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말로 할 수 없는 것들
3장 — 말로 할 수 없는 것들
그날 밤, 이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안 온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잠 대신 생각이 왔다. 생각은 한 번 오면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바다도 그렇고, 흙도 그렇고, 한 번 눌러 보낸 문장도 그렇다. 떠나지 않는 것들은 늘 조용히 남아서, 사람을 붙잡는다.
창밖 바다는 밤새 검게 누워 있었다.
낮에는 은빛으로 잘게 부서지던 바다가 밤이 되면 한 덩어리로 눌어앉는다. 마치 세상의 무게를 자기 몸으로 받치고 있는 것처럼. 이현은 그 바다를 보며 이상한 생각을 했다.
흙도 바다도, 그저 거기 있는데—
사람만이 거기에 이유를 붙이고, 핑계를 붙이고, 죄를 붙인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어젯밤 텃밭에서 집어 올렸던 흙은 털지 않았는데도 손금 사이로 대부분 빠져나가 있었다. 그래도 손끝에는 아직 검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사라질 것 같은데 남아 있는 것. 남아 있다고 해서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진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그는 천천히 손을 씻었다.
물은 차가웠다. 차가운 물은 손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깨끗해진 손은 다시 무엇이든 만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현은 문득, 깨끗해진 손이 무서웠다. 깨끗해진 손은 다시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끗한 손으로 서류도 넘기고, 전화도 받고, ‘확인’도 누를 수 있다. 더 능숙하게. 더 단정하게.
이곳의 물은 씻어내 주되, 씻어버리지는 않았다.
흙은 씻기지만 흙의 기억은 남는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멀리서 사람을 깨우는 타종 소리가 들려왔다.
깊고 낮은 소리. 크게 울리지 않았는데도 방 안 공기가 그 소리에 맞춰 한 번 정돈되는 것 같았다. 종소리는 사람을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부르는 소리였다. 마음은 부르면 대답하지 않는 척하지만, 결국은 움직인다.
이현은 코트를 걸치고 방을 나왔다.
복도는 밤보다 더 차가웠다.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발바닥은 늘 정직한 곳이다. 머리가 거짓말을 해도 몸은 거짓말을 잘 못 한다. 몸이 먼저 망설일 때가 있다. 몸이 먼저 “여기는 네가 서 있을 곳이 아니다” 하고 말할 때가 있다.
그는 경당 문 앞에 섰다.
문고리가 차가웠다.
차가운 것들은 사람을 정신 들게 한다. 정신이 들면 사람이 못 하던 일을 하게 된다. 못 하던 일을 하는 것이 용기인지 절망인지—그때는 잘 모른다. 다만 손이 움직인다.
이현은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작은 소리가 이상하게도 크게 들렸다. 수도원은 작은 소리를 크게 만든다. 작은 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에서는 작은 죄도 크게 들린다.
경당 안은 어두웠다.
완전히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제대 쪽에 작은 불이 있었다. 성체등. 그 불은 사람을 부르는 불이 아니라, 거기 그냥 있는 불이었다. ‘나는 여기 있다’고 말하는 불이었다. 손짓하지 않는데도, 그 무심함이 사람을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수도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당연히 있었던 것처럼.
검은 수도복이 어둠 속에서 더 검게 섰다. 검다는 색이 이렇게 단정할 수도 있다는 걸, 이현은 그제야 알았다. 검은색은 어두운 색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색이라는 것을.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고, 얼굴이 안 보이니 그들이 더 사람답게 느껴졌다. 얼굴이 보이면 평가가 따라오는데, 얼굴이 안 보이면 숨만 남는다. 숨은 누구나 같다.
‘라’음으로 기도가 시작됐다.
정적을 깨는, 첫 칼끝 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베는 소리가 아니라 올리는 소리였다. 숨을 눌러 바닥으로 보내는 음이 아니라, 숨을 들어 올려 위로 세우는 음이었다. 마치 “여기서부터는 네가 아니라, 그분이다” 하고 선을 긋는 듯했다.
이현은 그 기도의 소리가 자기 가슴을 건드리는 걸 느꼈다.
말이 되기 전의 소리, 어쩌면 창조 이전부터 있었던 소리. 이유가 되기 전의 찬미. 세상에서는 말이 먼저였는데, 여기서는 소리가 먼저였다. 소리는 핑계를 달지 않았다. 소리는 변명을 만들지 않았다. 다만 한 번 울리고, 그 울림으로 사람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시편이 흘렀다. 약속된 리듬으로 흐르는 문장이 반복되었다. 반복은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반복은 사람을 벗긴다. 벗겨지면 남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뼈다. 뼈는 거짓말을 못 한다.
이현은 맨 뒤에 앉았다.
앉는 순간, 등뼈가 똑바로 서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가끔 앉아야 바로 선다. 서 있을 때는 흔들리지만, 앉아야 흔들림이 보인다. 흔들림이 보이면 사람은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움은 고백의 첫 자국이다.
기도가 끝나고 수도자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의자가 아주 조금 밀리는 소리,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절제되어 있었다. 절제된 소리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자기가 얼마나 소란스럽게 살아왔는지가, 그 절제 속에서 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현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신부가 그를 불렀다.
“처음 오셨죠.”
신부는 나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된 눈빛이 있었다. 오래된 눈빛은 사람을 오래 보아온 눈빛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오래 견뎌온 눈빛이다. 견딘 사람은 남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세례는 받으셨습니까.”
“받았습니다.”
“세례명은요.”
이현은 잠깐 망설였다.
이름은 소개가 아니라 고백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름을 말할 때, 자기 인생의 방향까지 같이 내민다.
“아우구스티노입니다.”
신부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름이네요.”
이현은 웃지 못했다.
좋은 이름은 칭찬이 아니라 책임이 된다. 좋은 이름은 좋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 더 무겁게 어울린다.
신부는 그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새벽빛을 받아 회색으로 누워 있었다. 회색은 재의 색이기도 했다. 이현은 문득, 재의 색과 바다의 색이 닮아 있다는 것이 섬뜩했다. 온전히 자신을 태우고 남은 것의 색과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의 색. 재와 바다, 그 닮음 속에는 어떤 예언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신부가 찻잔을 내밀었다.
따뜻한 물에서 아주 약한 향이 올라왔다. 수도원의 향은 늘 약했다. 강한 향은 사람을 속인다. 약한 향은 사람을 들여다보게 한다.
“여기 오신 이유는요.”
심문이 아니라 물음이었다.
‘당신도 당신에게 말해 보라’는 물음.
이현은 준비된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서울에서라면 그는 바로 말했을 것이다. 깔끔한 말로 자신을 보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들이 오늘은 목구멍에서 걸렸다. 걸리면 사람은 다른 말을 해야 한다.
“모르겠습니다.”
말해버리고 나서, 이현은 스스로도 놀랐다. 모른다는 말은 무능력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정직의 시작이기도 하다. 모른다는 말은 자기 계산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뜻이다. 계산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람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상태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이현의 숨을 조금 풀어주었다.
기도는 기도할 마음이 생겼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을 때 하는 것이라는 말을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지금 그는 무너질 것 같았다. 무너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몰랐다.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고해성사를 원하십니까.”
그 말이 공중에서 잠깐 멈췄다.
‘고해성사’라는 단어는 칼처럼 날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불처럼 덮어오는 말이었다. 덮는다는 건 숨겨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신부는 더 밀지 않았다.
대신 낮게 말했다.
“지금 못 하셔도 괜찮습니다. 못 하는 것도 고백입니다. 다만, 못 한다는 걸 정확히 아는 사람은 언젠가는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라는 말이 위로처럼 들리면서도 협박처럼 들렸다.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쳐야 한다는 뜻이니까.
신부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경당은 늘 열려 있습니다.”
그 말이 이현의 가슴에 걸렸다.
어젯밤, 문고리를 잡고도 돌리지 못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문고리는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마치 죄의 온도 같았다. 죄는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지만, 막상 손에 잡히면 차갑다. 차가운 죄는 손에 오래 남는다.
오후가 지나고 수도원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용해질수록 이현의 마음이 커질 것 같았다. 그는 그 울림이 두려워서, 반대로 그 울림이 필요해서, 수도원 안을 천천히 걸었다.
복도 끝에는 경당이 있고, 그 안에 고해소가 있었다.
나무로 된 작은 문, 작은 창, 작은 격자.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앞에 서면 사람은 갑자기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벗겨지는 것이다. 벗겨지면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는 대신 춥다. 그래서 사람은 고해소 앞에서 한 번 더 망설인다.
이현은 경당 문 앞에서 멈췄다.
문고리를 잡지 않았다. 잡으면 돌려야 할 것 같았고, 돌리면 들어가야 할 것 같았고, 들어가면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말하면—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의 수사님 한 분이 경당으로 가는 길을 지나쳐 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언이 이현을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망설이던 마음이 발길을 되돌렸다. 용서받을 자신도, 고백할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는 꾸중이 없다. 꾸중이 없어서 사람이 더 무너진다. 무너져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바다는 다시 검게 눕기 시작했다.
낮에 부서지던 빛은 하나둘 사라지고, 바다는 흙처럼 어두워졌다. 바다와 흙이 같은 색이 되는 시간. 그 시간은 늘 사람을 진실하게 만든다. 낮에는 사람도 빛을 따라 거짓말할 수 있지만, 밤에는 거짓말이 빛을 못 찾는다.
수도자들의 끝기도가 끝난 뒤, 이현은 다시 고해소로 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는 두려움도 기대도 소망도 없을 것이다.
그가 고해소를 찾는 이유는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이 너무 커서, 그 두려움의 가장자리라도 만져보려는 마음이 사람을 밀어낸다.
그는 문득 알았다.
아무도 없는 고해소로 향하는 이 걸음이, 곧 자기 자신과 마주 서는 일이자 그보다 더 깊은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고해성사는 사제와 함께 해야 성립된다. 그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고해소 문 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고백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틱톡. 틱톡.
틱톡. 틱톡.
이현은 고해소 문고리 위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잠깐 떨렸다.
그는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리며 나무 냄새가 밀려왔다.
오래된 나무의 냄새. 수많은 숨과 눈물이 스친 자리의 냄새. 그 냄새는 사람을 오래된 기억으로 데려간다. 이현은 그 자리에서 해원장의 냄새가 아니라 자기 안의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오래된 오만, 오래된 계산, 오래된 두려움, 켜켜이 쌓인 상처들, 꾹꾹 눌러 담긴 슬픔들이 뿜어내는 냄새였다.
안은 비어 있었다.
사제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빈자리는 이상하게 비어 있지 않았다.
사제가 없다고 해서, 하느님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비어 있는 고해소 안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이현에게는 이미 하나의 고백이었다.
‘당신이 계신다’는 고백. ‘당신이 자비롭다’는 고백. ‘나는 당신 앞에서 숨을 수 없다’는 고백.
그는 장궤틀 앞에 섰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더 솔직했다.
말은 늘 꾸밀 수 있는데, 말이 막힐 때는 꾸밀 틈이 없다.
이현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오래된 언어다. 말보다 먼저 나오는 언어. ‘나는 혼자서 돌아설 수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인정하는 언어.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지지 않는 말이 목을 더 조였다.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주님….’
그 한 음절이 겨우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낮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가 건드리는 것은 너무 컸다. 작은 열쇠로 큰 문을 열 때, 사람은 손이 떨린다.
이현은 스스로를 알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에게는—사제 앞에서 모든 것을 말할 용기가 없다는 것을.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아직은 목소리가 자신을 못 따라온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빈 고해소에서 무릎을 꿇었다.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그는 자신이 얼마나 두려운지 알았다.
용서가 두려웠고, 용서받은 뒤 살아야 할 삶이 두려웠다. 죄를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자존심이 두려웠고, 그 자존심이 사실은 죄를 덮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 저는 아직… 못하겠어요….’
그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그 말은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 현실을 말하는 순간, 그는 이상하게도—조금 더 정직해졌다.
이현은 무릎 꿇은 채 한참을 있었다.
밖에서는 파도가 부서졌다. 부서지는 소리는 늘 같은데, 그날의 부서짐은 달랐다. 부서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들렸다. 부서져야 다시 모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부서져야 본래의 물이 되는 거니까.
그는 마침내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 공기가 차가웠다.
차가운 공기는 사람을 깨운다. 깨움은 자비 같지만, 이현에게는 형벌 같았다.
고해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났다.
작은 소리인데도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날 밤, 이현은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단지 고통이 아니라, 자기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고백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창문 너머로 바다는 검게 눕고, 파도는 끊임없이 부서졌다. 부서지는 소리 속에서 이현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재는 흩어지는데… 살인을 종용하던 문장과 아비의 죽음을 원하던 마음은 용서받지 못한 채 영원히 남겠지.’
‘그날, 내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어… 아비의 죽음을 재촉하던 그 문장을… 나는 언젠가, 내 입으로—사제 앞에서—다시 꺼내야만 한다.’
그의 벌은 여전히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서 고백은 더디게, 그러나 확실하게—이제야 고해소의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