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지혜와 사랑

by 진동길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σοφία)와 기적(δύναμις)의 힘을 얻었을까?(마태 13,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서 한 말입니다.


"Where did this man get such wisdom and mighty deeds?"


# 지혜(σοφία)


지혜(σοφία, sophia)라는 뜻의 그리스 말 '소피아'는 사물에 대한 완전한 인식. 혹은 최고선(最高善)에 대한 지식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σοφία지혜의 의미는 크게 네 가지로 확장됩니다.


1. 이 세상에 속한 자연적 지혜(1코린 1,19; 2코린 1,12.)


2.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마태 12,42; 루카 11,31; 사도 7,10.)


3.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지혜(루카 2, 40; 1코린 1, 21; 에페 3, 10.)


4. 인격화된 지혜(마태 11,19; 루카 7,35.)


# 철학과 지혜


한편 철학에서도 이 말을 가져다 쓰고 있고 공유하고 있는데요. 철학이라는 그리스 말,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의 뜻을 헤아려보면 지혜에 대한 사랑입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필로소피아'라는 단 한 마디로 감출 수 없는 인간의 욕망, 그의 근원과 정점을 함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끝없는 갈증도 지혜를 사랑하는 것에서 찾았고 그 목마름의 해결 방법도 결국 지혜를 아는 것에 있다는 것을 "φιλοσοφία,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한 마디 말로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의 아이러니는 바로 "φιλοσοφία, 지혜에 대한 사랑"이 어긋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잘못된 사랑입니다. 사랑의 외도라고 해야 할까요.


# 잘못된 사랑


대표적인 한 사람을 예로 들자면 대륙의 합리론 하면 떠오르는 인물 데카르트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방법서설」에서 "dubito, ergo cogito, ergo sum 두비토, 에르고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철학적 명제를 남겼습니다.


그는 이 말로 근대 합리론의 대부가 되었고 또 그렇게 유명해졌을지 모르지만, 철학, 즉 지혜를 사랑하는 일은 끝없이 퇴보하게 됩니다. 철학의 원리이자 뿌리인 '지혜'를 '자기 자신' 안에 가두어버리는 어리석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자신 자신과 동일하게 바라본 어리석음입니다. 데카르트로 인한 지혜의 사랑은 인간의 생각 밖으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혜와 존재론의 죽음이었습니다. 절음발이 사랑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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