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흐르는 물처럼
부자들과 유다의 지도들이 한 곳에 모였다. 상류층들의 긴급 모임이다. 메시아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삶을 온 유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헛소문이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의 대부분은 로마 제국과 결탁하여 민족과 서민들의 피로 그들의 곳간을 채우는 이들이었다.
"자자. 여러분! 회의가 길어질 것 같으니 제비뽑기로 정합시다. 누가 그 예수라는 랍비를 찾아갈 것인지 먼저 정합시다." 모임의 회장 격인 유다 지도자 한 사람이 의견을 냈다.
회의가 길어진 이유는 그 누구도 예수를 직접 만나서 '하늘나라'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소위 지성인이자 지도자라고 일컬어지는 그들 스스로 믿음도 용기도 없는 나약한 지도자로 전락하기 싫었을 뿐만 아니라 타락한 부유층이라는 손가락질도 받기 싫어서였다.
모임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비뽑기에 찬성했고, 곧 그들 중에 가장 젊은 이가 뽑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제비뽑기는 최고 부유층과 최고 지자들 몇몇에 의해 담합되고 조작된 것이었다. 당사자만 모르는 '합리화된 공리주의'라는 명분으로.
제비뽑기에서 뽑힌 부자 청년은 멀리서 예수와 그를 따르는 군중을 보자 달려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왜 너는 나에게 와서 선한 일에 대하여 묻느냐? 참으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하고 그가 대답했다.
그 젊은이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 젊은이가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예수가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대견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나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예수는 제자들을 둘러보며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고 말했다.
제자들은 그의 말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가 그들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창조주께서는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
흐르지 않는 것과 흐르는 것
“너희가 먹지 않는 빵은 굶주린 이들의 빵이고, 너희 옷장에 걸어둔 입지 않는 옷은 헐벗은 사람들의 옷이다. 너희가 신지 않는 신은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의 신이고, 너희가 금고에 깊이 넣어둔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이다. 너희가 실천하지 않은 자선행위는 너희가 범하게 되는 수많은 불의이다.”(성 바실리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고향에는 두 개의 큰 호수가 있습니다. 북쪽에는 갈릴래아 호수가 있고 남쪽에는 사해가 있습니다. 두 호수는 요르단강으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갈릴래아 호수는 계속 요르단강 쪽으로 물을 흘려보냅니다. 물이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그런데 사해는 계속 받기만 하고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축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내게 허락하신 하느님의 축복을 형제들과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려 할 때, 하느님의 축복이 더욱더 흐르고 넘치리라 믿습니다. 썩어 없어질 재물에 집착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미성숙한 아이처럼 행여 자기가 모든 것을 이룬 것인 양, 모은 재물이 전부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계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또 지금 현세의 삶으로 생을 끝마치고 싶지는 않으시죠?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어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분도 같은 분이십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자유롭고 풍요롭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부를 좋은 일을 하고 선을 실천하여 진정한 부유함을 느낄 수 있기를.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의 참된 부자이기에.
이렇게 자기 미래를 위하여 훌륭한 기초가 되는 보물을 쌓아, 참 생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7-10; 18-19)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지혜 7,11)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지혜이신 하느님 안에 머물고 그분을 차지할 때에 모든 좋은 것이 다 주어집니다. 우리가 찾는 참 행복은 재물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을 아는 지혜를 지니는 데에 있습니다.
지혜를 담은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 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을 지니고 있으며 능력을 발휘하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행복해지지만, 말씀을 거절하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신명 32,47)
*
참된 부자
조건 없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그분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주인을 잃은 사람이지요. 섭리자이시고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망각한 삶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10,17) 하고 묻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왔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스스로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축복도 받았고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거짓 부자가들이 가지고 있는 착각입니다.
사실 부자 청년은 열심히 살았고 계명을 충실히 지켜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불안했습니다. 과연 이것만으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을까?
수많은 고민과 걱정을 해봐도 인간은 하느님 앞에 한낱 입 없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제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스스로 생명을 연장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지구는 자전도 하지만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태양 없이는 지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는 생명의 주님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고’ 물어봅니다. 소유한 것은 많고 스스로 노력한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그는 절박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지고 있는 부를 더 누리고 싶었겠지요.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느님 나라의 삶까지 소유하고 싶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왔다는 부자 청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이르시지요.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10,21) 하고 이르십니다.
부자 청년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가진 재산, 곧 자신이 의지해 왔던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 곧 축복은 주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아는 것. 마음으로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하십니다. 자유로워진 다음, 사랑을 실천하고 난 다음. 본래 주인에게 내려놓고 난 다음.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재물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고 매이는 순간. 주인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곧장 불행으로 치닫게 됩니다.
축복과 기쁨은 재물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삶입니다. 부자 청년은 끝내 자신의 재물을 나누지 못하고 재물을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신앙인들에게는 하느님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따르는 삶은 우상 숭배나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느님을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세상의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는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재물의 노예가 되어 참된 자유, 참 행복을 놓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이는 태양의 존재를 모르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