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미결수입니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 한 알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겠지. 저게 갑자기, 저절로, 혼자서 익어가지는 않았을 거야. 시인의 말처럼 대추 한 알이 붉게 물들기까지 견뎌내어야 했고, 버텨야 했던 무서리 내리는 밤들과 땡볕이 있었겠지. 대추알 한 알처럼. 나도 나 혼자, 저절로 익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나를 붉게 만들고 둥글게 만드는 주인이 있을 터이고 또 이웃들이 있는 거야.
미결수와 기결수
미결수와 기결수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미결수들에게 먼저 눈이 갑니다. 미결수들의 얼굴과 표정, 행동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만큼이나 기결수들과 달라 보입니다.
성가를 연습하며 미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기결수들과 함께 미결수들을 기다리다가 혼자 궁금해합니다. 유죄 판결을 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감정들이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 던져진 상황에서 왠지 어설프고 어색한 모습이 역력한 미결수들. 저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감정들일까?
곧 미결수들이 대강당에 등장합니다. 흔들리는 눈길로 불편해 보이는 미결수들을 바라보다가 내 안을 들여다봅니다. 끝없이 뿌리를 뻗어내리는 두려움, 분노. 유령 같은 걱정과 불안, 좌절과 절망. 어쩌다 간간이 양념처럼 뿌려지는 희망과 소원, 기대. 그리고 기도.
수용시설에 익숙하고 자연스럽기까지 한 기결수들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정들을 내 안에서 찾아내 읽고 있으면 나도 미결수와 다르지 않은 처지라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네 맞습니다. 나도 아직 미결수입니다. 아직은 나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미결수입니다. 감추고 싶은 죄도 많고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어두운 사연도 많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훌륭하지는 못하지만 죄인이라는 낙인은 찍히고 싶지 않은 나도 아직 미결수입니다.
우리 아버지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과 함께 지나온 삶을 정리해야 하는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포도밭주인이 오시겠지요.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입니다. (참조: 마태 21, 33; 25장 이하)
내가 잊고 싶어 했던 과거도 다 밝혀지겠지요. 그러나 다만 ‘형이 확정되는 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행복했고 축복된 날들이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판사가 아버지입니다.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저의 변호자이십니다. 그이는 언제나 형제처럼 내 곁에서 내 멍에를 기꺼이 매어주셨던 것처럼 그날에도 제 곁을 지켜주시겠지요.(1 요한 2,1.) 그이가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저도 그이의 마음으로 회개하는 이들 곁에 있겠습니다. 미결수들과 함께 주님의 희생제사를 봉헌하며, 모든 이들을 측은한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그이의 마음을 닮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