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 특별히 쓸만해 보이는 구석이 없어 보이는 마리오 신부의 외모는 군에서도 외면받았다. 병역판정 검사에서 면제 처분 대상자였다.
학력도 그렇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사와 잦은 이사로 그의 최종 학력은 중학교 1학년 중퇴.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그의 성격은 그를 잉여인간이나 그림자 인간처럼 살아오게 했다. 분명 존재하지만, 세상이 그를 '없는 사람'처럼 대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는 스스로 그렇게 살기로 선택했다. 세상을 위해 내어놓을 수 없으니, 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바라지도 말자라는 생각으로.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처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살다 가자. 바랄 것이 없으니 욕심낼 것도 없잖은가.
그는 그 선택이 자신에게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없어도 너무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 때는 그랬다. '가난하고 무식한 것이 죄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그의 감정을 지배할 때. '세상은 왜 대가 없이 빼앗아가려고만 할까?'라는 불신의 감정이 그를 휘두를 때.
태풍 '매미'는 아버지와 동생이 일군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없애버렸다. 정말 흔적도 없이. 그 둘은 서로의 갈길로 가야 했다. 아버지는 출가를 결심했고 동생도 형처럼 나그네의 삶을 선택했다.
집도 절도 없는 길을 삼부자는 선택했다. 그것이 그나마 자신들에게 최소한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는 길이라 생각했기에.
잉여인간. 그림자 인간처럼 살다 가는 길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보다 행복하지 않는가. 그러니 앞으로 서로를 찾거나 만나지 말자라는 무언의 공감과 약속이 서로 다른 길로 안내했다.
마리오 신부도 그날 이후, 5년 전부터 걷고 있던 수도자의 길을 계속 가는 길이 마지막 선택이라고 굳게 믿었다. 궁지로 몰린 이의 손에 쥐어진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카드 같았지만, 분명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고 세상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 최선이라 여겼다.
'내게는 이 길이 마지막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카드마저 없었다면 어찌할 뻔했는가.'
3년이 채 다 가기 전에 두 사람은 차례로 가던 길을 끝마치지 못했다. 동생이 먼저 죽음을 알려왔고, 아버지도 곧 동생의 뒤를 따라갔다. 삼부자 중에 유일하게 남은 잉여인간은 그뿐이었다.
'많이 보고 싶었겠지. 핏줄이 당길 때는 더욱. 세상을 흉보고 싶을 때, 세상과 사이가 틀어졌을 때는 더욱.'
하지만 그는 강해져야 했다. 트라우마라는 언어조차 입밖에 맴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소유한 것 없어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래야만 했다.
속세를 떠난 수도자는 더욱. 인간적인 문제를 안고 있거나 인연이라는 연줄에 휘둘려서도 안된다고 믿고 있었기에. 슬퍼도 외로워도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세상의 그 누구에게도. 안돼. 안돼.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되었다.
여기서. 이 자리에서 밀려나면 더 이상 선택할 카드가 없어. 신부는. 수도자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해야 해.
죽음은 또 다른 세계이고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길이라고 말해왔잖아. 기쁜 일은 아니지만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말이야. 그러니 너는 그들의 죽음 앞에서 무감각해야 해. 수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각오했을 때, 이미 세상의 인연을 끊었던 거 아니었어. 그래. 그들은, 그들의 죽음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그렇게 다그쳤다. 신부는 슬픔과 죄책감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없으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니까.
'지난 몇 년. 너는 잘 버텨왔잖아.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야? 피곤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벌써 지친 거야?'
휴게소를 불빛마저 잠들게 하는 안갯속을 그는 걷고 또 걸었다. 어둡고 슬픈 소용돌이를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듯 깊은숨을 몰아 쉬며 걸었다.
서늘하고 습한 안개다. 엠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긴박하고 다급한 호흡처럼. 그리고 차츰 희미해져 갔다.
또다시 깊고 깊은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그때 싸늘한 한기와 함께 눈 앞에 나타난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에 깜짝 놀란 그는 도망치듯 차로 돌아왔다.
그 얼굴들은 몹시 슬펐고 아파 보였다. 마리오 신부는 급하게 승용차 시동을 걸었다. 기분 나쁜 안개가 지배하고 있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