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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08. 2021

소금단지

뱀의 역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고대 근동지역에서 격언으로 흔히 쓰던 ‘뱀같이 지혜로워라’는 말씀과 이와 짝을 이루어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하신 말씀은 제자들의 선교 방식이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염려하는 말씀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뱀을 그들의 상용 문자에서 지혜의 상징으로 나타내었듯이 창세 3,1에서 처음 등장하는 ‘뱀(נָּחָ֑שׁ, 나하쉬)’은 선악과에 얽힌 이야기 때문에, 늘 부정적인 심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가 전하는 뱀은 사람과 말하고 논쟁할 수 있을 만큼 영특하기도 합니다.


영리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 그리고 지혜롭고 슬기롭지만,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생물이 성경에 등장하는 뱀의 이미지인 셈인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창세기는 뱀에 대해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창세 3,1) 여기서 ‘간교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룸(עָר֔וּם)’입니다.


‘아룸(עָר֔וּם)’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뱀의 역설처럼 양면적이면서도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간교한(창세 3,1), 간사한(욥기 15,5), 교활한(욥기 5,12), 슬기로운(잠언 12,16, 22,3), 지혜로운(잠언 14,8).


예컨대 ‘아룸(עָר֔וּם)’이라는 말이 창세기와 욥기에서는 간교하고 간사하다는 의미로 쓰였는가 하면 잠언에서는 “영리한(עָר֔וּם) 사람은 지식을 덮어 두지만... ”(잠언 12,23.)이라는 말씀을 비롯해서, ‘뱀처럼 슬기로워지라’(마태 10,16)하신 말씀처럼. 성경 여러 곳에서 ‘슬기롭다’, ‘영리하다’는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이처럼 ‘뱀’과 ‘아룸’이라는 말은 고대 근동 지방 사람들에게 ‘구리뱀’(민수 21,8-9)의 형상처럼 긍정과 부정, ‘생(生)’과 ‘사(死)’, '슬기'와 '간교'와 같이 상황에 따라 양면적이고 이중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부정적인 ‘뱀’이 상징하는 패러독스처럼 말이지요. -참조: 김명숙, 가톨릭신문-


# 하느님의 지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이 마주하게 될 박해를 염려하시며, 뱀의 지혜와 더불어  비둘기(성실과 평화, 순수함과 속죄물을 상징하는)의 순박함(순결함)을 함께 엮어서 당부하십니다. 곰곰이 새겨들어야 할 의미심장한 말씀인데요.


뱀의 지혜를 닮되, ‘너희의 영특함이 영악함이나 간교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성령께 의탁하여라’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 신과 함께 하는 지혜


미국의 개척사에 보면 18세기 초 두 명의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배를 타고 와 신대륙인 미국에 내렸습니다. 그 두 사람은 ‘마르크 슐츠’와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그런데 마르크 슐츠라는 사람은 ‘내가 이곳에서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서 내 자손에게는 가난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도록 돈을 벌어야 하겠다.’라고 생각하고 뉴욕에다 술집을 차렸습니다. 그의 소원대로 엄청난 돈을 벌어서 당대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왔으니 이곳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150년이 지나 5대 자손들이 태어난 후에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이 두 사람의 자손들을 추적해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결과는 이랬습니다.


마르크 슐츠의 자손은 5대를 내려가면서 1062명의 자손을 두었습니다. 교도소에서 5년 이상인 형을 살은 자손이 96명, 창녀가 된 자손이 65명, 정신이상, 알코올 중독자만 58명,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자가 460명,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살아가는 극빈자가 286명이었답니다. 모두 965명이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 에드워드 조나단은 당대에 프린스턴 대학을 설립하고 5대를 내려가면서 1394명의 자손을 낳았습니다. 자손 중에 선교사116명이 나왔고, 예일 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교수, 교사가 86명, 군인이 76명, 나라의 고급 관리가 80명, 문학가가 75명, 사업가가 73명, 발명가가 21명, 부통령이 한 사람, 상하원의원 주지사가 나왔고, 교회 장로 집사도 286명이 나왔습니다. 모두 816명이 사회의 명망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마태 10,21.)


많은 이들이 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갈망하고 또 탐해서는 안 되는 것을 탐할 때 내분과 분열, 시기와 다툼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전해주고 남겨야 할 유산은 참된 것과 영원한 것입니다.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은 겉으로 포장된 그럴듯한 아름다움이 아닌 참되고 슬기로운 삶의 지혜입니다.


#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뱀의 상징적 의미 가져다주는 지혜는 우리에게 '모든 현상에 담긴 양면성에서 선을 찾아 본받는 지혜'를 요청합니다. 또한 세상의 삶에서 하느님께 받은 우리의 달란트를 남용하여 영특함이 영악함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뱀처럼 슬기로운 제자’는 박해나 환난 중에 오히려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께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도록 내어 맡기는 삶 말이지요.


그러므로 비둘기의 순박함과 함께 하는 뱀의 지혜는 진정으로 우리가 갈망해야 할 것과 영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지고 가신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영악함이 아닌 예수님처럼 이리 떼 가운데에서 십자가를 지는 하느님의 지혜이지요.


오늘 하루도 세속의 무기력하고 유한한 질서에 사로 잡히거나 타협하지 않기를. 한계 상황에서 언제나 성령께 의탁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어제보다 더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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