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찐빵집을 찾아서

by 진동길



한쪽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 한 분이 일광역 뒤편에서 찐빵집이 어딨냐고 물어왔다.

일광 바닷가는 숯불장어가 대표 먹거리로 유명하지만, 찐빵 골목도 손님들이 줄을 서는 곳이다.

"학생! 할아버지가 찐빵이 드시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여기 찐빵 파는 데가 어딨는교?"

기분이 좋았다. 50이 넘은 나이라서 그럴까? '학생'이라는 소리에 사이다를 마신 기분이 든다.

"반대로 오셨네요. 반대편 다리를 건너시면 찐방집이 서너 곳 보이실 거예요."

" 아이고... 고마워요."

곧이어 할머니는 기다리시는 할아버지께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금방 갈게요. 기다리소."

짧은 통화를 끝내고 마음이 급하신지 절뚝거리며 앞서가시는데. 걸으시는 뒷모습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또 길을 잃으실까 싶어서 할머니 뒤를 멀찍이서 따라갔다. 어차피 내 길은 목적지 없는 산책길이었으므로.

아니나 다를까. 다리를 앞에 두고 속도가 줄던 할머니의 절뚝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시는데, 나는 나를 보고 계시는가 싶어서 계속 가시라고 큰 손짓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뒤따르는 나를 보지 못하셨는지,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이다.

생각 같아서는 달려가서 바로 코 앞에 보이는 빵집 가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드리고 싶었지만, 나도 다리가 성치 않아서 달려갈 수가 없었다. 마음만 애가 타서 다시 큰 손짓을 해댔다.

'다리를 건너가세요. 저기 보이잖아요. 저기예요. 저기...'

# 고귀한 신원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 36.)

‘위’에서 오시는 분. 하늘에서 오시는 분.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의 ‘신원’을 당신과 함께 높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형제로 삼으셨으며, 아버지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외아들을 내어주기까지 그를 믿는 이들을 높여 주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로마 12,10.)

돼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진주의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믿는 사람과 진리를 실천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그분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갈 수 있지요.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습니다.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물려받지 못하고,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물려받지 못합니다.”(1코린 15,50.)

# 이렇게 찬란해도 되는 겁니까?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높여질 것입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은총 충만한 ‘생명’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은사를 온통 세속적인 것, 썩어 없어질 ‘육’적인 것에 쏟는 사람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의 삶과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평범한 철봉 하나는 5달러입니다. 하지만 이 철봉으로 말발굽, 편자를 만들면, 그 가치가 50달러입니다. 10배가 뜁니다. 이 철봉으로 바늘을 만들면 그 가치는 5천 달러입니다. 가치가 천 배 뜁니다.

그런데 이 철봉으로 정교한 스위스 시계의 용수철을 만들면 그 가치는 50만 달러가 됩니다. 가치가 십만 배가 뜁니다. -참조: 소천, ‘이리 찬란해도 되는 겁니까?’ 중에서-

철이 그냥 철봉을 만드는 사람의 손에 가면 5불의 가치가 되고, 바늘을 만드는 사람의 손에 가면 5천 달러의 가치가 되지만, 용수철을 만드는 사람의 손에 가면 50만 달러가 됩니다.

똑같은 질료(물질)도 ‘누구의 손에서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가’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거듭 창조하시는 하느님과 그 외아들의 손길을 믿습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요한 3, 3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를 가치 있는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삶으로 거듭나셨기를. 영원한 생명의 주인을 믿고 증언한 삶으로 부활하셨기를. 신앙인은 하느님의 손에서 거듭날 때, 가장 가치 있는 존재이기에.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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