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꿀단지

가장 소중한 것

by 진동길


오랜만에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놀던 꼬마가 혼자 놀기 심심했는지 신문을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한테 달려갔다. 옛날 얘기 들려달라고 조르러 가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에... 한 젊은이가 광야에 사는 한 은수자를 찾아갔더란다. 은수자는 남다른 권위와 가르침으로 소문이 자자했지. 젊은이도 그의 소문을 듣기만 했을 뿐. 그를 직접 만난 건 처음이었지. 그런데 젊은이가 은수자를 처음 보는 순간 한눈에 실망하고 말았데."


"왜요?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나요?"

"그렇지. 젊은이가 볼 때, 가난한 은수자에게서는 젊은이가 생각했던 왕이나 귀족에게서 볼 수 있었던 권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낙타 털옷을 입고 들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았으니까. 한마디로 그는 가난한 삶을 살았고, 그런 삶을 즐기는 것 같았단다. 젊은이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지. 자신은 유명한 은수자의 제자로 살면서 출세를 꿈꾸었거든."


"그 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네요."


"젊은이는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와 함께 몇 주를 같이 지내기로 했단다. 출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거지. 하지만 그 사막에서 은수자의 생활은 한결같았단다. 그 거친 사막을 떠날 생각도 없는 것 같았고, 또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을 피하곤 했지. 그 은수자가 만나주는 사람들은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뿐이었지. 또 그 젊은이한테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단다."


"본체만체했군요. 쫌 속상했겠다."

"허허허. 그래. 그래서 하루는 작심을 하고 물었단다. '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습니까?'라고 말이야. 그러자 그 은수자가 처음으로 젊은이에게 말을 건네었는데,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는구나."


"어떤 질문이었는데요?"


"너도 잘 들어보거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험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 아주 중요한 시험."


"무엇을 물어봤나요?"


"저기 돌 벽 뒤에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어젯밤에 돌 벽으로 막아두었으니 저걸 어떻게 하면 꺼낼 수 있겠소?”


"아주 쉽네요?"


"허허허. 그래. 젊은이도 망설이지 않고 '망치로 돌벽을 깨뜨리고 꺼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단다. 그러자 은수자는 몹시 슬프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다른 질문을 했지."


"젊은이가 잘 못 말했나요?"


"글쎄다. 아무튼 다음 질문은 이랬지. '그러면 여기 있는 이 닭의 알에서 생명을 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젊은이가 잠시 고민하고 나서 자신감 없는 말로 이렇게 말했어. '품어주고, 따뜻하게 해 주고, 기다려 주면 됩니다.'라고. 그러자 은수자는 아주 슬픈 얼굴로 '형제여, 저 돌벽 뒤에 있는 것.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그대가 방금 망치로 깨뜨려 죽였습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흐르고 있으니, 나는 더 이상 그대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오. 떠나시구려. 그대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여기에는 없소이다."


"쫌 어려운 말이네요. 은수자의 말속에 무언가 숨은 뜻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이해하기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젊은이도 은수자의 말이 아리송했지만, 분명한 것은 젊은이는 첫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의 곁에서 떠나야 했다는구나."


"할아버지... 비유를 풀이해 주세요."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단다. 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도 있지. 은수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지. 하지만 젊은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망치와 창 같은 무력과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단다. 돌벽으로 가리어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젊은이는 망설이지 않고 망치를 휘두를 사람이었지."


"그 젊은이가 원하는 것은 금덩어리 같은 것이었나요?"

"젊은이의 마음속에는 그와 비슷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겠지. 하지만 은수자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디에나 생명들로 가득했지. 그가 비록 사막에 살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러니 은수자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폭력이나 무력을 휘두를 수 없는 마음이었고, 젊은이의 마음과 아주 다른 마음이었던 거지.


"아하... 그래서 은수자가 그렇게 슬퍼했군요."



추구하고 하는 가치관, 그 목적지가 다르다면 은수자 전하는 가르침이나 기쁜 소식은 한낱 돼지 목의 진주요. 소 귀에 경을 읊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사람의 권위는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답니다. 특히 사람의 그것은 그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어서 쉽게 훼손될 수도 없겠지만,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가난에도 빈곤한 가난이 있는가 하면 풍요로운 가난이 있지요. 사랑도 그렇습니다. 그 흔한 이름에도 별처럼 빛나는 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랑도 많지요.


진정한 권위는 '생명을 살리는 사랑'에서 시작되고, 생명을 살리는 사랑은 품어주고, 따뜻하게 해 주고, 기다릴 줄 압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망치와 칼을 들고 껍질을 깨려 하지만, 사람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은 품어주고, 따뜻하게 해 주고, 기다릴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낭만 고양이...... "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