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사와 아침 성무일도가 끝난 신학원. 학생 공동체에는 묵상 시간이 이어진다. 말씀과 성체를 영하고 찬미를 드리고 난 다음, 이어지는 묵상 시간은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다. 침묵 중에 그분과 정감어린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형제들이 귀로 듣고 입으로 고백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 시간. 형제들 가운데 아침 식사 당번은 주방에서 혼자 촌각을 다툰다.
수도원의 공동 시간표는 모두를 위해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묵상 시간 내에 최대한 능력껏(?) 형제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차려내야 한다.
사랑의 기운이 수도원의 침묵을 더욱 달콤하게 하는 그 시간. 오늘은 꼬마 수사가 아침식사 당번이다. 꼬마 수사는 신학생 형들을 위해 빵을 굽고 달걀 프라이를 준비하고 있다.
톡. 치지익ㅡㅡ. 적당히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달걀 껍데기가 깨지고 기름 위에서 미끄러지는 닭의 알은 곧 기름지고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오! 마리오. 정말 맛있게 잘 튀겨졌다. 고마워!"
부원장 수사인 요셉 수사는 달걀 같은 미소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학생 형들도 마리오의 정성을 쓰담쓰담 해주자 한껏 들뜬 꼬마 수사는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궁금함을 요셉 수사한테 물었다.
"수사님! 성체성사의 신비를 저는 잘 이해를 못 하겠어요. 가톨릭 대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라구요.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빵의 온전한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온전한 실체가 그리스도의 피로 그 실존 양식이 변화되는 현상이다. 이는 트리엔트 공의회(1551년)에서 교의로 선포된 것이다.' 헉!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죠?"
순간 아침 식탁에 함께 하고 있던 형제들이 다들 큰 소리로 웃었다. 요셉 수사도 한참을 웃다가 의아해하고 있는 마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리오에게는 아직 어려운 신학용어들뿐이구나. 무척 당황했겠다. 하지만 어려운 신학용어들을 빼고 나면 아주 쉽게 성체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오늘 형제들의 아침 식탁을 준비한 마리오의 모습에서 성체성사 신비,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성찬을 이해할 수 있단다.
그러기 위해서 마리오는 이 식탁을 제대라고 바꾸어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성찬을 준비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신데, 사제가 그 대리자로서 요리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미사 전례는 말씀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누어지지만, 지금 우리는 성찬의 전례만 이야기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거란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지?"
"네..."
마리오는 너무나 쉬운 설명에 신이 났다. 얼른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어 졌다.
"성체성사에서 가장 큰 신비는 예수님께서 요리사이시자 동시에 희생제물이시라는 점인데, 이것은 믿음으로 믿어야 해. 그리고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니까. 믿을 수 있겠지?"
"네..."
마리오가 너무 큰 소리로 대답해서 식탁은 다시 한번 박장대소의 장소가 되었다.
"그래... 지금부터 아주 중요하니까 잘 들어봐... 이제 예수님의 대리자인 사제가 예수님과 함께 성령으로 밀떡을 성체로 변화시키실 텐데. 그 변화를 실체의 변화라고 해. 실체의 변화를 위해서 사제는 이렇게 하느님께 기도하며 축성하는데.
'아버지, 간절히 청하오니 아버지께 봉헌하는 이 예물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어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이어서 사제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이루어졌던 감사제를 재현하게 되는데. 그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지? 마리오가 설명해 볼 수 있겠니?"
"이렇게 하셨어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며 축복하시고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저녁을 잡수시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며 축복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오! 마리오가 그렇게 하니까 갑자기 아침 식탁이 그날 밤으로 변한 것 같은데...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잊지 말이야 할 점은 이 모든 일들이 대리자인 사제를 통해서 하느님서 직접 하시는 일이라는 점이야.
그리고 실체의 변화라는 말도 그 뜻은 어렵지 않아. 달걀을 예로 들어보면 이렇지.
마리오는 오늘 아침 형제들이 오늘 하루를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하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줬잖아. 그렇지?"
"네... 당근이죠. 저는 형들을 사랑하거든요. 많이 많이."
"그래. 바로 실체의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야. 하느님을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4장 8절."
"허허허. 그래! 바로 그 말씀이야.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든 죽은 것 같은 실체에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데. 오늘 아침 우리가 먹은 달걀도 하느님의 사랑이 개입하시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이게 바로 실체의 변화야. 마찬가지로 미사 때, 우리가 바친 밀떡도 하느님께서 사랑의 힘으로 개입하시면 어떻게 된다?"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몸이 될 수 있다."
"그래. 그게 실체의 변화의 의미야. 빵과 포도주의 형상(形象)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그 실체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그 실존 양식이 변화되는 현상.
달걀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어미닭의 사랑이 개입하면 병아리로 그 실존이 변화되 듯. 우리 눈에는 누룩 없는 빵이지만, 하느님의 사랑이 개입하면 마리오의 몸과 만난(결합된) 빵은 이제 더 이상 빵으로 남아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사랑의 몸)으로 변화되는 현상을 실체의 변화. 즉 성체성사의 신비. 신앙의 신비라고 교회는 선포한단다.
"와... 달걀이 어미닭의 사랑과 만나면 병아리가 되는 신비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시니까 실체의 변화라는 말이 완전히 쉽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앞으로는 달걀을 쉽게 못 먹을 것 같아요.
"왜?"
"수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달걀 속에 감춰진 병아리가 보였거든요. 달걀 속에 감춰진 한 생명을 위해 감사기도를 꼭 하고 먹어야겠어요. 달걀아... 고마워. 그리고 하느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축복의 양식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 아멘... 허허허. 오늘 아침은 마리오의 사랑으로 진수성찬이구나... 고마워."
# 생명으로 초대
매일 우리에게 ‘양식’이 되시는 분이 계십니다. ‘생명의 양식’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주님. 그분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 매일 내게로 옵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또 다른 생명으로 되살아나십니다.
‘생명’이란 단순한 ‘육신’의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보다 본질적인 것을 말하지요. 특히 생명의 양식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주신 뜻은 생명으로의 초대입니다. 영원하신 분께로 초대입니다. 영원한 사랑으로 부르심입니다.
‘사람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모든 피조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물리적인 양식만이 아닌 하느님의 생명.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