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편 2장 — 검은 흙 위의 재

by 진동길

2장 — 검은 흙 위의 재


미사가 끝났는데도 재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묻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묻은 것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감각이었다. 물로 씻으면 씻길 것 같다가도, 물로 씻기면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사람의 말끝 같은 것, 한 번 허락한 마음 같은 것.


수도원 마당으로 나오자 바다는 그대로 바다였다.

바다는 넓고 평평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누가 잘했는지, 누가 나빴는지, 누가 죽었는지 살아남았는지—그런 것을 바다는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대개 인간의 잘잘못에 흥미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바다 앞에서 더 초라해진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이, 한 번씩 벗겨지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부서졌다.

그 부서지는 빛이 이상하게도 이현의 마음을 건드렸다. ‘부서져도 다시 모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아니라 공포가 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죄도 그렇다. 부서진 줄 알았는데, 다시 모여서 형태를 갖는다. 어느 날 문득 손바닥 안에 완전한 모양으로 돌아와 있다.


서하는 마당 끝에서 이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형” 하고 불러놓고도 말이 더 이어지지 않았던 얼굴. 서하는 늘 그렇다.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말을 아껴서였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듣는다. 듣는 사람 앞에서는, 말하지 않으려던 것들도 자꾸만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형… 오늘만 여기서 자고 가요.”


서하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현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 했다.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일정이 있다. 내일 누구를 만나야 한다. 할 일이 있다. 그런 말들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이현은 준비된 말로 살아온 사람이다. 준비된 말은 삶을 안정시키는 대신, 삶을 얼린다. 얼어붙은 말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기 귀에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거절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바다의 침묵 때문인지, 재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서하의 눈빛 때문인지—이현은 그 이유를 정확히 골라내지 못했다. 이유를 골라내지 못할 때 사람은 흔들린다. 흔들린다는 건, 단단하던 것이 금이 갔다는 뜻이다.


“잠깐만.”

이현은 그렇게만 말했다.


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서하의 방식이었다. 사람을 몰아붙이면 고백이 아니라 변명이 튀어나온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철거촌에서 사람들의 울분을 막아낼 때도 그는 늘 말끝을 낮췄다. 낮추면 사람의 칼이 조금은 무뎌졌다. 무뎌진 칼은 때로 사람을 살렸다.


서하가 안내한 곳은 수도원 손님방이었다.

방은 작고 단정했다. 흰 벽, 나무 침대, 작은 책상, 그리고 벽 위의 십자가.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데도 바다 냄새는 진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해안의 냄새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바람이 한 번, 두 번, 세 번—냄새의 날을 무디게 갈아버린 모양이었다. 수도원의 공기는 늘 그렇다. 세상의 냄새를 완전히 없애주지 않는다. 대신 그 냄새를 견딜 수 있는 농도로 만들어준다.


이현은 코트를 벗지 않았다.

벗으면 사람이 풀어질 것 같았다. 풀어지면—자기 속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두려웠다. 그는 침대 끝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바다는 계속 부서지고 있었다. 부서지는 빛이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모였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 똑.


서하가 들어왔다. 손에 작은 수건과 마실 물을 들고 있었다.


“재… 지우세요. 얼굴이 좀….”


서하가 수건을 내밀었다. 이현은 순간 웃고 싶어졌다.

재를 지우면 죄도 지워질까. 그런 유치한 생각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곧 삼켜졌다. 유치한 생각은 가끔 진실을 건드린다. 그래서 더 무섭다.


“괜찮아.”

이현이 말했다.


서하는 잠깐 망설이다가 수건을 내려놓았다.

그 망설임 속에는 말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괜찮지 않잖아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서하의 자비였다. 자비가 때로 잔인한 것처럼, 그의 침묵은 이현에게 도망갈 구멍을 덜 남겼다.


“형.”

서하가 갑자기 말했다.

“나… 진짜로 도망치거나 도피하려고 수도원으로 온 거 아니에요.”


이현은 창밖을 계속 보았다.

바다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서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서하의 말은 바다처럼 넓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좁고 깊었다. 좁고 깊은 말은 사람을 빠뜨린다.


“나도 알아.”

이현이 낮게 말했다.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형은… 안 믿잖아요.”


그 말이 이현의 가슴에 걸렸다.

믿지 않는다. 그렇다. 이현은 믿지 않는 법으로 살아왔다. 믿으면 실망한다. 실망하면 분노한다. 분노하면 손이 먼저 나간다. 이현은 손이 나가는 인간이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쪽을 택했다. 믿지 않는 대신 계산했다. 계산하면 마음이 덜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도망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에요.”

서하가 계속 말했다.

“나도… 솔직히… 사람들 얼굴 보기 싫을 때가 있어요. 아버지 얘기만 나와도 숨이 막히고, 해원장 얘기만 나와도…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고.”


서하의 목소리가 잠깐 깨졌다.

깨진 목소리는 사람의 진짜 얼굴이다. 멀쩡한 목소리는 가면이다. 서하는 가면을 잘 쓰지 못했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쓰지 않으려 했다.


“근데…”

서하가 숨을 한 번 삼켰다.

“내가 계속 밖에 있으면… 나도 결국 그 집 사람 되는 것 같아서요. 말로는 착한 척하고… 마음으로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러다 어느 날은, 미워하는 걸 정당하다고 믿게 될 것 같아서.”


이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가 뜨끔했다.

‘정당화.’

그 단어는 이현의 삶 전체를 지탱해온 기둥이었다. 사람들은 다 정당화하며 산다. 밥을 먹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떠나는 것도 정당화한다. 그런데 어떤 정당화는 누군가를 죽인다. 직접 죽이지 않아도, 누군가의 손목을 움직인다.


이현은 자신이 눌렀던 단어를 떠올렸다.


확인.


그 단어는 명령이 아니라는 핑계로 안전해 보였다.

그래서 더 멀리 갔다. 멀리 가서 남의 죄를 내 죄에서 떼어내 주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책임은 흩어지고, 죄는 분산되고, 분산된 죄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죄는 구조가 된다. 구조가 되면 죄는 더 오래 산다.


서하가 말했다.

“여기는… 숨을 숨길 수 있는 데가 아니래요. 들어오면 더 들려요. 내가 무슨 마음을 숨기고 살았는지….”


그 말은 서하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이현에게 들려주려는 말 같기도 했다. 둘 다일 것이다. 분명한 건 사람의 진짜 말은 대개 자기에게 먼저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이현은 입술을 조금 움직였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그 말은 더 이상 계산이 아니고 고백이 된다. 고백이 되면 되돌릴 수 없는 흔적으로 남는다. 되돌릴 수 없는 말 앞에서 이현은 늘 한 발 물러났다.


서하는 수건을 다시 들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오늘 저녁 기도 같이 해요. 말 안 해도 돼요. 그냥… 같이 앉아 있어요.”


같이 앉아 있으라.

그 말이 이상하게도 무거웠다. 사람은 말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 없이 함께 있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말이 있으면 가면을 쓸 수 있는데, 말이 없으면 가면이 떨어진다. 수도원은 가면을 잘 떨어뜨린다. 공기가 그렇게 돼 있다.


이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지고, 경당 안은 더 어두워졌다.

어두워졌는데도 바깥보다 더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촛불, 성경, 수도자들의 숨, 그리고 사람의 후회. 후회는 어두울 때 더 선명해졌다. 밝을 때는 바쁘게 움직이며 피해갈 수 있는데, 침묵과 어두움 앞에서는 피할 수 없다. 어둠은 늘 사람과 그 안의 것들을 살피고 붙잡는다.


저녁 기도에서 수도자들의 목소리는 바다처럼 겹쳐졌다.

소리가 커서 바다 같았던 게 아니라, 반복되는 리듬이 바다 같았다. 파도는 늘 같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번 다른 물이 온다. 기도도 그랬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는데, 매번 다른 마음이 그 문장에 붙었다. 그래서 기도는 때때로 위로가 아니라 심문이 된다. “너는 정말 그 말을 믿느냐.” 하고.


이현은 맨 뒤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서하가 있었다. 서하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이현은 눈을 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밀실이 떠오를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자기 죄는 어디에 있는가.


살인의 칼끝에 있지 않았다.

독약의 하얀 가루에 있지 않았다.

목덜미에 남은 손자국에만 있지도 않았다.


그의 죄는 종이 위의 한 줄에 있었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문장.

그 문장이 사람을 움직였다.


이현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목덜미를 보았다.

목덜미는 늘 가장 연약한 자리다. 뒤에서 칼이 오면 막지 못한다. 목덜미는 인간이 인간에게 허락한 취약함이다. 서로를 믿는 자리가 목덜미다. 믿지 않는 사람은 목덜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현은 늘 본능처럼 목덜미를 숨기고 살았다. 그런데 죄는 목덜미처럼 뒤에서 왔다.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도 모르게.


기도가 끝나고 사람들은 말없이 흩어졌다.

말이 없는 줄이 복도에 길게 늘어섰다가, 방으로 하나씩 들어갔다. 문이 닫힐 때마다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작은 소리는 수도원에서 더 크게 들린다. 작은 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에서는 작은 죄도 크게 느껴진다.


이현의 방으로 돌아오자 바다는 어두워져 있었다.

낮에는 은빛으로 부서지던 바다가, 밤에는 검은 천처럼 깔려 있었다. 바다는 낮에 사람을 유혹하고, 밤에 사람을 심문한다. ‘낮에 그렇게 반짝이던 것은 무엇이었나.’ 하고 묻는다. 사람의 욕망도 그렇다. 낮에는 반짝이고, 밤에는 검게 눕는다.


이현은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가 곧 뜨고, 또 감았다가 또 떴다.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이 안 오는 것은 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직이기도 하다. 마음이 더 이상 속임수를 쓰지 못할 때, 몸이 먼저 잠을 거부한다.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그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창문 유리에 자기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이마에는 아직 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속이기에는 너무 작은 흔적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기에는 너무 큰 흔적이었다.


이현은 문득 세례명—아우구스티노를 떠올렸다.

고백을 썼던 사람.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추적했던 사람. 그의 고백은 아름답게 읽히지만, 실은 잔인하다. 자기를 한 조각도 숨기지 않는 잔인함. 그 잔인함은 자신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독자에게도 향한다. “너도 네 마음을 끝까지 볼 수 있느냐.” 하고.


이현은 그 잔인함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조용한데도 소리가 있었다. 바다 소리. 멀리서 들리는 풍경소리. 그리고 자기 숨. 숨이 규칙적으로 들릴수록 마음은 더 불규칙해졌다. 마음은 규칙을 싫어한다. 규칙은 죄를 들춰내니까.


이현은 외투 주머니를 더듬었다.

휴대폰은 꺼져 있었지만, 손끝은 그 모양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끝은 기억이 빠르다. 머리는 잊는 척하지만, 손은 잊지 않는다.


그가 눌렀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내일 해원 산 24번지 용도 변경 고시 예정. 시행권 양도 각서/인감 동선 확인.]


그 문장은 누군가의 손을 움직였고, 누군가의 눈을 밝게 했고, 누군가의 독을 맹독으로 바꾸었다. 이현은 ‘그들이 원래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그렇다. 원래 그렇다—그 말은 편하다. ‘원래’는 책임을 없앤다.

그러나 수도원의 밤은 원래라는 말을 잘 믿지 않았다. 원래라는 말은 사실, 내가 보지 않으려던 것을 덮는 헝겊이었을 뿐이다.


이현은 방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공기는 차가웠다. 차가운 공기는 사람을 깨운다. 깨움은 자비 같지만, 이현에게는 형벌 같았다.


경당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불빛은 사람을 부르는 불빛이 아니라, 거기 그냥 있는 불빛이었다. ‘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그 무심함이 더 강했다. 강요하지 않는 것이 더 강하다. 강요하면 반항할 수 있는데, 무심하면 반항할 구멍이 없다.


이현은 경당 문 앞에 섰다.

문고리는 차가웠다. 그 안은 더 서늘할 것 같았다. 감추어진 것들이 뜨겁게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차가운 문고리 앞에서 그는 잠깐 멈췄다. 안으로 안으로 몰아가는 문.

이현은 문고리를 잡고도 돌리지 못했다. 문고리를 돌리면 그 안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 것 같았다.

자기 자신.

그건 이현이 가장 피하던 상대였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이번엔 서하가 아니었다.

수도자의 발소리였다. 기도하는 이의 발소리. 늘 무언가를 살피는 소리였다. 사람의 삶이 소란스러워도, 수도원은 삶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살피는 법을 가르친다.


수도자가 지나가며 이현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언(無言)이 이현을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말이 없는 시선은 심판이 아니라 거울이 된다. 거울은 꾸짖지 않지만, 얼굴을 보여준다.


이현은 경당 문 앞에서 돌아섰다.

돌아서서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바깥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숨을 쉬고 싶어서였다. 숨을 쉬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바깥은 숨이 더 막힌다. 다만 바깥에는 소음이 많아서 숨 막히는 걸 잊을 수 있을 뿐이다.


문을 열고 나가자 바람이 얼굴을 쳤다.

바람은 해풍이었다. 해풍은 짠맛이 있다. 짠맛은 상처를 따갑게 한다. 바람이 따갑게 치면 사람은 비로소 어디가 상처인지 알게 된다.


수도원 뒤쪽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다.

텃밭의 흙은 검었다. 젖어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습기가 그새 스며든 모양이었다. 흙이 검으면 사람들은 흔히 비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은 흙이 늘 비옥한 건 아니다. 검은 흙에는 피가 섞이기도 하고, 울음이 섞이기도 한다. 사람의 흙은 특히 그렇다.


이현은 그 흙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손가락 끝으로 흙을 집어 올렸다.

흙은 차가웠고 무거웠고, 손금 사이로 끼어들었다. 흙은 인간의 손을 싫어하지 않는다. 인간이 흙을 함부로 밟을 뿐이다.


이현의 이마에서 작은 재 조각이 떨어졌다.

바람에 날려갈 줄 알았는데, 재는 흙 위에 앉았다.

잿빛이 검은 흙 위에 붙었다.

그 색은 검은색을 이기지 못했고, 검은색은 잿빛을 밀어내지 못했다.

그대로 함께 있었다.


그 모습이 이현의 가슴을 한 번 찔렀다.


‘지워지는 게 아니구나.’


죄는 흙으로 옮겨 붙지 않는다. 죄책은 피로 옮겨 붙지 않는다—그는 배웠다.

그런데도 상처는 옮겨 붙는다. 책임은 옮겨 붙는다.

그리고 그 책임이 한 집안의 공기를 썩게 만들면, 그 공기 속에서 자란 사람의 숨도 함께 썩는다.

이현은 그 숨을 평생 ‘내 능력’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능력이 아니라 생존이었는데.


그때 서하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형은 안 믿잖아요.”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믿을 틈이 없었던 것일까.

믿을 틈이 없으면 사람은 계산으로 산다.

계산으로 살면 사람은 빠르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계산으로 살면 사람은 결국—자기 자신을 잃는다.

자기를 잃는 순간부터 벌이 시작된다.


이현은 흙 묻은 손을 바라보다가, 결국 손을 털지 않았다.

털어내면 깔끔해질 것이다. 깔끔해지면 다시 거짓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깔끔해지고 싶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손이 더러운 채로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더러운 손이 아니라, 더러움이 있다는 것을 아는 손으로.


그가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말이 이어지지 않은 자리에 바다 소리만 남았다. 바다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다의 무언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말해라”로 들렸다.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라고 하는 순간이 있다. 무언의 소리가 사람을 밀어붙이는 순간이 있다.


그때, 수도원 안쪽에서 종이 울렸다.

밤기도를 마감하는 종소리였다.

종소리는 바다 쪽으로 흘러갔다가 되돌아오지 않았다.

되돌아오지 않는 소리를 들으며 이현은 생각했다.


세상에서 내 말은 늘 되돌아왔다.

내가 던진 말은 늘 누군가의 입을 빌려 돌아왔다.

소문으로, 문서로, 판결로.


그런데 수도원에서는 다르다.

여기서는 말이 되돌아오기 전에, 말을 던진 사람이 먼저 자기 말을 듣게 된다.

그게 벌일 수도 있고, 시작일 수도 있다.


이현은 텃밭의 검은 흙을 한 번 더 쥐었다.

그리고 손을 펴서, 흙을 다시 흙으로 돌려보냈다.


흙은 소리 없이 떨어졌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어떤 죄도 그렇고, 어떤 벌도 그렇다.


그 밤, 이현은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단지 고통이 아니라, 자기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고백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창문 너머로 바다는 검게 눕고, 파도는 끊임없이 부서졌다.

부서지는 소리 속에서 이현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재는 흩어지는데… 문장은 남는다.’

‘남은 문장을… 나는 언젠가, 내 입으로 다시 꺼내야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주 천천히—

고백은 연습처럼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