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흙의 아들들

31장. 전람회의 그림

by 진동길

31장. 전람회의 그림


참혹했던 새 천 년의 첫눈이 멎었다.
눈은 멎으면 깨끗해지는 줄 알았는데, 멎고 나니 더 선명해졌다. 지붕의 기왓골, 마당의 발자국, 대문 옆 장독대 뚜껑까지—하얀 것들이 죄를 덮어주는 게 아니라, 죄의 모양을 또렷이 떠내려 보여주고 있었다.


해원장 대문 앞 눈 위로 노란 줄이 한 번 감기자, 읍내는 그제야 ‘큰일’의 모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큰일이 터진 다음 날, 사람들은 슬픔보다 먼저 혀를 굴렸다. 누군가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확인’이 필요했고, 확인은 곧 ‘말’이 되었고, 말은 또 밥상 위로 올라왔다.


사법의 낫이 본격적으로 짐승들의 목을 치기 전, 해원 읍내 곳곳에는 찌질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인간 군상이 한 폭씩 전시되기 시작했다. 전시품은 그림이 아니라, 습관과 말끝과 눈빛이었다.




[제1전시실] 펄펄 끓는 ‘정 할매 국밥집’


오전 11시 반. 정 할매 국밥집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사람들은 국밥을 먹으러 온 게 아니었다. 국밥을 앞에 두고 세상을 먹으러 왔다. 뚝배기에서 나는 김보다 사람들 입김이 더 뜨거웠다.


문을 열 때마다 찬 바람이 한 줄기씩 들어오고, 들어온 바람은 젖은 옷깃과 담배 냄새와 섞여 천장으로 올라갔다. 숟가락이 사기그릇을 긁는 소리, 소주병이 탁자에 닿는 소리, 누군가 코를 훌쩍이며 고춧가루 묻은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는 소리—그런 잔소리 같은 소리들이 한데 엉겨, 큰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


“들어봤나? 어젯밤에 해원장 영감탱이 숨통이 끊어졌다 카대!”


구석 자리에서 막걸리를 들이켜던 털보 아재가 목소리를 낮추며 운을 띄웠다. 낮춘다 해도 들릴 만큼 낮추는 법이 없는 목소리였다. 사람들은 숟가락을 멈추지 않고 귀만 살짝 들었다. 눈은 그릇을 보고, 귀는 옆자리를 봤다.


“아이고, 말도 마소. 기백이 상무가 눈깔 뒤집혀가 지 애비 목을 콱 졸랐다 안 카나.”

“아이다, 아이다! 틀맀다! 니는 꼭 ‘목 졸랐다’는 말만 주워 묵고, 그 뒤 이야기는 귓구녕서 빼삣나?”

“영숙이 그 년이 쌍화차에 약 타가, 숨부터 눌러놨다 카더라—입가에 허연 거품이 보글보글했다 안 카나.”


맞은편에서 파를 썰던 정 할매가 칼자루를 탁 내려놓으며 참전했다.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웬만한 증거보다 확실한 것처럼 울렸다.


“우리 조카가 경찰서 형사계 청소하는 아지매 아이가. 영숙이 그 여우 같은 년이 쌍화차에다가 약을 한 사발 타가 미깄다 카더라. 영감 입가에 허연 거품이 보글보글했다 안 카나!”


“그라모 기백이가 죽인 기고, 영숙이가 죽인 기고? 둘이 같이 죽였나?”


사람들의 눈알이 더 바빠졌다. 누군가는 고춧가루를 더 넣고, 누군가는 깍두기 국물을 더 부었다. 입이 맵고 짜야 말이 술술 나온다는 듯했다. 장터에서 채소를 파는 김 씨가 숟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쳤다. 탁탁—그 소리에 사람들이 잠깐 고개를 들었다.


“에라이, 촌놈들아. 누가 죽였든 그기 뭐가 중요하노? 알맹이가 빠졌는데!”

“알맹이라니?”

“돈 말이다, 150억!”


‘150억’이란 말이 나오면, 사람들의 혀가 자동으로 가벼워졌다. 돈은 사람을 미치게도 하지만, 말을 잘하게도 만든다. 김 씨는 국물에 젖은 입술을 한 번 훔치고, 숨을 들이마셨다.


“영감탱이 뒈지고 나서 금고를 떡 하니 열어보이, 돈은 고대로 있는데 그 돈 찾을 ‘인감도장’이랑 ‘유언장’이 감쪽같이 증발해삐맀다 카더라. 누군가 죽이기만 쏙 죽이고 문서만 들고 날랐단 소리 아이가!”


“허어…!”


국밥집 전체에 경이로운 탄성이 일었다. 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다’에는 탄성이 없고, ‘종이가 사라졌다’에는 탄성이 있다. 세상이 그렇게 배웠다.


“그라모 산 24번지는 우째 되노? 오늘 아침에 기공식 한다고 포크레인 안 대기했었나?”

“아이고, 말도 마라.”


누군가 소주를 따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소주병 목이 잔에 닿는 소리가 ‘쉭’ 하고 났다.


“박 군수 그 양반이 아침에 영감 죽었다는 소리 듣자마자, 결재 서류를 파쇄기에 다 갈아삐맀다 카대. 서울서 검찰이 비자금 냄새 맡고 계좌 싹 얼려놨다 카이, 군수도 살라꼬 꼬리 자른 기지.”

“그라모… 기백이 깡패 놈들이 그렇게 두들겨 패던 산 24번지는?”

“똥밭 된 기지 뭐!”


누군가 웃었고, 웃음은 곧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로 번졌다. 잔은 부딪히면 깨지는 게 아니라, 더 큰 소문을 낳았다.


“아파트도 못 짓고 영원히 묶인 기다. 철거민 아들만 노났지. 안 쫓겨나고 고대로 살게 생겼으니.”

“쯧쯧… 머리 검은 짐승들이 수천억 묵겠다고 제들끼리 목 조르고 약 먹이다가, 결국 다 빈털터리 돼서 빵장 가게 생겼다 아이가. 꼬시다, 꼬셔!”


사람들은 파하하 웃으며 소주잔을 부딪쳤다.
그들의 투박한 입방아는 어젯밤 밀실에서 벌어진 참극을, 기가 막히게 요약하고 있었다. 진실이란 게 언제나 서류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국밥집 숟가락 끝에서도 나오곤 했다. 다만 그 진실에는 늘 누군가의 숨이 빠져 있었다.




[제2전시실] 얇은 합판과 짐승들의 진흙탕


국밥집에서 한 술 뜨면 끝날 이야기처럼 굴러다니던 짐승들은, 해원 경찰서 진술실에서 가장 비참한 꼴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1진술실과 2진술실. 두 공간은 방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얇은 합판 벽 하나로 나뉘어 있었다. 합판은 얇고, 사람의 말은 두꺼웠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 분노의 떨림까지 다 넘어왔다.


“내가 안 죽였다꼬!! 저 뱀 같은 년이 약을 미깄다 안 카나!!”


쾅! 1진술실에서 기백이 수갑 찬 양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포효했다. 두꺼운 손목에서 쇠가 덜그럭거렸다. 쇠 소리가 사람의 말보다 더 냉정하게 울렸다.


“내 아부지 목덜미에 손자국은, 숨통 끊을라꼬 한 기 아이라 멱살 좀 쥔 거뿐이다! 그기 살인이가? 패륜은 맞는데, 살인은 아이다! 저 미친년이 약을 부어 넣은 기다!”


그러자 합판 벽 너머 2진술실에서 영숙의 악다구니가 넘어왔다. 말끝이 칼 같았다. 칼은 휘두르는 사람의 손도 베는 법이었다.


“이 개만도 못한 놈아! 니가 밤새 목을 졸라가 영감탱이가 까무러친 거 아이가! 약은—약은 영감탱이가 잠 안 온다 캐서 내가 수면제 쪼매 타준 것뿐이다! 살인마는 저 호로새끼라고!!”


형량을 줄이려면 진실보다 ‘그럴싸한 방향’이 필요했다.
권력을 잃은 짐승들은 동네 양아치보다 못한 진흙탕을 뒹굴었다. 이방(里房)에서 싸우던 사람들처럼 서로의 치부를 더 크게 들추며, “나는 덜 나쁘다”를 증명하려 했다. 합판은 얇았고, 인간은 그보다 더 얇았다.




[제3전시실] 덜덜 떨리는 종이컵과 서울의 저승사자


그 시끄러운 진술실 밖, 복도 끝 서장실.
해원 경찰서장은 자판기 믹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종이컵은 얇아서 손의 떨림을 그대로 보여줬다. 달달달달—컵 속 커피가 찰랑거리며 연신 가장자리로 번졌다. 커피 냄새는 달았고, 서장의 목구멍은 마른 흙처럼 쩍쩍 갈라졌다.


‘저것들이 입을 열면… 어젯밤 내가 그 집에 있었다는 것도….’


생각은 늘 ‘만약’에서 시작해 ‘끝장’에서 끝났다. 그때였다.

창밖 경찰서 마당으로 시커먼 그랜저 세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눈 위에 타이어 자국이 길게 그어졌다. 차 문이 열리고, 각 잡힌 검은 코트의 사내들이 서늘한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동네 경찰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발걸음이 빠른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리가 나지 않는 게 더 무서웠다.


서울지검 특수부 수사관들이었다.
서장은 순간, 숨이 거꾸로 넘어갔다. 손에 들려 있던 종이컵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뜨거운 커피가 구두 위로 쏟아졌지만, 뜨거운 줄도 몰랐다. 뜨거움은 이미 어젯밤 안방에서 다 썼다.


경찰서 로비가 웅성거리는 사이, 세련된 정장 차림의 이현이 특수부 수사관들 앞을 가로막아 섰다. 얼굴은 차분하려 했으나, 눈동자 밑바닥이 먼저 흔들렸다. 그래도 그는 표준말을 고수했다. 표준말은 여기서 방패가 아니라,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수고들 하십니다. 해원장 둘째 최이현입니다. 아버님 사건은 지역 경찰에서 수사 중인데, 굳이 특수부에서 영장도 없이 이리 험악하게….”


이현이 여유로운 척 웃음을 얹으려는 찰나, 선두에 선 검사가 이현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밀치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최태국 살인 사건 수사하러 온 거 아닙니다. 최태국 및 해원장 일가의 150억 범죄 수익 은닉, 그리고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압수수색 및 관련자 전원 체포하러 왔습니다.”


“네? 아니, 저는 이 사건과 아무런….”


“최이현 씨.”


검사는 서류철 한 장을 툭 들이밀었다. 종이는 얇았지만, 종이가 사람을 눌렀다.


“본인 명의 페이퍼컴퍼니 자금 흐름, 이미 다 확보했습니다. 비키세요.”


검사의 손짓 한 번에 뒤따르던 수사관 두 명이 이현의 양팔을 거칠게 꺾어 수갑을 채웠다. 쇠가 잠기는 소리가 단정했다. 단정함이 잔인했다.


“아, 악! 이거 놔요!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이딴 촌구석 짐승들이랑 다르다고!!”


문장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도련님의 이성이, 그 자리에서 소리로 무너져 내렸다. 특수부의 구둣발 앞에서는, 평생을 사냥개로 구른 기백이나 머리를 굴린 이현이나 똑같은 ‘범죄 피의자’에 불과했다.

그렇게 150억짜리 전람회의 막이 내려가고, 사법의 차가운 도륙이 시작되고 있었다.


해원읍은 다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겠지만—그날부터는 말끝마다 ‘서울’이 섞일 것이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발목이 잘리는 소리를 들으며 더 조용히 웃게 될 터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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