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씨앗을 심는 아이
그다음 날 저녁, 은별이는 도윤이와 바닷가 공터에서 작은 조약돌을 모아 별 모양을 만들었다. 둘이 손뼉을 마주칠 때마다 웃음소리가 파도에 실려 멀리 퍼졌다.
“도윤아, 할아버지가 어젯밤에 이야기해 준 거 알아? 고양이가 달빛을 닦는다는 거야.”
“진짜? 그런 고양이가 있다면, 나도 한번 도와주고 싶다.”
그 말을 들은 은별이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엔 별씨앗 이야기 해주신대. 나중에 너한테도 알려줄게.”
저녁이 되자, 은별이는 어제처럼 담요를 들고 오두막 앞 흔들의자에 앉은 윤 노인 곁으로 다가갔다. 하늘엔 어제보다 별이 더 많이 떠 있었다.
“할아버지, 오늘은… 어떤 이야기예요?”
윤 노인은 은별이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하며 대답했다.
“오늘은 별이 심은 씨앗에 관한 이야기란다.”
달빛을 닦은 그날 이후, 별이는 밤하늘을 더 자주 바라보게 되었어.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이 자꾸 어두워졌지. 별도 흐릿했고, 달도 구름에 자주 가려졌단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엔 피곤함과 무기력함이 가득했어.
별이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을 근처 느티나무 아래를 걷다, 땅 위에 작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어. 그것은 투명하게 빛나는 아주 작은 씨앗이었지. 그 옆엔 낡은 종이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단다.
“잊힌 마음 하나, 조용한 물 한 모금, 따뜻한 말 한 줌. 이 셋을 모아 심으면, 하늘은 다시 환해지리라.”
별이는 그 씨앗을 들고 사람들이 잊어버린 마을 공터로 갔어. 잡초만 무성했던 그곳에, 별이는 정성스럽게 씨앗을 심고 매일 밤 물을 주며 말을 건넸지.
“오늘은 도서관 아줌마가 내 손을 꼭 잡아줬어. 그 따뜻함을 너에게도 줄게.”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었지만… 네가 자란다면, 내일은 더 괜찮을지도 몰라.”
그 말들이 씨앗에게 닿았는지, 어느 날 밤 그 자리에서 작은 빛이 피어올랐단다. 마치 새별이 막 돋는 순간처럼 조용하고, 또렷하게.
별이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속삭였어.
“그래… 잊힌 마음도, 소중히 돌보면 다시 자라나는구나.”
그날 이후, 밤하늘은 조금씩 다시 환해졌어.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지만 자주 웃게 되었고, 서로에게 말 한마디를 더 건네기 시작했지.
이야기를 마친 윤 노인은 조용히 은별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작은 조약돌을 손에 쥔 채 고요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제 마음에도… 그런 별씨앗이 자라고 있을까요?”
윤 노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있단다. 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윤이와 웃고, 나랑 이렇게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건 이미 씨앗에게 물을 주고 있는 거야.”
은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 내일도 와야겠어요. 별씨앗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하늘 높이 반짝이는 별 하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은별이의 꿈속에도 조그맣고 빛나는 씨앗 하나가 살며시 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