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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26. 2021

The Heaven

두 여자


# 감추어진 진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지혜 1,13-15; 2,23-24)


# 예수


우물가에서 여인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그는 도와주는 이, 구원자다.”

“그는 사람들을 축복해주고 죽음으로부터 되살리는 운명이야!”


집으로 향하던 여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 기쁜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딘 걸음보다 앞서 갔다. ‘구원자’, ‘메시아’, ‘그리스도’라 불리는 그의 존재를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다. 그 구원자가 곧 이 마을을 지날 것이라 한다.


나자렛 Nazareth 예수(ישוע)의 이름 앞에 붙은 메시아( מָשִׁיחַ, 기름 바른 자), 구원자, 예언자, 주님의 이름의 오시는 분, 랍비(רִבִּי ribbī, 나의 스승, 나의 주인)라는 수식어에서 두 여인은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정보를 얻은 것 같았다.


"드디어 창조주께서 당신의 사랑을 보내셨구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 일을 내게 하셨음이오, 그 이름은 능하신 분이시로다."


우물가에 둘러 있던 여인들이 돌아가며 찬송을 하고 있다. 메시아. 메시아. 최고의 경애와 존중과 믿음의 마음이 담겨 있는 별칭. 우물가의 여인들이 그를 두고 부르는 별칭만으로도 집으로 향하는 여인들의 걸음에 희망의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 천벌 받은 ‘두 여자’


서둘러 집으로 가는 두 여인 중에 한 여인은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소녀의 어머니다.


사실 열둘이라는 나이와 햇수에 상관없이 여자로 태어난 것이 이미 그녀에게는 천벌을 받은 것이고, 죽을죄를 안고 태어난 것인 양 당시 여인들의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자라는 이름만으로도 죽은 듯이 살아야 했다. 그 절망적인 현실은 혈루증을 앓고 있는 병자와 다름없었다. 공동체나 사회에서 힘이 없고 존중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축복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리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그분의 소식을 전하자 회당장인 남편은 한가닥 희망의 끈이 쥐어진 듯했다. 하지만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소녀의 생각은 달랐다. 소녀는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 그런데 어떻게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분을 둘러싼 군중들과 제자들은 모두 남자들뿐이잖아요. 그 사람도 부정 탄다고 저를 가까지 하지 않으면 어쩌죠? 저는 그냥 이대로 죽어가야 하는 건가요?” 소녀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사랑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기쁜 소식은 여인들에게 요원하기만 했다. 구원의 소식이 온 유다 땅과 데카폴리스에 전해졌지만, 막상 여인들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큰 벽이 마주하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수많은 군중이 따르는 그와 마주하기까지 여성이라는 자신의 성별과 ‘부정 탄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당장 눈앞에 드러난 장벽이 되었다.


소녀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듯 보였다. 소녀의 어머니는 그런 딸의 손을 잡은 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만 흘렸다. 회당장인 소녀의 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거라. 아버지가 한 번 나서보마… 그분이 우리 집을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마."


소녀의 아버지 야이로는 그 길로 그분을 찾아 수소문했다. 회당장이라는 자신의 체면을 벗어던지더라도 그분을 모시고 와야만 했다. 죽어가는 딸을 위해서라면 부모로서 못할 짓이 무엇인가?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은가.


회당장이 그의 일행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무리가 호숫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야이로는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 다짜고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


그리고 다른 한 여인. 그녀는 열두 해 동안 피 흘리는 혈루증을 앓고 있다. 그녀는 숱한 고생 속에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병을 고치지 못하고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그러나 병세는 더 악화되었다. 이 여인도 저주받은 존재로 여겨졌고, 외로운 여인이었으며, 의존적인 존재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날들을 고통 중에 있었고, 잔인한 인생을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버림받은 버러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스스로도 천벌 받은 존재, 버림받은 존재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힘도 없었지만 자신감도 없었다. 하지만 구원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 수십 년을 절망 가운데 있었고 헤아릴 수 없는 나날들을 고통과 불행한 처지에 시달렸지만, 그의 이름이 ‘구원자’救援, salvatio, יְהוֹשֻׁ֣עַ(예수와) 아니던가." 그녀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분을 둘러싼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군중에 섞여 그의 뒤로 다가갔다. 그러나 죄인인 몸을 군중 속에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끝없이 되뇌었다.


'꼭 한 번만이라도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만일 그가 손을 잡아준다면 앓고 있는 병이 나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몸을 만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죽을힘을 다 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질 수만 있다면.'


수많은 군중들이 에워싸고 서로 밀치며 아우성이라 더 이상 다가갈 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은 더 큰 갈망과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그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댈 수 있다면. 그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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