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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pr 19. 2021

2021

4월 4일

날카로운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같다. 머릿속이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느낌이다.

"마리야... 진 마리..."

침대 위에서 부르면 곧장 달려왔을 녀석인데, 아무리 불러도 기척이 없다. 그렇다고 수도원에서 큰 소리로 부를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수도원이 너무 조용하다. 인기척이 없다.

부활절 주일이라서 다들 성당에 갔으려니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이 적막함은 괜스레 불안하게 한다.

벽시계도 시침과 분침이 1시 5분을 가리킨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이 몇 시나 된 것일까. 다들 어디 간 것일까. 궁금하지만 좀 더 누워있고 싶다.'

"마리야... 마리야..."

너무 오래 잠든 탓일까? 온몸이 아프다.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마치 팔다리가 흩어지고 으스러진 듯하다. 으슬으슬하니 한기도 느껴진다. 평소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 오늘은 더없이 춥다. '감기가 오려나보다.'

"마리야..."

녀석이 슬슬 걱정이 된다. '밥 먹을 시간이 훨씬 지났을 텐데. 어디를 갔지?'

'아무래도 일어나야겠다.' 8명이나 되는 수도원 형제들이 부활 주일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마리 이 녀석 간식이라도 먹여야 했다.

내게 아버지의 마음을 일깨워주고 '사랑해'라는 말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온 마음으로 다가와준 녀석. 4년 동안 몇 차례 잃어버린 적이 있다. 사실 그때마다 녀석을 포기하고 싶었다.

수도자의 삶이 소유 없이 가난한 삶을 지향하고 있기에 매달 용돈을 타서 쓰는 형편에 녀석에게 쓰이는 돈은 내 용돈의 70% 이상이나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었지만,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형제들에게도 미안하고 부담을 주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매번 잃어버렸을 때마다 동생과 아버지를 잃었을 때처럼, 책임을 다하지 못 한 마음에 미안하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슬프고 괴롭기도 했지만,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는 않았다.

'자기 짝지를 찾아갔다면 더 할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라며 자위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지 못했음에 괴로워할 때쯤이면 녀석은 어디선가 어김없이 다시 나를 찾아와 주었다.

그때마다 고맙고 미안하고 반가워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난 제자들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녀석은 참 묘하게도 내 마음과 내 기분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빨리 느끼고 알아챘다. 간혹 섬뜩할 정도로.

"마리야... 마리야..."

수도원 공동방에도 없다. 주방과 3층 복도 끝까지 찾아봤지만 없다. 형제들도 없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해도 떨어지려고 한다.

'도대체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때, 1층 현관에서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몹시 슬픈 소리다. 아빠를 찾는 소리다. 그래. 새끼가 제 부모를 애타게 찾는 소리. 그립고, 보고 싶은. 가슴에서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야... 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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