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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26. 2021

The Heaven

삶과 죽음, 그리고 "탈리타 쿰"


# 죽어가는 여자들


천벌 받은 ‘두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나의 이야기다.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면 예수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을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께 엎드려 절하며,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한다.


그의 이름은 ‘야이로’(Ἰάϊρος) ‘빛을 비추다’ 또는 ‘일으켜 주신다’, ‘구원을 베풀다’는 뜻이 담긴 이름인데, 당시 회당장들은 그 사회에 하느님의 빛으로 안내하는 사람들이자 백성의 지도자에 속했다. 회당장은 예배를 주관하고 회당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이들로 대중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를 찾아와 엎드려 절하며 부탁한다는 것은 대단한 스캔들이다. 거만하고 교만했던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달리 ‘야이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했던 것이다.


#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다


그리하여 예수의 일행과 함께 회당장의 집으로 향해가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의 뒤로 가서 그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그 믿음대로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는 곧 자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떨며 나와서 예수 앞에 엎드려, 자기가 무슨 까닭으로 당신께 손을 대었으며, 또 어떻게 즉시 병이 나았는지 온 백성 앞에서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가 그녀에게 말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 이미 죽은 딸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예수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회당장은 예수께 이렇게 말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자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가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던 이들이 예수를 비웃었다. 예수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했다.


“탈리타 쿰!”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아이의 영이 되돌아와서 아이가 즉시 일어섰다. 예수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지시하셨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 탈리타 쿰’(Ταλιθὰ κούμ)


가산을 탕진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여인과 이미 숨을 거둔 딸. 이 이야기는 다른 누구의 과거도 아니고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도 아니며, 신화도 아닙니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믿음으로 딛고 일어난 이들. 죽음과 불행으로부터 ‘탈리타 쿰’ 한 이들의 실화입니다. 지금 바로 나의 이야기이며, 오늘날 내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생명이시고 사랑이신 그분은 오늘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말씀하십니다. 죽어가는 이들과 이미 죽은 이들. 그들에게 명령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탈리타 쿰!”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단점과 장애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하고 묵인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방관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많은 이들이 자신과 이웃의 죽음을 무관심 속에 지나치는 반면에 죽어가던 여인과 야이로는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의 눈길이 믿음의 여인에게 가도록 여인을 내세우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주님께서는 여인에게서 세상과 공동체로부터 받은 두려움을 없애주셨고, 그 여인의 믿음을 모든 이에게 본보기로 세우십니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28,15).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믿음이 단순한 치유를 넘어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건이었다면, 이미 죽은 소녀가 되살아 난 사건은 자신의 믿음이 아닌 타인의 믿음과 그에 따른 기도와 간구로 구원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생명을 주고 인간을 다시 살리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스스로 믿는 이들뿐만 아니라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하며 간구하는 이들의 전구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탈리타 쿰’(Ταλιθὰ κού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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