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백색(白色)의 제단
6장 — 백색(白色)의 제단
안내를 받아 들어간 수사과 강력팀의 구석진 조사실은, 인간의 영혼을 샅샅이 발가벗기는 백색의 제단(祭壇)과 같았다.
창문 하나 없는 네 평 남짓한 공간. 천장에 매달린 낡은 형광등은 미세한 파열음을 내며 병적인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수도원의 어둠이 인간의 치부를 덮어주고 뼈만 남기는 자비의 공간이었다면, 이 인공의 백색광은 죄의 그림자마저 증발시켜버린 채 붉은 내장까지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폭력이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찌그러진 철제 책상 위에는, 누군가 밤새워 피우다 만 담배꽁초가 종이컵 속에서 누런 땟물로 썩어가고 있었다.
“앉으시죠.”
이현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은 사내는, 쥐고 있던 서류철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닳고 닳은 점퍼 차림의 강 형사. 피로에 전 퀭한 눈이었으나, 그 흐리멍덩한 동공 속에는 타인의 슬픔 따위에는 일절 동요하지 않는 사냥개 특유의 무자비함이 번득였다. 그는 고해소의 늙은 신부처럼 위로를 건네고 죄를 사해주는 자가 아니라, 인간이 급조해 낸 변명의 틈바구니를 짐승처럼 물어뜯는 자였다.
강 형사가 볼펜 뒷부분을 ‘딸깍’ 누르며 정적을 깼다.
그 작고 건조한 금속음이 마치 처형의 시작을 알리는 타종 소리처럼 이현의 명치를 찔렀다.
“최이현 씨. 고인이 되신 해원장 최태국 씨의 차남 되시고요.”
“……예.”
이현은 코트를 벗지도 않은 채, 두 손을 주머니 속에 깊이 찔러 넣고 웅크리듯 앉아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턱관절은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두 달 전, 빳빳한 정장 차림으로 서울 검찰청 수사관들 앞에서 오만을 떨던 도련님의 태(態)는 온데간데없었다.
“부친 돌아가시던 그날 밤, 서울 특수부에 긴급 체포돼서 영안실 못 지키신 건 뭐…… 상황이 그랬으니 이해합니다.”
강 형사는 취조가 아니라, 그저 무심한 안부를 묻듯 툭 던졌다. 그러나 그 가벼움 속에 숨겨진 덫의 이빨은 날카로웠다.
“두 달 가까이 구치소 독방에서 수의 입고 고생 많으셨겠더군요. 비싼 전관 변호사들 싹 다 끌어모아서 기어이 보석으로 풀려나셨다지?”
강 형사는 서류철을 툭 치며, 이현의 창백한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뜯어보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난리를 치고 구치소에서 기어 나왔으면, 제일 먼저 억울하게 죽은 부친 납골당부터 찾아가 뵙는 게 자식 된 도리 아닙니까? 그런데 이 양반이 감방에서 나오자마자 전화기부터 끄고 산속 수도원으로 냅다 도망을 쳤다……. 검찰 칼날도 돈으로 빠져나온 양반이, 대체 그 조용한 수도원에서는 뭘 그리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있었을까?”
순간, 이현의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뱀 한 마리가 기어오르는 듯한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에서는 이 위기를 빠져나갈 ‘과거의 최이현’이 맹렬히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저 시골 형사의 얄팍한 의심을 지워버릴 매끄러운 핑계를 대야 한다.
‘감옥에서의 고초와 아버지의 참혹한 죽음이 겹쳐,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홀로 마음을 추스를 영적인 공간이 절실했습니다.’
얼마나 완벽한 알리바이인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신을 가련한 피해자로 둔갑시킬 수 있는 거짓말이 혓바닥 밑에서 달콤하게 똬리를 틀었다. 입술만 달싹이면, 예전처럼 이 추악한 곤경을 우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현의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졌다. 매끈한 거짓말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주머니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의 오른손이 발작하듯 서하의 낡은 나무 묵주를 꽉 틀어쥐었다.
‘거짓말이 먼저 튀어나오려 할 때, 그때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때니까.‘
거친 나무 알갱이가 손금 사이의 여린 살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통증을 보냈다. 그 작은 물리적 고통이, 기교를 부리려던 이현의 혀끝을 서늘하게 마비시켰다. 손아귀에 쥔 것은 단순한 나뭇조각이 아니라, 같은 어미의 피를 나눈 아우의 처절한 연대였으며, 벼랑 끝에서 그를 진실로 이끄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이현은 천천히,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다.
오랜 세월 그를 지켜주었던 화려한 변명의 방어막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거칠고 흉측한 ‘사실’이 그의 목구멍을 찢고 올라올 준비를 마쳤다. 이현이 핏발 선 눈을 들어 강 형사를 똑바로 응시했다.
“아버지를, ……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사실의 공기가 벼락을 맞은 듯 일순간 정지했다.
서류를 뒤적이던 강 형사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흔해 빠진 변명이나 억지눈물을 예상했던 형사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서늘한 이채가 돌았다.
“……보고 싶지가 않았다?”
“예.”
이현의 목소리는 형광등 불빛보다 건조했고, 면도날처럼 위태로웠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구치소에서 풀려나 짐을 챙길 때도…… 제게 슬픔이나 충격 따위는 없었습니다. 제가 납골당에 가지 않고 도망친 건…… 그예 죽어버린 아비의 얼굴을 보며 안도하고 기뻐할 제 자신이, 끔찍하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게워낸 진실의 악취가 이현의 코를 찔렀다. 그것은 자해(自害)에 가까운 참혹한 고백이었다. 거짓말이라는 푹신한 방석을 걷어차 버리고, 날 선 유리 조각 위에 제 발로 맨몸을 던진 것이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형광등의 파열음만이 공간을 메웠다. 강 형사는 턱을 괸 채, 눈앞의 남자를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진짜 알맹이’는 수갑을 차고 날뛰던 무식한 장남 최기백도, 약을 타던 영숙도 아니었다.
강 형사가 쥐고 있던 볼펜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좋습니다. 당신이 부친을 얼마나 끔찍하게 증오했는지는 방금 아주 잘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껍데기 말고 진짜 알맹이 얘기를 해봅시다.”
형사의 상체가 책상 너머로 스르륵 넘어왔다.
“서울 검사 놈들은 이 집구석에서 150억짜리 횡령 장부나 주워가며 샴페인을 터뜨렸겠지. 서울 놈들은 돈을 봅니다. 돈은 눈에 보이는 숫자니까. 하지만, 나는 죽음을 봅니다. 살인 사건을 파고들다 보니, 죽음은 가끔 시퍼런 칼이 아니라 종이 위에 적힌 ‘문장(文章)’으로 오기도 하더군요.”
강 형사가 내민 서류철에서, 얇은 종이 몇 장이 이현의 눈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이현의 영혼을 매일 밤 난도질하던 바로 그 문서였다.
강 형사는 뭉툭한 손바닥으로 종이의 절반을 덮어버린 채, 가장 윗줄의 제목만을 손끝으로 툭툭 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솥뚜껑 같은 손 아래 가려진 문장들은, 이현이 수백 번을 고쳐 쓰며 아비의 피를 말리려 했던 치밀하고 악독한 독소 조항들일 터였다.
“굳이 내 입 아프게 세부 조항들을 소리 내 읽진 않겠습니다. 어차피 당신 머릿속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들어있을 테니까. 아버지가 평생 모은 재산을 합법적으로 모조리 빼앗고, 그 양반을 완벽한 알거지로 만들어 길거리에 나앉게 할 이 끔찍한 사형 선고문.”
강 형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날 밤, 아버님 금고가 텅 비었다고들 하더군요. 돈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진짜 인감도장과 유언장은 누군가 싹 다 훔쳐 갔으니까. 그런데 최이현 씨…… 텅 빈 금고 안에 유일하게 버려져 있던 게, 바로 당신이 쓴 이 종이들이었습니다.”
형사의 눈빛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쩍였다.
“강도 사건이 아닙니다. 금고에서 뒹굴던 이 종이는 아버지를 찌를 ‘칼’이었고, 정작 시신 품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건 돈을 움직일 ‘목줄’이었습니다. 칼은 금고에 남았는데 목줄만 사라졌다……. 이 집구석에서 제일 무서운 놈이 돈 쪼가리가 아니라 ‘결정권’을 훔쳐 갔단 소리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문서가 진짜 기가 막힌 건 내용이 아니라 그 ‘자리’입니다. 머리 좋은 당신이 짠 이 완벽한 파멸의 설계도가, 왜 꽁꽁 숨겨둔 당신 책상 서랍이 아니라…… 왜 하필 ‘당신 아버지의 금고’ 안에서 튀어나왔을까.”
숨이 멎을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강 형사의 목소리가 조사실 바닥을 기어 이현의 발목을 옥죄었다.
“당신 아버지가 어떤 인간입니까. 당신이 그 양반의 숨통을 끊어버리려 이 무서운 서류를 만들었다면, 그 양반 역시 당신의 그 끔찍한 반역을 알아채고 일부러 금고 안에 가둬둔 겁니다. 내 도장이 없으면 이건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조롱하기 위해서. 그 사람은 죽어서도, 기어이 종이를 쥐고 자식들을 통제하려던 괴물이었으니까.”
이현의 호흡이 밭아졌다. 그 미세한 균열을 강 형사는 놓치지 않았다.
“그럼 도장도 안 찍힌 이 미완성의 칼날이, 대체 어떻게 서울에 있는 당신 책상에서 해원장 안방의 굳게 닫힌 금고 속으로 기어 들어갔을까. 그 집구석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금고에 손을 댈 수 있는 그림자가 누군지는…… 나도 대충 압니다.”
이현의 머릿속에,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던 하수인 수만의 눈빛이 벼락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신은 직접 지시하지 않았겠지. 손에 피 묻히는 걸 가장 혐오하는 위인이니까. 그저 그 그림자에게 넌지시 미끼만 던졌을 겁니다. 금고가 열리는 시간, 서류가 움직이는 동선을. 그 그림자가 자신의 탐욕 때문에 제 발로 금고를 열게끔.”
살인을 종용하던 내 손끝의 문장. 나약한 자의 욕망을 부추긴 비겁한 설계.
“최이현 씨.”
강 형사가 마침내 가장 깊고 서늘한 올가미를 이현의 목에 걸었다.
“나는 당신이 아버지를 직접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당신은…… 그 죽음에 ‘동의’했습니까?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그 금고 속으로 이 잔인한 문장들을 밀어 넣을 때, 당신은 대체 무엇을 기대했습니까.”
코트 주머니 속에서 낡은 묵주를 틀어쥔 이현의 손아귀에서, 기어이 핏물 같은 짙은 진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이성의 괴물이자 완벽한 설계자였던 그가, 자신이 빚어낸 끔찍한 죄악의 실체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붕괴되고 있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으나, 이현은 끝내 아무런 대답도 뱉어내지 못했다.
침묵. 그 지독하고 참담한 침묵이야말로, 세속의 심판대 위에서 그가 올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자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