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친구라 하네.
성경에서 3, 10, 7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계시적 상징, 완전성, 하느님의 섭리, 언약, 그리고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숫자들입니다. 각 숫자의 신학적·상징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숫자 3 ‘완전함’과 ‘관계’의 수: 하느님의 내적인 사랑의 관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의(계시)
1) 부활과 완성의 수: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루카 24,7), (요나 2,1)
2)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 단계: 서로 믿음, 희망, 사랑 (1 코린 13,13)
3) 영혼의 세 길: 정화, 조명, 일치 (성 요한의 신비신학 전통)
→ 요약: 3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친교’의 수, 곧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완성의 상징입니다.
2. 숫자 10 ‘율법’과 ‘인간의 전체성’: 십계명(하느님의 뜻을 담은 율법전체)
1) 온전함, 완전한 수: 인간의 손가락이 열 개 → 인간의 전체 행위와 책임을 상징
2) 열 처녀, 열 달란트, 열 드라크마(마태 25장) 등: 하느님의 심판과 은총의 기준이 됨
→ 요약: 10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전적 계율과 책임’을 뜻하며, 온전한 삶의 기준과 율법의 완성을 상징합니다.
3. 숫자 7 ‘창조의 완전성’: 창세기의 7일 창조, 하느님의 언약, 안식, 창조 질서와 완전(완성)
1) 성경에서의 거룩한 반복: 레위기에서 7은 정결례, 희년 등
2) 요한 묵시록에 7 교회, 7봉인, 7 나팔, 7 대접 등 → 종말적 완성 의미
3) 언약의 수: 히브리어로 7은 “쉬바(שָׁבַע): 언약을 맺다는 동사 “쉬바”와 어근공유
→ 요약: 7은 창조와 과 성결의 상징으로, 하느님의 질서와 완전한 완성을 나타냅니다.
4. 요한복음 21장의 153마리 물고기: 10 + 7 = 17 → 1\~17까지의 합 = 153(모든 종의 어류: 다양한 민족과 문화, 계층)
1) 10 (율법) + 7 (성령의 선물) = 17
2) 율법과 은총의 통합, 즉 구약과 신약의 조화
3) 그리고 그 합의 삼각수인 153은 하느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을 의미 153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이 완전하게 만나는 사랑과 구원의 표징
서로 다른 사랑
우리말 성경에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리스어 성경 원문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ἀγάπη)과 베드로 사도가 응답하고 있는 ‘사랑’(φίλος)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서로 다른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합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ἀγαπᾷς με; φιλῶ σε: (아가파스 메; 필로 세)
나를 사랑합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ἀγαπᾷς με; φιλῶ σε: (아가파스 메; 필로 세)
나를 사랑합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φιλεῖς με; φιλῶ σε: (필레이스 메; 필로 세)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성령을 통한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루카 7,47; 로마 5,5.8)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는 사랑”(로마 8,28)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사랑(5,29-30)이자 이웃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랑(마태 22,39)이며, 원수까지 용서하고 품어주는 사랑(마태 5,43-44)입니다.
반면 베드로가 응답하고 있는 사랑은 ‘필레오(φιλέω)’ 사랑입니다. 친구 간의 사랑이자 관념적이며 정신적인 사랑이지요.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아가페 사랑을 물어보셨습니다.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사랑을 베드로에게 원하시지만, 베드로는 고집스럽게도 마지막까지 주님의 사랑을 모른 척합니다.
결국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어보실 때, 예수님께서는 ‘필레오’라는 말을 선택하십니다. 베드로에게서 아가페 사랑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마음을 헤아리신 것이지요. 베드로의 눈높이에 맞춘 사랑을 선택하셨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인간에게 아가페 사랑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이고 불합리한 희망일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관적인 결론인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랑의 시작은 용기이고 치유의 시작은 용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묻고 계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 물음은 우리를 내면의 진실한 자리로 데려갑니다.
부끄러움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부족함이 우리 마음을 짓누를 수도 있지만,
주님은 우리의 진실된 고백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사랑이면 충분하다.
이제 너도 나처럼, 상처 입은 사랑으로 다른 이를 돌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