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계영배

by 진동길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마태 14, 6-8.)


# 계영배(戒盈杯)


춘추시대에 제환공(齊桓公)이 군주의 올바른 처신을 위해. 늘 곁에 놓아 마음을 가지런히 했던 그릇(欹器). '계영배(戒盈杯)'라는 잔이 있습니다.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렸다고도 하는데요.


여느 술잔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잔의 7부 정도까지 술을 채울 때는 평범한 술잔입니다. 그런데 7부 그 이상 차오르게 되면 갑작스레 잔 속에 있던 술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리는 잔입니다.


이름 그대로 경계할 계(戒), 찰 영(盈), 잔 배(杯). '넘침을 경계하는 잔'입니다. 끝없는 탐욕에서 늘 깨어있기 위한 제환공의 의지의 상징이었습니다.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는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도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재물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고 하는데요.


# 금어초(金魚草)


탐욕. 욕망하면 떠오르는 또 한 가지.


꽃의 모양이 금붕어를 닮아 '금어초'라고 합니다. 7월에 피는 이 꽃은 금붕어의 꼬리처럼. 혹은 꽃에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예뻐서 웨딩부케를 만들기도 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런데 이 꽃이 시들어 마르면 해골 모양으로 변한다고 하지요.


때문에 '악마의 꽃' 또는 '해골 플라워(skull flow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두 개의 극단적인 얼굴을 가진 금어초.

꽃말도 '욕망, 탐욕'입니다.


건강한 욕망. 건강한 갈증은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을 제시는 동인으로 작용합니다. 나아가서는 우리의 본성을 넘어서서 초월성으로 우리의 영성을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건강한 욕망이 과욕과 탐욕으로 내 안에서 변질되어 도가 지나치게 되면 사고가 나지요. 급속도로 무섭고 끔찍한 악마의 꽃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초월성이 본성에 잠식되는 운명을 맞이 할 수도 있습니다.


# 자화상


하느님의 전능은 무능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진ㆍ선ㆍ미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갈망하는 가난한 영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 헤로디아와 그 딸의 얼굴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온갖 비행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고 타인의 생명은 죽이려 드는 우리의 숨겨진 얼굴, 어둡고 그늘진 우리의 얼굴입니다. 죽어가는 생명 앞에 무감각하고 눈물 흘리지도 않으며, 도리어 춤을 추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육신의 죽음으로 새 생명인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낳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의인들의 고통과 순교자들의 희생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어머니의 산고와 그 사랑에서 확인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전능은 어머니들의 모성과 다르지 않기에 의인들과 순교자들도 고문과 죽음이 두려웠고 또 고통과 저주를 멀리하고 싶었지만, ‘자기의 죽음’ 없이는 새 생명이 탄생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죽음보다 더 큰 기쁨과 영원한 행복을 알았고 영원한 생명이 자신과 함께 살아있음을 깨달았기에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 새 생명을 위하여


세상에 새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누군가의 피 흘림이 있어야 함을.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탄생함을. 의인들과 순교자들의 피는 지금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죽는 죽음은 자신도 이웃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신 분과 이웃을 위한 죽음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시 태어날 생명까지 구원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더 작아져야 합니다. 희생과 순교로 영원한 생명이신 분을 맞이할 수 있기를. 하느님처럼 자기를 죽이고 내어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십자가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무자비한 인간의 폭행 앞에 자기를 내어놓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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