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이름을 듣다
나침반은 오랜 침묵 끝에 다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은 지도의 한 구석에도, 오래된 이야기 속에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외진 언덕 너머였다.
하지만 아이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이야말로 이 여정의 시작이자 끝,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야 할 자리라는 것을.
언덕을 향해 나 있는 길은 세월에 빛바랜 흔적으로 고요했다.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 걸었을 법한 자취가 남아 있었지만,
오랜 침묵과 풀들이 그 기억을 덮어 버린 듯했다.
아이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까지 함께해 준 모든 이들이—시계장수, 정원사, 수도자, 서기, 순례자, 악사, 등불지기,
그리고 거울처럼 투명한 호수와 시인, 기억을 짜던 할머니까지—
조용히 아이의 내면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이제 나는 그들과 함께 이 길을 오르고 있어.”
언덕 끝자락, 작고 둥글게 열린 평지에 이르렀다.
그 중앙에는 돌로 된 고요한 제단 하나가,
그리고 머리 위로 열려 있는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하늘은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언덕 위의 공기에서는 바람도, 시간도 멈춘 듯한 적막함이 감돌았다.
그 순간 아이의 주머니 속에 담긴
별 조각들이 일제히 가느다란 떨림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모양과 기억을 머금고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빛나는 형체로 이어지자,
마침내 별이 완성되었다.
공중에 머문 별은 아주 고요한 빛을 발했다.
그 빛은 어떤 방향도 누구도 겨냥하지 않았다.
오직 ‘아이’만을 향한 빛이었다.
그런데 그 빛이 아이를 비추는 찰나,
아이의 깊은 내면에서
모든 길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슬픔과 기쁨, 고백과 침묵, 음악과 용서, 그리고 사랑 속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이는 숨을 고르며 떨리는 그들의 속삭임을 들었다.
“사랑하는 …”
바로 그 순간, 완성된 별이 조용히 부서졌다.
하지만 그것은 소멸이 아닌 확장이었다.
별의 조각은 순식간에 빛이 되어
하늘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하늘은 아이의 이름으로 불타오르는 별빛으로 가득 찼고,
그 빛은 어둠 속 어디선가 길을 잃은 또 다른 누군가를
은은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아이의 가슴은 고요했다.
그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닌,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충만함이었다.
“이제, 나도 나의 이름을 부르리라.
더 이상 흩어진 조각이 아니라,
‘세상과 하나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써가리라.”
그 말을 마치자, 아이의 등불은 더 이상 작지 않았다.
그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온 우주를 보듬을 듯이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