웃기고.

처음 Eva를 마주한 날 나는 원시교정용 안경 덕에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제법 무서웠는데,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친 내 흑갈색 눈동자는 어땠을지 궁금해지고.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제법 한 집에서 잘 지냈다 싶고.

여전히 간간하게 서로의 안부를 애틋하게 묻는 걸 보면, 이제야 우리가 꽤 괜찮은 조합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거지.


그녀와의 첫 식사, 그리고 문제의 고추장 돼지고기 찌개 (맛있었다고 했지만, 진짜일까?)


덴마크에서 돌아온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녁 식사를 끝낸 뒤 함께 창 밖을 구경하던 고요한 티타임이 그리워지는 걸 보면, 그 곳에서 얻은 진정한 행복은 그런 평온함이었다.





그래서 홈스테이, 추천하나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홈스테이를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추천한다해도 그 뒤에 꽤 많은 조건이 붙는다.


사실 나는 지극히 특이 케이스다. 교환학생 뿐만 아니라 워킹홀리데이로 덴마크를 찾은 이들 중에서도, 나처럼 장기 홈스테이를 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호스트를 찾을 것이며, 그의 신원을 한낱 외국인인 내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첫 번째 난관에서부터 가로막힐 것이다. UCC라는 공공기관을 매개로 Eva와 매칭된 나조차도 처음엔 그들을 믿고 생판 남인 사람과 6개월을 둘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하물며 신뢰도 높은 중개처가 없거나 아예 모든 것을 혼자 컨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말리고 싶다.


다음은 내가 코펜하겐에서의 홈스테이를 굉장히 좋게 추억하는 이유다.


첫째, 호스트인 Eva가 국제학생인 나와 자주 교류했고, 여러 프라이빗한 공동체에 나와 동행했다.

둘째, 당시 그녀에게는 내가 첫 게스트였어서 홈스테이 생활이 덜 전형적이었다.

셋째, 생활했던 동네가 이방인을 터부시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서로서로 많은 교류가 있었다.

넷째, 당시의 나는 장기적인 다대다 커뮤니케이션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기숙사 생활은 제법 피곤했을 것이다.


결국 내 성향에 맞는 좋은 사람과 좋은 상황이 동시에 맞물려야 만족스러운 홈스테이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사항들을 호스트 구하기 전에 꼼꼼히 다 체크해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운이 팔할 정도는 작용하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조건이 가능하다면 홈스테이는 꽤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현지인의 삶 속에 편입된다는 것이 생각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메리트가 되므로.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만약 좋은 기회가 온다 해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확신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 사회에 대해 기본적으로 예측가능한 바들이 있으니 내가 가게 될 나라가 홈스테이를 할 만한 곳인지 아닌지 스스로 잘 판단해보고, 결정했다면 반드시 꼼꼼한 검증절차를 거치길 바란다.

특히 웹사이트를 활용할 경우 호스트의 소개글을 꼼꼼히 읽자.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스탠스라는 것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당신을 웰커밍하는 긍정적인 애티튜드가 있는 집을 찾아보자. 예를 들어 숙박 가격이 싼것보다는 공존의 의미를 강조한다던지. 이는 당신의 안전 및 정신적 안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는 사람과 소통하는 걸 정말 싫어해서 그냥 혼자 방에서만 지내는 게 좋은데요? 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그 정도라면 적어도 교환학생으로서는 아시아를 벗어나는 걸 재고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떤 레지던스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기숙사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더 넓은 문화적 인사이트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인터내셔널 파티와 푸드 쉐어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외향적인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지다.

따로 방을 렌트할 경우에는 독립적인 삶이 보장되는데다 타인으로 인해 내 사생활을 침해당한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단, 충분한 여유자금이 있다면.

홈스테이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조금씩 합쳐놓은 형태이고,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다.


사실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그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할 것인지가 제일 중요하다.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덧.

혹시 저처럼 기숙사 이슈로 살 곳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라면, KKKIK라는 곳을 소개합니다. 학교를 통하지 않고도 개인이 따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대기 기간이 1-2년으로 길지만, -저도 실제로 부랴부랴 지원했다가 그러한 이유로 들어가지 못했기도 하고- 혹시 공실이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www.kollegierneskontor.dk/default.aspx?&lang=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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