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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pr 21. 2021

소금단지

무중력의 영혼


그 사이 그늘을 찾게 되는 때가 왔습니다. 부활 전야 미사를 지난밤이 며칠 전 같은데. 벌써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가 지났습니다.

온도와 습도는 우리네 마음처럼 오르락내리락해도 와야 할 계절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는가 없는가 봅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힘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때입니다.

# 무중력 상태의 영혼

특히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능력으로 거스를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 그 힘으로 이끌리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  그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은총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은총은 무중력 상태의 영혼, 즉 세상의 그 어떤 끌림에도 초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맛볼 수 있는 은총이겠지요. 중력과 물리력, 전자기력이 지배하는 세상. 그 세속적 자리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우주 저 밖에서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 지구(세상)를 바라볼 수 있는 영혼은 복됩니다.

그러나 한편 인력(인연의 줄)을 놓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볼 때, 우리의 내면을 먼저 살피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4.6.)

# 초월로의 초대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사도 8,32. 이사 53, 7-8.)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 내시는 이사야 53장의 (특히 7-8절 부분)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권력과 경제력을 두 손에 움켜쥔 이가 가난한 초대 교회의 부제 필리포스에게 물었습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사람의 겉을 보지 않으시고, 그 내면을 보시는 하느님. 한 사람의 지위, 가문, 재산을 보지 않으시고, 그의 내면에 있는 믿음과 사랑, 열정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에티오피아의 내시에게 부제 필리포스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참된 기쁨과 영원한 생명으로 그를 거듭나게 하셨지요.

우리가 아버지께 가기 위한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태도는 아버지의 존재와 그 ‘이끄심’을 믿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의 초월성, 즉 내면에 숨 쉬고 있는 본질적인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부제 필립포스는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예루살렘에서 가자(예루살렘 서남 방향 약 7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내려가는 길.

그 외딴길을 가던 중에 에티오피아(그리스어로 '혼혈인', '태양에 그을린 얼굴의 땅') 여왕의 내시로 왕실 재정을 담당한 고관을 만납니다.

그는 혼혈인이자 내시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일원이 될 수는 없었지만,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이었으며,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십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이끄심이었습니다.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지요.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또한 명언입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습니다. 그의 청은 영원을 향한 동경이었습니다. 자기를 초월하고자 하는 ‘영’과 ‘영혼’의 갈망이었으며, 변하지 않는 ‘믿음’과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었습니다.

# 이끌림의 원리-수동의 영성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요한 6,44-45)

그 역학적 관계의 원리는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어주심'을 믿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끄심을 믿는다는 말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그분처럼 사는 것이겠지요.

길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닐 돌멩이도 눈 밝은 수석(壽石) 애호가를 만나면 귀한 돌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 발길에 이리저리 차이는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심히 내버려질 바위도 훌륭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를 만나면 ‘다비드’상과 ‘피에타’상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듯이 말이지요.

이렇게 이끌림의 원리와 그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리를 믿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지요.

# 수동의 영성과 피에타 에피소드

피에타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렇습니다: 교황님과 여러 추기경과 귀족들이 피에타 제막식에 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피에타 상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교황님께서 미켈란젤로에게 ‘미켈란젤로, 당신은 정말로 위대한 예술가요’라고 치하했습니다.

교황님의 치하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답했지요.

“교황 성하, 피에타상은 제가 조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신이 이미 대리석 덩어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피에타상이 밖으로 드러나도록 곁에 붙은 부스러기를 제거했을 뿐입니다.”

# 물리학의 발견과 초월적 신학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무모함은 물리학자가 자연계를 이끌어가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4가지 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요. 초월적인 밀고 당김. 신앙의 힘이 엄연히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이웃과 세상을 불러주시고 이끌어가시고 함께 하시며 다스리신다는 것을 인간은 창조 때부터 느끼고 체험해 왔습니다.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 무한(초월)으로의 동경(목마름)과 열정이 없었다면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이야기할 수조차 없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신 가능성. 그 창조성마저 인간의 자유의지 앞에 내어놓으셨습니다. 십자가와 어린양의 피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요.

# 열정적인 수동의 영성 -부르심과 응답-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태초의 아담(사람)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무시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요한 6,36-37.)


그러므로 아버지의 부르심이 먼저이고 그다음 우리의 응답을 그분은 기다리십니다. 부르심과 응답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동시에 일어나지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47-51.)


# 자유의지와 선택적 선물


진정한 자유. 진리와 함께 하는 완전한 자유. 그 본래의 의미는 믿음을 기초로 합니다. ‘온전히’ ‘오롯이’ 자유로울 수 있는 자아는 온전히 오롯이 자신을 아버지께 내어 맡긴 사람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인간은 영원이시고 생명이신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생명의 빵이신 예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지요.


그러므로 믿음의 행위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단’인 동시에 아버지의 ‘선택적 선물’이라는 정의가 성립됩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요한 6,45; 10,14-15.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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