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마리오!... 마태오 수사! 혹시 오전에 마리오 보셨는가?"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던 마태오 수사를 보자마자 에드몬드 수사가 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급히 물었다.
"아니요... 오늘은 밭에도 놀러 오지 않았어요." 마태오 수사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얘가 어디 간 거지?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오전 내내 보이질 않네."
"너무 걱정 마세요. 아마, 프란치스코 수사 화실에 갔을 거예요.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잖아요..."
"거기에도 없더라고... 프란치스코 수사도 오늘은 못 봤다는데... 그래, 알았어. 고마워...! 아! 마태오 수사. 곧 점심시간이야. 정리하고 식당으로 내려와."
"네! 금방 갈게요." 건조대에 방금 딴 빨간 고추를 널어 말리던 마태오 수사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수건으로 털며 말했다.
"이렇게 뜨거운 날에 바닷가 갔나? 때 되면 제일 먼저 식당으로 오는 녀석이 오늘은 이상하네..." 뒷짐을 지고 걷던 에드몬드 수사가 수도원 문 앞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꼬마 수사는 그날 점심 식사 때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나자 일광 예수마리아 성심 수도원의 수사들이 꼬마 수사를 찾느라 난리가 났다. 8명의 수사들이 각자 흩어져서 찾아보기로 했다.
원장 수사는 바닷가에 나가보기로 했고 수도원의 농사일을 맡아하는 마태오 수사는 수도원 앞 밭과 뒷밭을 찾아보기로 했다. 화가인 프란치스코 수사는 화실 근처와 수도원 주변을, 성경 공부를 하는 안젤로 수사는 마을에 가서 신자분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연세가 지긋하신 바오로 수사와 안토니오 수사, 에드몬드 수사도 수도원 주변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니꼴라오 수사는 혹시나 공소 성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모두들 각자 맡은 곳으로 향하려던 때, 원장 수사가 공소 성당에서 들리는 고양이 '마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제대 아래에 꼬마 수사가 마리와 함께 있었다.
"마리오... " 원장 수사가 제대 아래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꼬마 수사의 얼굴을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깨웠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꼬마 수사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일이니? 왜 여기에 있어?"
"원장 수사님..." 꼬마 수사는 다시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원장 수사는 꼬마 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다시 물었다. 그때 다른 수사들도 모두 성당으로 들어왔다.
꼬마 수사는 자기를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는 수사들을 보며 말했다. "다른 수사님들은 모두 하느님께 받은 달란트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게는 달란트를 주시지 않은 것 같아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원장 수사는 고개를 떨구는 꼬마 수사를 안아주었다. "우리 마리오가 이제 다 컸구나... 벌써 자신의 미래와 달란트를 고민할 나이가 되다니... 괜찮아... 누구나 그런 걱정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거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달란트를 주셨으니 곧 네 달란트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기도하지 않고는 쉽게 발견할 수 없지... 잘했다. 간절히 기도하면 지금 당장에는 네 달란트가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마리오. 마리오한테만 특별히 허락하신 너만의 달란트를...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단다. 성모님의 곡예사 이야기인데.
프랑스 루이 왕 시대에 '바르나베(Barnabé 위로의 아들)라는 가련한 곡예사가 살았단다. 그는 누구보다 하느님을 두려워했고 또 성모님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매일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고 몹시 가난했지.
성모님께서는 그런 그를 측은하게 여기셨지. 그리고 어느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그날도 가난한 곡예사는 헐어빠진 깔개에 공과 칼을 말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저녁도 굶은 채, 잘 만한 헛간을 찾아 걸어가고 있었단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한 수도사를 그에게 보내셔서 바르나베와 같은 길을 걷게 하셨데. 그것을 알 수 없는 바르나베는 자기 곁을 지나가는 수도자를 보고 공손히 인사를 건넸고, 수도자는 곡예사와 같은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바르나베의 순박한 마음에 감동을 받게 되어 이렇게 말했단다. "바르나베 친구! 나와 함께 갑시다. 내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소." 그렇게 바르나베는 성모님의 기도와 하느님의 자비로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지.
그가 들어간 수도원에는 각자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지식을 다해 성모님께 봉사하고 있었데. 양피지에 글을 옮겨 쓰는 일을 하는 수사가 있는가 하면 그 양피지에 아름다운 세밀화를 그려 넣는 화가 수사와 조각가 수사, 시를 쓰는 수사, 작곡가 수사 등등. 많은 수도자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달란트를 봉헌하며 살고 있었지. 그런데 이들을 본 곡예사 바르나베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단다."
"왜요?" 꼬마 수사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원장 수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위에 다른 수사들도 이어질 원장 수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왜냐면 다른 수도자들은 훌륭한 달란트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봉헌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거든."
"에휴... 저는 그 바르나베 수사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꼬마 수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원장 수사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어느 날 아침, 바르나베는 기쁜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당으로 달려갔단다. 거기서 그는 한 시간 이상 머물러 있었고, 또 저녁식사 후에도 성당으로 달려가서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지... 다음 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매일 성당이 비어 있는 시간이면 바르나베가 성당에 머무는 날들은 계속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수도원장이 다른 수사를 데리고 성당 문틈으로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저처럼 기도하고 있었나요? 무얼 하고 있었어요?" 꼬마 수사가 궁금하다는 듯이 원장 수사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때, 바르나베 수사는 성모님 제단 앞에 거꾸로 서서... 허공에 쳐든 발로 여섯 개의 구리 공과 열두 개의 칼을 가지고 곡예를 부리고 있었단다."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요? 관객이 없으니 재미없었겠다. 흥도 나지 않고..." 꼬마 수사가 시큰둥 말했다.
"정말 관객이 없었을까? 아무튼 원장 수사와 함께 바르나베의 곡예를 지켜본 다른 수사는 신성 모독이라고 분개했지. 그리고 바르나베를 성당에서 끌어내리려고 했단다. 그런데 그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으응...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제단에 계시던 성모님께서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제단에서 서서히 내려오시어... 당신의 푸른 옷자락으로 곡예사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셨단다.
" 와! 완전 감동이에요."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 국민들은 이 사건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기념우표를 만들었단다... 마리오!"
"네. 원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렴.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하느님과 성모님, 그리고 수많은 성인 성녀들과 천사들을 잊지 마렴. 또 여기에 모여 있는 수사님들도 언제나 잊지 마려무나.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늘 함께 있으니까. 함께 기도하자.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은총이고 아주 큰 달란트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