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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21. 2021

소금단지

거룩함의 의미


# 인과응보(因果應報)


어느 집에 효심 많은 맏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같이 밥을 먹을 때면 항상 시아버지 국에 고기를 듬뿍 담아 드리고 자신의 국에는 고기 건더기를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식사 기도 시간에 시아버지는 몰래 국을 바꿔 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맏며느리가 곧 눈치를 채고 그것을 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맏며느리의 자녀들은 항상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부모님을 먼저 대접하는 효성이 지극한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는 항상 부모님 대접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정성껏 대접하지 않고 대신 자기 자녀들을 잘 먹였습니다.


노인들에게 내놓는 음식은 언제나 가장 험한 그릇에 먹다 남은 것을 담아서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는 가장 좋은 음식들만 먹였습니다.


둘째 며느리도 어느덧 할머니가 되어 자녀들의 음식 시중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항상 맛있는 것은 감추었다가 손자들에게 주었고, 먹지 못하고 버릴 것들만 어머니에게 대접했습니다.


음식을 담아온 그릇도 고양이 밥을 주던 그릇을 물로 씻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자기가 대접한 대로 결국 대접을 받는 것을 깨다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녀는 탄식 속에 남은 여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 ‘코르반’(קרבן)


‘코르반’(קרב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돈이나 재산 등 자신의 소유물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일종의 서약문입니다.


그런데 코르반이라는 말에는 “더 가까이 나아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카레브'(קרב)인데, 이 또한 “다가가다”, "가까이 오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코르반'과 그 희생(sacrifice) 제물 바치는 행위에는 소중한 제물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분과 더욱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코르반'으로 바쳐진 재물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속인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


의미상으로 보면, 코르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자신의 것을 온전히 바치고자 서원하는 '순수한 제사적 관습'이었습니다.


# 코르반의 위선


하지만 제사보다 젯밥과 재물에 관심 더 많았던 몇몆(?) 유대인들은 부모를 공양할 때 드는 비용조차 아까워하며, 그 비용에 코르반이라는 명목을 붙여 자기 배만 채웠습니다.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쳤지요.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마르 7,11-13.)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꾸짖은 것은 이 사람들이 코르반의 본 정신을 악용한 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제 좋은 방식으로 제 멋대로 풀이한 것이지요.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6-8.)


# 종교적 가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도, 심지어 부모가 도움을 청해도 그들은 ‘코르반’이라고 말하면서 가진 재물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순수한 제사적 관습'인 '코르반'이라는 전통을 이용해 연로한 부모를 부양할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쓴 ‘종교적 가면’을 오늘 예수님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가면 뒤에 숨어서 '헛되이 주님'을 섬기며, 위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 거룩함의 의미


레위기 19장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며, 제일 먼저 부모를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3절). 그리고 이웃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13절).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 멀리 있지 않음을 묵상합니다.


창조주께서는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고 움직이고, 날아다니는 것을 보시고 보시기 좋았다 하십니다.


번식하고 번성하고 가득 채워라 하십니다. 창조주의 마음은 언제나 풍성하고 넉넉하고 평화롭습니다.


아귀다툼은 위선자들이 즐겨하고 그들의 마음 밭에서 일어나고 벌어지는 상황들이 아닐까.


사랑이신 하느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 마음에 들고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거룩함이라는 말. 그동안 너무 특별한 언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니었는지. 나 같은 사람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언어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랬다면 오늘은 그 마음을 고쳐먹어 봅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그대로 부모를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는 일.


오늘은 축복의 근원이신 아버지의 마음처럼, 번식하고 번성하고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시는 창조주의 마음처럼. 어제보다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21.)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장)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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