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마린 Jun 16. 2023

LGBT를 위하여, 레인보우 프리덤

모든 파동의 색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 LGBT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양하고, 그에 반해 필자는 이 분야에 깊은 지식이 없지만, 그저 지구 반대편에는 이런 축제가 있다, 는 것 정도를 알려보고자 기록합니다.


8월은 교류 대학인 UCC (University College Copenhagen) 의 개강월인 동시에, 한창 덴마크 사회에 적응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OT 및 여러 행사에 불려다니느라 정신없기도 했지만, 그 덕에 UCC의 많은 국제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 터키, 아제르바이잔, 스페인, 우크라이나, 아이슬란드, 케냐 등의 다양한 국적 중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일본 학생들과 가장 친했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권 문화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꽤나 큰 공감대로 작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어느 날에는 아유미와 소타가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코펜하겐에서 프라이드 위크를 하는데, 함께 가지 않을래?



생소한 단어였다. 그리고 순간 망설여졌다.

P지만 계획되지 않은 당일 약속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내향인이었기 때문이다.

(일정이 있다면 하루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덴마크에 올 때 꼭 잃지 말자고 다짐했던 애티튜드가 '뭐든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기' 였기애,

지금이 아니면 언제 북유럽에서 이런 행진에 참여해보겠나 싶어 흔쾌히 제안을 승낙했다.


강의가 끝난 뒤 노르웨이에서 온 마리, 교환학생 동기인 J 언니, M까지 함께 모여 우리는 코펜하겐의 중심부로 향했다.




코펜하겐 프라이드 위크


'코펜하겐 프라이드' 는 1996년부터 매년 열려온, LGBT를 위한 덴마크의 역사깊은 연례행사다.

아시아권에서 LGBT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런 인식은 유럽권이 한 발 빠르다.


내가 지냈던 해인 2019년에는 시청사 앞에서 진행되었는데, 과연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여름의 열기만큼이나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모두의 열망이 뜨거웠던 것일테다.

그러면서도 비장하거나 간절하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의 축제처럼 다 함께 즐기는 자유로 가득하다.

시청사에는 이 곳에 모인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듯한 색색의 무지개색 조형물과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지자체에서도 얼마나 이 행사에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코펜하겐 시청사와 프라이드 위크를 기념하는 깃발. 20190819



'위크' 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일 행사가 아닌, 며칠에 걸쳐 다양한 컨텐츠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종 공연, 매일 진행되는 강연과 토의, 전시 및 상영, 퍼레이드 행진, 굿즈 판매, 체험 부스, 클럽 파티, 심지어 포켓몬고 프로그램까지 있다.

딱히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가볍게 즐기며 들렀다 갈 수 있는 곳처럼 말이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던 드랙쇼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류의 쇼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름 문화충격이기도 했는데, 나의 반응과는 달리 아티스트가 무대 위에 올라 공연을 시작하자 많은 이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걸 보며 코펜하겐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쇼가 자연스럽고, 더 나아가 아예 하나의 문화처럼 향유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내면에 아직 깨고 나와야 할 인식의 벽이 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단 한 명의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LGBT의 인권 신장을 위해 주최되는 행사이지만, 또 역설적이게도 이런 퍼레이드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덴마크 사회의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올곧게 전하고, 또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자세 말이다.

이처럼 코펜하겐에서 지내며 참 다양한 행진과, 시위와, 이벤트들을 겪었다.


이러한 문화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UCC가 한국의 대학과 가장 달랐던 점 중 하나가 웃기게도 화장실이었다.

남녀를 구분짓지 않는 성중립 화장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덴마크에 와서야 알았다.

나중에야 그러려니 싶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처음엔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또한 개인적으로 나는 이 성중립 화장실이 국내 실정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반대하는 편이다.)

국제 학생 중에는 커밍아웃을 한 동기도 있었는데, 그는 덴마크와 같은 인권 중심 사회가 부럽다고 했다.

아마 그는 누구보다도 '존중받는 느낌' 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버스와 메트로, S-Tog 등 대중교통에서도 이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설계된 디자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일전에 말한 영어 병기의 생활화도, 나같이 덴마크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한 호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단 성소수자나 장애인 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및 워킹대디처럼,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이들에게 덴마크는 무척 친절한 사회이다.

그 덕분에 본인의 일에 자부심이 넘치는 장애인과 웃는 얼굴로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을 많은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의 존재 뿐만 아니라 행복까지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권 중심 사회의 진면목이 아닐까.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나는 꽤나 이기적인 이유로 이러한 시민의 사회 참여를 환영한다.

내가 언제, 어느 집단에 속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에도 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의 성 정체성은 영원하지 않으며,

비단 내가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 연인이 그러한 처지가 되어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나의 신념이나 생각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와 상충하는 날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사회적 약자는 늘 상대적이고, 그러므로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런 세계를 맞닥뜨리는 날이 올 때, 나는 떳떳해지고 싶다.

약자임에도 숨지 않고 나의 권리를 당당히 피력하는, 공동체의 1인분짜리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은 세상' 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사회 곳곳의 소수자들을 지지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연대와 관심이 튼튼한 지지대가 되어 언젠가의 나를 보호해줄 테니까.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수로써 사회적 약자를 지원해준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들의 움직임과 투쟁, 그리고 쟁취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기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소수자들의 '설 곳' 이 넓어질수록 어느 평행세계의 -어쩌면 미래가 될 지도 모르는- 내가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므로.


그러므로 아주 작은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방법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전국장애인연합회의 지하철 시위가 많은 이들의 갑론을박을 야기했고,

MTF 트랜스젠더가 또 다른 여성권 침해 논란을 낳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아직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현안이 산더미다.

하지만 적어도 유의미한 논의의 장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통과 이해의 단절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의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지 못하게 된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맞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기, 읽을 수 있는 단어인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