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피정 3막

2장. 하느님 사랑

by 진동길


목표

하느님 사랑이 모든 계명의 으뜸임을 깨닫고, 신앙생활의 중심 원리로 삼는다.

첫째 계명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여, 온 마음 다해 하느님을 경배하고 흠숭하는 태도를 기른다.

전례와 성사,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익혀 실천한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밀접한 관련성을 인식하고, 신앙생활에서 사랑의 통합성을 이해한다.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오 22,37 참조)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신명기(6,5)를 인용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하느님 사랑이 모든 계명과 율법의 근본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고 생활 윤리를 실천할 때, 결국 그 중심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태도가 자리합니다. 하느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복음의 가르침을 통해, 사랑의 통합성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함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구절을, 예수님께서 다시 강조하심으로써 복음의 핵심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부분적 헌신이 아니라, 전존재를 다 바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최고의 선으로 모시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하며 경배하고 순명하는 것이 첫째 계명에서 요구하는 바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첫째 계명은 오직 하느님만을 홀로 경배하고, 그분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사랑하라는 요청”이라 밝힙니다. 이는 우상숭배, 탐욕, 물질만능 등을 거부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우리의 궁극 가치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의 기도와 예배, 말씀과 성사 생활이 크게 달라집니다. 주일 미사를 성실히 봉헌하고, 주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모든 행위가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나아가 일상의 노동과 재능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영적 제물이 됩니다.




2. 성사와 감사: 사랑의 응답


하느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이시며,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향한 전례와 감사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당연하고도 고귀한 사랑의 응답이 됩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기념하고, 동시에 우리의 감사와 흠숭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자리입니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드린다”는 진리를 체험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은 전례를 “하느님께 합당한 경배와 감사, 그리고 신자들의 영혼이 성화되는 거룩한 봉사”라고 일컫습니다. 전례와 성사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또 우리의 사랑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입니다”(1테살로니카 5,18)라고 권고합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일상의 작은 은총까지도 기억하고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례와 감사는 하느님께 받은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인 셈입니다. 특히 사랑의 성사는 하느님 은총의 눈에 보이는 표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구원 사랑을 직접 체험하도록 마련된 통로입니다.


세례성사와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견진성사로 하느님의 사랑(성령)을 받아 성장하게 되며,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제로 모시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자비로운 용서를 받고,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로 하느님과 이웃 안에서 사랑을 더욱 견고히 하는 등,

성사는 우리 신앙과 삶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특별한 방법입니다.




3. 기도와 말씀 안에서의 친교


사랑하는 사이에는 대화가 필수적이듯,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기도로 그분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의 영혼이 마주하는 자리이자, 사랑을 직접 표현하는 통로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이 친히 전수해 주신 것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의 사랑과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개인 기도나 묵상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더 깊이 깨닫고, 일상을 그분께 봉헌하며 사랑을 고백하게 됩니다.


또한 성경 말씀 안에서 하느님은 마치 ‘사랑의 편지’를 보내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성경을 읽을 때에는 기도가 함께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말씀을 읽고 들으며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에 대한 기도로 응답함으로써 사랑의 대화가 완성됩니다.

렉시오 디비나 같은 전통적 묵상 방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더욱 불타오릅니다.


바로 이 기도와 말씀이 하느님 사랑을 계속 공급해 주는 영적 호흡입니다. 이를 소홀히 하면, 하느님과의 사랑 역시 시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4.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연계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실 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결코 분리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오 22,37-40 참조). 사도 요한 또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겠습니까?” (1요한 4,20 참조)라며, 두 사랑이 불가분이라고 단언합니다.


하느님 사랑은 미사와 기도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웃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합니다.

만약 형제자매를 미워하거나 외면하면서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자기기만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자비를 원치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호세아 6,6)고 외치며, 진정한 예배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실천적 사랑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는 이는 이웃도 사랑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신 사랑을, 나도 기꺼이 나누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이웃을 섬기는 행위가 곧 하느님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묵상코너

첫째 계명 묵상: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탈출 20,2-3)라는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내 삶에서 하느님보다 앞세우고 있던 것은 없었는지 돌이켜 봅시다. “주님, 제 삶의 가장 높으신 분은 오직 당신이십니다”라 고백하며 회개하고 재정비할 점을 찾습니다.

감사 일기 쓰기: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하느님께 받은 은혜를 작은 것부터 적어 봅시다. “주님, 오늘 ___에 감사합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적는 습관은 하느님 사랑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대화하기: 성경 묵상 후 ‘오늘 하느님이 내게 하신 말씀’과 ‘내가 하느님께 드리는 한 마디’를 간단히 적어 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랑의 대화가 이뤄지고, 하느님과의 친교가 깊어집니다.

이웃에게 흘러가는 사랑: 가족, 친구, 동료, 또는 갈등 중인 사람을 떠올리며,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지 구체적으로 적어 봅시다. “보이는 형제”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사랑의 행동이 한층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정리합니다

하느님 사랑은 모든 계명의 으뜸이며, 신앙생활 전반을 이끄는 근본 동기이자 목표다.

첫째 계명은 우상숭배를 금하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경배‧흠숭하라 명령하며, 기도‧전례‧성사‧일상의 삶을 통해 이를 실천해야 한다.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성사 생활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자주 만나며 사랑을 표현하게 되고, 이로써 하느님과 더욱 친교를 쌓는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결코 분리될 수 없고, 참된 예배와 신앙은 결국 구체적인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




알아둡시다


첫째 계명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탈출 20,2-3).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만 경배와 흠숭을 드리고, 그 어떤 피조물도 절대화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흠숭(Adoration)
하느님께 합당한 경배와 공경을 드리는 행위. 절대선이신 하느님을 높이 모시고, 경외심 속에 흠숭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주일 성수(聖守)
주님의 날인 주일(일요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미사에 참여하여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구원 활동에 감사와 찬미를 드림으로써 신앙을 표현한다.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성경 말씀을 차분히 읽고 묵상한 뒤, 기도와 관상을 통해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거룩한 독서’ 방식. 말씀 안에서 사랑의 부르심을 듣고, 그 사랑에 화답하도록 돕는다.




아. 참! 어떤 질문들


문1. ‘하느님 사랑’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답: 고전 철학에서 말하는 ‘최고선(Summum Bonum)’을 향한 지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이 최고선이 ‘인격적 하느님’이시고, 사랑이란 그분께 전존재로 응답하는 행위라 말합니다.


문2. 첫째 계명이 말하는 ‘하느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배타주의인가요?
답: 교회 전통에서는 유일하신 하느님을 절대적 가치로 인정하는 것으로, 배타적 태도가 아니라 ‘참된 절대자’를 온전히 흠숭하라는 초대입니다. 그 외의 우상(부, 명예 등)을 절대화하는 데서 벗어나라는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문3. ‘사랑’이라는 개념이 너무 감정적이지 않나요? ‘경외’나 ‘의무’와 어떻게 어우러질까요?
답: 여기에 말하는 사랑(아가페)은 단순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전인적 결합입니다. 경외나 의무 역시 참사랑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습니다.


문4. 하느님께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말하나요?
답: 기도, 미사, 찬미, 감사 같은 종교적 행위와, 현실 안에서 선을 실천하는 삶 전체가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기 초월’을 향한 동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5. 말씀과 기도를 통한 대화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볼 근거는 뭔가요?
답: 신앙인은 하느님을 인격적 주체로 보고,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기도를 통해 인간이 응답한다고 믿습니다. 이를 초월자와의 ‘실존적 만남’이라합니다.


문6. 첫째 계명이 우상숭배를 그렇게 강하게 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하느님 아닌 것을 절대화’하면 인간이 본래적 자유와 진리를 잃고 왜곡된 길로 빠진다고 교회는 봅니다. 참된 행복을 위해 하느님만을 절대 선으로 삼으라는 초대입니다.


문7.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이웃 사랑으로 확장되나요?
답: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분 모습으로 창조된 이웃을 외면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보편적 형이상학의 근원’을 사랑할 때, 구체적 실존인 인간에게도 열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문8. 이웃을 미워하면서도 하느님 사랑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답: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참조) ‘선의 본체’를 사랑한다면서 그 ‘산물’인 타인을 배척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문9.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주장이 자기합리화나 맹신으로 흐를 위험은 없나요?
답: 물론 위험은 있습니다. “입술로만 ‘주님, 주님’ 하고 실제로는 악을 행하는” 위선이 그 예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실제 행위로 증명되어야 하며, 비판적 성찰이 뒤따라야 합니다.


문10. 결론적으로, 하느님 사랑은 어떤 가치를 지니나요?
답: ‘가장 높은 선(하느님)’과 인간 삶 전체를 연결해 주어, 자아 초월과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이끕니다. 자유·선·진리를 통합하는 핵심 가치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11. ‘하느님 사랑’이 심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답: 인간은 근본적으로 보호와 애정을 구합니다.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은 절대적 안식과 안정감을 얻는 것이며, 자존감과 삶의 의미도 높여 줍니다.


문12. 첫째 계명에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데, 현대적 우상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답: 돈, 권력, 명예, 쾌락 등 세상에서 절대화하기 쉬운 것들이 현대적 우상의 예입니다. 이런 집착이나 중독이 마음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문13. 하느님을 사랑할 때 감사와 찬미를 드리면, 심리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답: 감사와 찬미는 부정적 감정을 완화하고 긍정적 태도를 강화합니다. ‘감사 일기’나 ‘칭찬∙격려’가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고 알려진 것과 맥이 닿습니다.


문14. 기도나 성경 묵상을 통해 진짜 하느님과 이어진다고 느끼는 것은 자기암시 아닐까요?
답: 종교심리학에서는 이를 ‘실존적‧영적 체험’이라 합니다. 신앙인은 초월자의 실제 현존을 믿고, 이 믿음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봅니다.


문15. ‘하느님께 사랑받는다’는 믿음이 자기애(Self-esteem) 향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답: 무조건적‧초월적 사랑을 체험한다는 것은 자존감과 심리적 안전감을 크게 키워 줍니다. 다만 교만이나 독선이 되지 않도록 ‘감사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문16. 이웃 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이라면, 이웃과 심각한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갈등 상황에서는 대화, 용서, 화해가 필요합니다. 신앙에서는 이를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 실행’이라 여기며, 더 깊은 동기와 인내를 얻습니다.


문17.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미사나 기도에 자주 태만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답: 습관 부족, 게으름, 바쁜 일상, 영적 무감각 등 여러 이유가 있지요. ‘행동을 구체화하는 동기 강화’가 중요합니다. 사랑이 일상적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문18. 하느님 사랑을 더 실감하기 위해 실천할 만한 것은 어떤 게 있나요?
답: 주일 미사·성사 참여, 정기 기도, 말씀 묵상 등이 대표적입니다. ‘정기적으로 사랑을 재확인하는 습관’은 애착과 열정을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문19. 하느님 사랑이 잘 느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영성생활에서 ‘건조기’나 ‘어두운 밤’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묵상, 봉사, 공동체 교류 등을 통해 성장 계기로 삼고, 필요하다면 영적 지도나 상담을 받아 보길 권장합니다.


문20.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인 뒤, 실제로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이 나를 지지한다’는 믿음은 존재 가치와 인생 목표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이런 강력한 신념이 인간의 대인관계와 정서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봅니다.


하느님 사랑은 모든 계명의 으뜸이자 신앙인의 삶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동력입니다. 전례와 성사, 기도와 말씀, 그리고 구체적인 이웃 사랑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응답하게 됩니다. 서로 격려하며, 이 사랑의 길 위에서 함께 나아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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