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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23. 2021

동물병원

곰과 여우의 싸움


고즈넉한 숲 속에 자리한 동물병원. 보슬비가 내리는 한밤 중이다. 그런데 모두가 코를 골면서 잠든 시간에 91 병동 복도에서 곰과 여우가 한바탕 싸우고 있다.


"야! 곰! 저 냉장고가 야? 너 혼자 쓰라고 있는 건 줄 알아! 저 병실에 있는 4마리 동물이 같이 쓰라고 있는 거잖아. 근데 왜. 너는 너 혼자 냉장고를 쓰면서 다른 동물은 물병 하나 넣어두지 못하게 하는 거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 너처럼 욕심 많고 자기만 생각하는 동물은 처음 본다."


싸움의 발단은 남편의 병간호를 하러 온 여우 부인이 앞 발이 덫에 걸려 치료받으러 온 욕심쟁이 곰 부인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시작되었다.


네 병의 환자를 위한 병실에는 냉장고가 하나뿐이다. 이렇다 할 규정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병실에 있는 작은 냉장고는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고, 패스트푸드나 간단한 음료수를 넣어둘 수 있도록 일반 가정용 냉장고보다 용량이 적었다.


때문에 냉장고 사용은 공공연하게 힘이 센 동물의 개인용이나 다름없었다. 힘이 약하고 자기주장을 쉽게 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음식물이 썩어나가는 한여름에도 냉장고 사용 꿈에도 꿀 수 없었다. 자기 권리는 자기가 챙겨야 한다지만,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아서 다람쥐나 하루살이 곤충들은 언감생심에 바라지도 않았고 냉장고 근처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사정이 달랐다. 곰 부인의 비리와 약점을 간파한 여우가 앞 발 다친 곰 부인의 욕심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은 것이다. 두 동물의 몸싸움은 치열했다.


이참에 끝장을 보려고 덤비는 여우와 비록 앞 발을 다쳐서 전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지만 힘 하면 동물의 왕 사자의 오른팔인 곰 싸움은 승부를 쉽게 가릴 수 없었다.


옆에서 두 를 쫑긋 세우고 있던 빨간 눈의 토끼 간호사들은 어쩔 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연약한 토끼들이 육식동물인 여우와 곰의 몸싸움을 말릴 방법은 없다. 그냥 피난민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닐 뿐이다. 자다가 깬 다른 동물들은 팔짱을 낀 채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곰과 여우의 싸움에 내기를 걸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10층 펜트 하우스 엘리베이터에 황금 불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모든 일이 정리가 됐다. 시간이 15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간 듯.


3초 전만 해도 91 병동은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터와 다르지 않았었는데, 펜트 하우스 엘리베이터의 황금 불빛이 깜박이는 순간 모든 게 15분 전과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 물고 뜯던 여우와 곰도 자기 자로 돌아가서 자는 척했고 토끼 간호사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10층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거기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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