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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린 Dec 28. 2017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가장 본능적이고 멋대로였던 시간들에 대한 기록. 짝사랑을 끝내며.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 중 사랑만큼 강렬한 게 또 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중 짝사랑이 가장 환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냥 그 자체가 환상일 뿐이고 판타지 소설과 다를 게 없으니까.


짝사랑은 풍선 하나를 부는 것과 같다.

아주 작은 고무조각에 내 숨을 불어넣어 한없이 키우고, 키우고, 더 키워서 결국은 감당할 수 없어 터질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도 내 숨 하나하나까지 낭비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다.

내가 숨을 불어넣으며 사랑했던 방식이 어땠건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와 늦여름에 만났고 내가 사랑에 빠진 건 가을이었다. 나는 겨울이 와 함께여서 행복하길 바랬고 적어도 계절의 한바퀴, 그러니까 봄과 다시 올 여름을 돌고 싶다. 하지만 겨울이 끝이었다. 그것도 여전히 혼자인 채로.


세상 가장 찌질한 게 혼자 착각하고 사랑하고 의미부여하다가 가망없는 고백 끝에 차이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로서 이번은 최악에다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 받을 만한 기억들이었다. 위에 나열한 것들을 죄다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속은 후련하다. 항상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다가가지도, 표현하지도 못하겠어' 라고 말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하고싶은 말은 다 했지 않았던가. 최악이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러니까 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다 받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는 또 다한 이상한 짝사랑을 한거다. 물론 둘 중 하나만 했으면 덜 힘들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면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를 판별하려고 한다. 그 사랑이 내 마음이든 다른 사람의 마음이든. 그게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니까. (사랑에 리스크를 따지는 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그래서 나도 그에 대해서 판별하려고 애썼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나. 수많은 감정들이 촘촘히 이어진 연장선이었던 세달을 되돌아보면,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에게만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 또 그는 건설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답없음' 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질문에도 답이 없었고, 나도 답이 없었다.


결국 모두가 그러하듯 나는 그를 완벽히 알지 못했고,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삶을 이리저리 재보며 재단할 자격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문제풀이를 포기해버렸다. 좋으면 어떻고, 또 아니라고 하면 마음을 접을 건가? 그 전에 좋다는 기준은 정말 존재하나? 내 시선으로 보는 건 그 사람의 한 면 뿐인데, 그 알량한 감정으로 좋은 사람을 판단하기엔 내가 온전히 아는 게 나뿐이었다.


그는 내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부류의 사람이었다. 연애에 있어 그 궤도나 사고방식이 대부분의 사람과는 많이 달랐고 그래서 힘들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 그 사람이 어땠고 뭐라고 얘기했으며 행동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별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가 누구든 내가 그에게 느꼈던 감정은 결국 세상 가장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이었으니까.


'이해하려고 해' 라는 말을 무수히 썼던 시간들이었지만, 결국 나는 그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수없이 그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해보다는 인정이라기에 나중에는 그대로 인정하려고도 노력했고. 하지만 결국엔 이해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그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생각이 없는 건 둘째치고라도) 그가 본 나는 사실 나라고 하기엔 힘든 사람이었고, 그보다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 포장한' 누군가였을 테니까.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아무 것도. 그러니까 애초에 좋아하고 말고도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쥐어짜낸 고백이 결국 그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닿지 않았으며 심지어 얼마나 가벼웠던가를 깨달았을 때, 타인의 감정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줬다고 믿었다. 그 끔찍한 무덤덤함을 납득할 수 없었고, 내 감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그에게 주기에 내 마음은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그에게 예의있는 사람이었던가,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똑같았다. 나 역시 그의 마음에게 예의없었, 무던히도 배려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제일 앞서있는 건 내 마음이었다. 나는 늘 답답해했지만 사실 그도 답답했을지 모른다. 나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 애를 써서 모르는 척했다. 내 행복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이어가보려고. 힘들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면서 놓지 못했던 게 두 사람 다에게 얼마나 민폐였을까. 나는 언제나 우리의 관계를 실수로 놓쳐버릴까봐, 끊어버릴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애초에 관계는 이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에 그에게 힘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나를 힘들게 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 나였다. 이해한다는 말은 뒤돌아서면 쓰레기통에 구겨넣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사랑한 그 자리에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인형뽑기를 좋아했다. 그낭 시도해봤는데 오버액션토끼를 뽑았다며 자랑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 후로 이 녀석만 보면 그게 떠오른다. 젠장.


그를 이제 다시 볼 수 없기에 용기낼 수 있었고 그래서 한 고백이었지만, 내 밑바닥에 깔려있는 아주 솔직한 내 마음은 그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찌질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쿨한 적이 없었고 생각하지 않은 게 없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드라마틱한 반응도,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모든 건 완벽히 내가 만들어낸 소설 속 환상이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내가 기대하며 용기내서 한 모든 행동들이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돌발행동이었을 수도 있음을 알았다. 사실 그건 좀 슬픈 일이다. 내가 주는 마음이 그에겐 별 쓸모가 없다는 건.


내가 사랑을 주는 방식은 주로 진심어린 위로와 걱정, 응원을 건네는 것이다. 그 역시 그게 정말 고마웠다고 나중에서야 말해줬지만, 그가 받고 싶었던 위로가 아마 '나의' 것은 아니었을 테다. 그냥 내가 주니까 받았던 거지 그가 원한 건 아니었잖아?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는 이제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싶고.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게, 또 그렇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기적같은 일인지 새삼 느끼곤 한다.


어떤 사랑이든 결국 왜? 라는 질문을 품고 끝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의 추가 아주 조금은, 좋은 사람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게 맞는 듯하다 아직도. 그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놓치기 싫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운명이라면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지금처럼 위로가 되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 때가 온다면 더 나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시간들로 인해 내가 얻고 배운 건 무엇일까. 나는 이런 것마저도 잘 개어서 정리해놓아야 하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머리가 엉킨 기분을 싫어하는 나.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발전한다는 명제를 맹신하는 나.


1. 절대절대 도끼병짓을 하지 말자. 세상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이성적인 관심은 더더욱 없다.

2. 좋아하는 사람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말자. 나 설레면서 하는 거겠지만 상대방은 모른다.

3. 좋아하는 사람도 사람이란 걸 생각하자. 나처럼 생각이 있고 기준이 으며 내가 하고싶은 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아니다.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자.

4. 그 사람보다는 나를 더 생각하고 좋아하자. 감정에 빠져 새로운 감정 만들지 않기.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확인하는 나는 사랑에 빠진 멜로영화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할일없이 휴대폰이나 들춰보는 그냥 나이다. 감정놀이 하지말자. 그 사람이 없어져도 내게 남겨진 건 오롯이 나이며 나는 내 삶을 이어가야 한다.

5.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아닌거다.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멈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만두는게 사실은 맞는 거다.

6. 어쨌든 내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은 만나지 말자.

7. 이건 나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지만,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내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도 아니다. 새로운 사람은 결국 나타날 것이고 나는 여전히 나이고 자책할 수 밖에 없다면 그냥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된다.

8. 후회하지 않으면 일단 그걸로는 된거다. '잘' 된거고, '더 이어갈 필요 없는 끝이' 된거다.

9. 고백은 어린아이나 하는 거고 어른은 유혹을 해야 한다는 말은 진리다. 이번 일에 있어서 고백은 내가 했던 모든것들이 미숙해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던진 자살폭탄 같은 거였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다..


나는  자신이 얼마나 감정에 갇혀 살면서 나만 보는 사람이고 또 미숙한지 알게 되었고, 온전히 누군가를 이해하려 과정에서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것 같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던 시간들이었다. 그 내 마음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사랑에 관해 내가 믿는 구절 중 하나는,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만큼 공감했던 말이 없었다.

맞아. 멋대로였긴 해도, 어린 날의 치기로 삼기엔 제격인 기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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