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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들이 지나는 길

1. 달빛을 닦는 고양이

by 진동길
ChatGPT Image 2025년 4월 22일 오후 09_56_53.png

바닷가 마을의 밤은 언제나 파도 소리로 문을 연다.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는 물결은 마치 세상이 고요하게 숨을 쉬는 듯, 느리지만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시간을 재고 있었다.

윤 노인은 늘 그렇듯 오래된 오두막 앞, 삐걱거리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무 바닥엔 한낮의 햇살이 남긴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눈앞으로 펼쳐진 바다는 어둠 속에서 은빛 달빛을 머금은 채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당에서 사락사락 발소리가 들리더니, 두 손이 살짝 그의 눈을 가렸다.

"할아버지, 누구게요?"

"허허허. 우리 은별이 아니면 누가 있겠느냐?"

"딩동댕! 맞았습니다!"

은별이는 낄낄 웃으며 할아버지 무릎 옆에 앉아 담요를 덮었다. 손에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팔찌 하나가 들려 있었고,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맑고 선명했다.

"할아버지, 오늘은 어떤 이야기 들려주실 거예요?"

윤 노인은 손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길을 바다 너머로 돌렸다. 구름 사이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고, 바다는 그 빛을 조심스레 품고 있었다.

"오늘은… 달빛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까?"

"달빛이요?"

"그래. 아주 오래된 이야기란다. 달빛을 소중히 여기던 아이와, 달을 닦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야."

은별이는 숨을 죽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바닷바람이 조용히 담요 끝자락을 건드렸고, 그 속에서 이야기는 천천히 시작되었다.




� 옛날 옛적, 달빛을 닦던 고양이의 이야기


아주 오래전, 깊은 산골짜기 마을에 별을 좋아하는 소녀 별이와 달빛을 아끼는 소년 하랑이 살고 있었단다.

어느 날 밤, 별이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마당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어. 별이 유난히 흐릿했던 그날 밤, 낡은 지붕 위에 이상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걸 본 거지.

별이는 궁금한 마음에 사다리를 타고 조심조심 지붕 위로 올라갔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은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보드라운 붓으로 달빛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거야.

"달빛을… 닦고 있었어요?"

은별이의 목소리는 바람결처럼 가느다랬다. 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 별이도 깜짝 놀랐지. 그래서 조심스레 고양이에게 물었단다.

‘넌 왜 달빛을 닦고 있어?’

고양이는 붓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단다.


"달빛엔 사람들의 슬픔과 근심이 하루 종일 묻어오거든. 그것들을 닦아내야, 사람들이 밤에 편히 잠들고 좋은 꿈을 꿀 수 있지 않겠니?"

은별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파도 소리 사이로 천천히 되물었다.

"정말… 그 조그마한 붓질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되는 걸까요?"

윤 노인은 빙긋 웃으며 손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별이도 그렇게 물었단다. 고양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지.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그 속에 마음이 담기면 세상을 조금은 밝게 만들 수 있단다."

“그래서 별이는, 고양이와 함께 달빛을 닦아주었어. 붓을 쥐는 손끝이 서툴렀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단다.”

“그날 밤 이후로, 별이는 밤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어. 사람들의 얼굴도 조금씩 밝아졌고, 무엇보다 별이 자신의 마음에도, 조그마한 달빛 같은 평안이 퍼지기 시작했지.”

은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있었고, 숨결은 느릿했다.

"할아버지… 나도 그런 작은 행복을 느껴보고 싶어요. 달빛처럼 조용하지만 따뜻한 행복이요."

윤 노인은 대답 대신 아이의 손을 가만히 감싸주었다. 은별이의 손은 작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만한 온기가 있었다.

저 멀리 하늘 한가운데, 달이 더 환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파도는 그 빛을 따라 은빛 선을 그리며 다가왔다가, 조용히 다시 돌아갔다.


밤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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