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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pr 20. 2021

2021

4월 4일

그날 밤. 마리오 신부는 다시 동생과 아버지를 만났다. 꿈처럼 생시처럼. 그들은 다시 마리오 신부를 찾아왔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금세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먹구름을 동반한 채 울먹이고 있었다. 뒤이어 천둥이 먼저 큰기침을 했다. 번개는 번쩍 슬픈 장단을 맞춰 하늘과 땅을 이어주었고 마리오 신부는 두 팔을 벌려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도 내가 보고 싶었겠지.' 어딘지 모를 저 먼 곳에서 예까지 찾아와 준 그들이 고맙고 반가웠다.

하지만 해맑은 우리들의 얼굴 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현듯 일어서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애처롭고 애틋한 이 슬픔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왜? 웃고 있지만 슬퍼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무엇이 이 반갑고 행복한 감정을 슬픔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일까?'

마리오 신부는 혼자 다시 되뇌었다. '그래! 그들은 죽지 않았어. 살아있었던 거야. 어떤 이유였는지 묻고 싶지만 물어보지 말자. 시간이 아까우니까. 내게, 아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냥 그들을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자. 그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 왜 내게 아무런 소식도 주지 않았는지. 알아서 무엇하리. 다만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만 하자. 시간이 아까우니까.'

"보고 싶었어. 많이. 보고 싶었다고..."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사이에 깊은 구렁이 가로지르며 나타났다. 하늘은 울기 시작했고 천둥 번개는 서로 다투며 땅을 향해 달음질쳤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팔을 뻗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 왜 또 헤어져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뿐이었으므로.

땅은 갈라지며 피를 토해냈다. 도로가 온통 핏빛이다. 곳곳에 찌그러진 차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지나다니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 팔과 다리를 주어 모았다. 다른 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자기의 팔과 다리를 주어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자도 남자도. 자기의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처럼 무섭게 쏟아지는 비는 처음이다. 태풍 매미가 다시 찾아온 것일까. 다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려고.

아니야. 그게 아니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거야. 옛 것을 지우고. 새 것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다시 시작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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