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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25. 2021

소금단지

사회적 배제



뇌는 정말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구별하지 못할까?


'사이버볼(Cyberball)' 실험이 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심리학과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팀이 200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실험입니다.


사이버볼은 세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 공을 주고받는 컴퓨터 게임인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두 명의 플레이어가 실험 참가자 한 명에게 공을 주지 않습니다. 실험 참가자를 소외를 시키는 게임인데, 일명 사회적 배제(왕따) 실험입니다.


여기서 두 명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 설정된 가상의 인물입니다. 실제로 실험에 참가자 한 사람은 한 사람뿐인 것이죠.


하지만 이를 모르고 실험에 참가한 당사자는 자신이 다른 두 사람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그는 지금 상황이 게임이라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보다 자신이 버림받고 있고, 왕따 당하고 있다는 감정에 사로잡히겠지요. 바로 이때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팀은 실험 참가자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외감을 느낀 사람의 뇌가 신체적 통증이 있을 때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 것이죠. 즉, 집단에서 배제되었을 때, 인간이 받는 고통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을 때의 고통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외와 배제, 거부와 무시당할 때 뇌가 느끼는 충격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을 때의 고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는 말에 숨이 멈춥니다.


이 실험 결과로 인간의 뇌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구별하지 못하고 똑 같이 아파하고 괴로워했던 것이죠.


우리는 슬픈 감정과 괴로운 감정을 느낄 때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 우리의 몸은 '마음만 아프다'는 은유적 표현에 그쳤던 것이 아니고 실제로 온몸이 그만큼 고통스럽고 아파했던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한 사회와 무리, 혹은 집단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배제당하고 싶지 않아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을 수 있습니다.


#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동물의 왕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다 보면 병들고 상처를 입은 동물은 무리와 집단에서 낙오되거나 스스로 외지고 후미진 곳을 찾아가는 것을 간혹 보게 되는데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고통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겠고,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함이겠지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혼자 있을 곳을 더 찾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지요. 아픈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돼서 그런가 봅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마태 8,6-7.)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 8, 14-15.)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마태 8, 16-17.)


오늘 예수님께서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든 이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을 찾아가십니다. 당신의 말씀과 손길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 지내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직접 찾아가시거나 찾아온 이들에게 자비(慈悲)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거룩한 행위이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에게 위협적이거나 더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움을 요청할 힘조차 없는 이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제보다 좀 더 행복하게 가꿀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창세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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