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1장 — 재의 수요일
2000년 3월 8일. 재의 수요일이었다.
진동 쪽으로 길을 꺾으면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가까운데도 함부로 닿을 수 없는 것이 바다였다. 길은 바다를 향해 가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언덕으로 몸을 틀어, 바다를 등지고 올라갔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도리어 바다를 믿지 못한다. 바다는 넓어서 다 덮어줄 것 같다가도, 한 번 등을 돌리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얼굴이 되기 때문이다.
가르멜은 그 언덕 위에 있었다.
남자 수도원. 담장 너머로는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바다를 보면서도 바다에 마음을 맡기지 않게 하는 자리였다. 파도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낮게 눌려 있었고, 솔바람이 그 소리를 한 번 더 얇게 갈랐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솔이 먼저 울고, 사람의 속은 한 박자 뒤에 울었다.
이현은 미사 시작 종이 울리기 전에 경당 뒤편에 서 있었다.
앉지 않았다. 앉으면 몸이 편해지고, 몸이 편해지면 마음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자기 마음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거짓말이 어디까지 뻗어가는지 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서 있었다. 서서 버티는 것이 기도의 첫 모양처럼 느껴졌다.
그는 ‘최이현’으로 살아왔고,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였다.
이름이 두 개라는 사실이 한때는 멋있게 느껴졌다. 세례명은 마치 다른 세계의 비밀번호 같아서,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인생에도 다른 문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은 가볍지 않았다. 고백을 요구하는 이름이었고, 변명을 오래 못 버티게 하는 이름이었다.
경당 안에는 냄새가 먼저 모여 있었다. 촛농이 타는 냄새, 오래된 나무 바닥의 습기, 향이 얇게 깔리는 냄새, 그리고 재. 재는 냄새가 없다 싶을 만큼 건조했는데, 사람의 이마에 닿는 순간에는 묘하게 살아 있었다. 타다 남은 것들이 타다 남은 자들에게 붙는 기척.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언젠가는 다 꺼질 거라는 예고처럼.
신부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높은 말은 설득이 아니라 명령이 된다. 수도원에서는 명령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낮은 확신. 낮게 깔린 확신은 사람의 가슴을 지나 바닥까지 눌러놓는다. 숨이 막혀도 그 위에서 숨을 쉬어야 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여라.”
줄이 조금씩 앞으로 당겨졌다. 사람들은 재를 받으러 갔다. 어떤 얼굴은 죄를 받으러 가는 얼굴이었고, 어떤 얼굴은 벌을 받으러 가는 얼굴이었다. 죄와 벌은 서로 다른 날에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 얼굴 위에서는 대개 같이 왔다.
이현의 차례가 왔을 때, 발끝이 아주 잠깐 굳었다.
도망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도망칠 데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였다. 그는 도망을 지능으로 포장해 살아온 사람이었다. 도망친 자리에 남들보다 빨리 새 주소를 만들어 붙이는 사람. 그러니 이현에게는 도망이 없다. 늘 이동만 있다.
재가 이마에 십자가로 그어졌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데, 살 위에 남는 감각이었다. 손끝이 지나가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오래 갔다. 아주 조금인데도 오래 가는 것들이 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그리고—문장 하나.
그 순간, 눈보라 속의 밀실이 떠올랐다.
문손잡이가 돌아가던 시간, 새해가 아니라 첫 범행의 분(分)으로 바뀌던 그 집.
그 밤, 그는 칼을 들지 않았다. 칼을 든 사람은 늘 더럽다. 피가 묻으니까.
그는 문장을 보냈다.
짧고 단정한 문장 하나.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문장.
‘확인.’
그 단어는 깨끗해서 더 위험했다. 깨끗한 말은 멀리 가고, 멀리 가서 남의 손목을 움직인다. 명령이 아니라 확인이었기에, 나중에는 누구도 책임을 말하지 않았다. 다들 “나는 한 번만 눌렀다”고 말했다. 한 번만. 그 한 번이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을 넘어뜨리고,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그는 너무 늦게 배웠다. 아니, 배운 척만 했다. 인정하지 않았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마당으로 나오자 바다는 그대로 바다였다. 바다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바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심판해야 한다. 심판은 벌이다. 벌은 법정에서만 오지 않는다. 벌은 때로, 고요한 바람 속에서 먼저 온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서하였다.
서하는 수도원 사람들 틈에 섞여도 눈에 띄었다. 잘생겨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라서였다. 어깨가 늘 조금 내려가 있었고, 시선이 늘 바닥에서 한 박자 늦게 올라왔다. 그 느림이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종류의 느림이었다. 손등의 흉터는 살이 올라왔지만, 흉터 위의 눈빛은 아직 낫지 않았다. 낫지 않은 눈빛은 늘 남의 고통을 먼저 본다.
“형.”
서하가 말했다.
그 한 음절이 이현의 귀 속에서 이상하게 길게 울렸다. ‘형’이라는 말에는 시간도 섞여 있었다. 어릴 때의 밤, 집 안의 소리, 아버지의 기침, 어머니의 침묵, 형제끼리 지켜야 했던 것들과 끝내 지키지 못한 것들.
이현의 머릿속에서 문장이 하나 올라왔다.
형이라는 말은 피가 섞인 호칭이다. 죄는 피로 옮겨 붙지 않는다고 배웠다. 그런데도—책임과 상처는, 이상하게도 피를 따라 움직였다.
그 생각이 싫어서, 그는 곧장 더 차가운 말로 자신을 눌렀다. 차가운 말은 자기에게 가장 빠른 위로였다. 위로가 아니라 마취였지만, 그는 그 차이를 모르는 척했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
서하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고해… 하셨어요?”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마당 끝의 흙을 바라봤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흙은 젖어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습기가 언덕을 타고 올라와 밤새 스며든 모양이었다. 흙은 더 까맣게 빛났다. 흙은 받아들이는 법만 알고, 변명하는 법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서하가 다시 물었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피할 틈이 없게.
“그럼… 형은 죄가 없어요?”
그 질문은 칼이 아니었다.
칼보다 더 깊고 오래 박히는 화두였다.
일생을 두고 붙잡고 있어야 할.
칼은 한 번에 베지만, 화두는 오래 피를 흘리게 한다.
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무너질 것 같았고, 무너지면 끝날 것 같았고, 끝이 나면—그 끝이 어디인지 자기가 제일 무서웠다.
경당 안에서 종이 다시 울렸다.
종소리는 언덕을 타고 퍼져나가다가, 바다 쪽으로도 흘러갔다. 바다는 그 소리를 삼키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수도원은 말이 적은 곳인데, 이상하게도 그 말없음이 사람을 더 말하게 만들었다. 말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숨으로. 잠 못 드는 밤으로.
이현은 이마에 남은 재를 손끝으로 스쳤다.
재가 손가락에 묻었다. 아주 조금인데도 손끝이 더러워진 느낌은 오래 갔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흙….’
자기는 흙을 너무 우습게 봤다. 흙을 밟고 올라서면 끝인 줄 알았다. 흙은 늘 밑에 있고, 사람은 늘 위에 선다고 믿었다. 그런데 흙은 밑에만 있지 않았다. 흙은 사람 안에도 있었다. 사람의 말끝에도, 사람의 계산에도, 사람의 죄에도.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그의 벌은—아직 판결문도 나오기 전에—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