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근본적인 본성에는 사랑할 능력과 힘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외적인 것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안에서 솟아 나오는 것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하지만 자연적인 본능으로 좋고 아름다운 것을 원합니다." (성 대 바실리오 주교, ‘대 규칙서’에서)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 그 사람들 가운데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가 '하느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면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그 마음의 소리를 더 깊이 주의를 기울여 듣고 싶어서 속삭이고 속삭이다가 침묵하는가 봅니다.
침묵: 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들어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 유래는 이렇습니다. 중국 노나라 왕이 바닷새를 비궁(閟宮) 안으로 데려와 술과 육해 진미를 권하고, 풍악과 무희 등 융숭한 대접을 했지만, 바닷새는 어리둥절해 슬퍼하며 아무것도 먹지 않아 사흘 만에 죽었다는 이야기에서 전해옵니다.
듣다: ἀκούω(akŏuō 아쿠오)
'듣다'라는 뜻의 ἀκούω(akŏuō 아쿠오)라는 말은 청각으로 '듣는다'는 뜻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의미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0. ~을 듣다, 경청하다
1. ~의 말을 듣다, 순종하다
2. 애원을 들어주다, 탄원을 청취하다
3. 동의하다, 이해하다, 깨닫다
말할 줄 아는 데는 3년 걸리고, 들을 줄 아는 데는 60년 걸린다고 하지요.
단순히 듣고 경청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이야기에 동의하고 이해하고 깨닫고, 그와 함께 기도할 수 있기까지 60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아니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라고 하는가 봅니다. (올리버 웬들 홈스)
사랑의 저울
'듣는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양과 사랑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랑이 얼마만큼 있는지, 얼마나 큰지 볼 수는 없지만, 그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들고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