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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07. 2021

소금단지

무엇하러 가는 길인가?


# 무엇하러 가는 길인가?


먼 길을 나서야 합니다. 그 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단단히 준비해야겠지요. 여비와 신발과 여벌 옷은 당연히 준비해야겠지요. 침낭도 가스버너와 식기들, 텐트는 좀 넉넉한 것으로 준비해야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또 뭐가 필요할까요? 우선 큰 가방부터 마련하면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신발도 등산용과 운동화 두 종류로 준비했습니다. 나는 소중하니까. 화장품 중에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게 신상이라서 한 서너 개 샀습니다.


아 참! 겉옷과 지팡이는 빼놓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모를 추위를 대비해야 하지요. 요즘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는 노숙할 때 들짐승이나 폭력배들의 위험에서 내 목숨을 지켜줄 것입니다. 이참에 전기충격기도 하나 구입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스승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하시네요. 헐.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네요. 짐이 많아서 자동차 한 대 구입할까 고민하던 중에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당장 빌어먹어야 할 처지입니다. 헐. 배울만큼 배웠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어떻게 동냥을 청하지요? 바오로 사도처럼 천막이라도 짜야할 판이네요.


# 성 프란치스코가 갈망했던 것


성 프란치스코가 ‘포르치운쿨라’라고 불리는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을 수리하고 있던 어느 날입니다. 1208년 2월 24일 성 마티아 축일이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였을 때였지요. 미사 중에 프란치스코는 사제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는 복음 말씀을 듣습니다.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마태 10,9-10.)


이 말씀을 듣는 순간 프란치스코는 그의 마음속에 가려져 있던 모든 장막이 걷히는 것을 느끼며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외치지요.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은 내 진심으로 갈망하던 바이다.”


# 맑은 가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참행복. 주님의 영과 주님의 평화는 우리의 영혼이 자유로울 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잡다한 피조물에 포로가 되어있거나 썩어 없어질 것에 묶여있지 않을 때 말이지요. 세상의 온갖 무게에 짓눌려 있는 영혼에게 자유로움은 그야말로 뜬구름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겠지요.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본래 우리가 세상에 처음 파견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선물로 주신 달란트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세상에서 누리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돌아본 내 영혼에 너무 많은 것들이 덧붙여 있었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소유욕에 지친 영혼. 시간이 지날수록 부자연스럽고 지쳐가는 영혼.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온갖 불순물들.


내면이 빈곤한 사람에게 유혹자는 속삭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라고. 더 많이 소유해야 나머지 삶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진다고. 그런데 왜 채우면 채울수록 더 갈증이 생기고 목이 타는 걸까요?


분명 내게 불필요한 것은 짐인 것 같습니다. 쓰레기처럼 버릴 수도 없는 짐. 그만큼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묶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길지 않은 삶, 그렇게 길지 않은 여행이 매일 축제이기를. 자유로운 소풍이기를.


우리의 내면이 빈곤이 아니라 맑은 가난이기를 바랍니다. 온갖 불순물들에서 정화된 영혼으로 세상과 이웃과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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