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7장 — 국밥집의 판결

by 진동길

7장 — 국밥집의 판결



침묵은 입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람 하나의 침묵은 곧바로 바깥으로 새어 나가, 다른 사람들의 혀끝에서 소문이 되어 돌아온다.


정 할매 국밥집은 아침이 먼저 끓는 집이었다.

해가 뜨기 전부터 가마솥이 숨을 쉬고, 솥뚜껑 가장자리에서 김이 먼저 났다. 김이 나면 사람도 모인다. 사람들은 국밥을 먹으러 온다고 하지만, 사실은 소식을 먹으러 온다. 밥보다 더 배를 채우는 게 말이라는 걸, 이 동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비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

그칠 듯하다가도 갑자기 몰아쳤다. 바람이 비닐 지붕을 때리면 지붕이 먼저 울고, 사람 속이 나중에 울었다. IMF가 지나간 뒤로 사람들 속은 한 겹 얇아져 있었다. 얇아진 속은 잘 찢어지고, 찢어진 속은 남의 속을 더 잘 찌른다.


그날 국밥집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은 비 냄새보다 먼저 경찰서 냄새를 들고 들어왔다.

노란 줄의 냄새. 소독약 냄새. 종이 냄새. 그런 냄새는 옷깃에 붙지 않고 눈에 먼저 붙는다. 눈에 붙으면 말이 먼저 나온다.


“들었나.”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른다. 국밥집에서 ‘누가 먼저’는 중요하지 않다. 말은 퍼지는 순간 주인이 바뀐다. 주인이 바뀐 말은 더 독해진다.


“해원장 영감 그거, 죽은 지가 언젠데… 요 며칠 또 시끄럽대이. 경찰이 들쑤신다 카더라.”


말이 숟가락 끝에서 뚝 떨어졌다.

국밥 국물이 흔들리고, 사람 눈동자도 같이 흔들렸다. 죽음은 이미 지나갔는데, 죽음 뒤에 남은 것들이 이제야 움직이는 듯했다.


“누굴 불렀다 카더라. 참고인으로.”


누군가 ‘참고인’이라는 말을 굴릴 때, 그 말은 법에서 나온 단어라기보다 동네에서 사람을 세우는 방식으로 변했다. 참고인이면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죄가 어디에 붙을지 아직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직 모르면, 사람들은 더 신이 난다. 모르는 동안에만 마음대로 붙일 수 있으니까.


“그 집안, 영감 가고 나서도 끝이 없데이. 요새는 서류니 경찰서니… 또 한 번 뒤집힌다 카더라.”


한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멈춘 숟가락보다 빠르게 다른 숟가락들이 움직였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밥을 천천히 못 먹는다. 밥이 아니라 확인을 삼켜야 하니까.


“그 집은 살아 있는 게 더 이상했지.”

“겉만 멀쩡했지, 속은 진작에 썩었지.”

“그럼 누가 죽였대.”


그 질문은 칼이 아니었다.

칼은 한 번에 베지만, 질문은 오래 피를 흘리게 한다. 국밥집에서 질문은 화두가 된다. 한 번 붙으면 혀끝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기백이 상무가 목을 콱—”

“아니다, 영숙이 그 여자가 약을 탔다더라—”

“둘 다 했다는 말도 있고.”

“방을 드나든 사람이 여럿이었다는 소리도 있더라.”


말끝이 말끝을 물어뜯었다.

사람들은 사실을 갖고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 맞는 이야기를 갖고 싸웠다. 마음에 맞는 이야기는 언제나 진실보다 편하다.


정 할매가 도마를 탁 내려쳤다.

칼날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웬만한 증거보다 확실하게 울렸다.


“입 조심들 해라.”

“죽은 사람 팔자도 팔자지만, 산 사람 팔자도 팔자다.”


정 할매의 말은 늘 짧았다. 짧은 말은 오래 남는다.

사람들이 잠깐 숨을 고르는 사이, 다른 누군가가 조용히 던졌다.


“근데 진짜 알맹이는 그게 아니지.”


국밥집에서 ‘알맹이’는 늘 같은 뜻이었다.

죽음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 돈.


“돈은 그대로 있었다더라.”

“근데 돈을 움직일 목줄이 사라졌다 카더라.”


목줄.

그 단어가 국밥집 공기를 한 번에 조였다. 사람은 목줄의 힘을 안다. 목줄은 주인을 만든다. 목줄이 사라지면 돈은 종이쪼가리다.


“인감도장이라더라.”

“유언장이라더라.”

“그거 없으면 금고에 돈이 산더미여도 소용없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는 슬픔이 아니라 계산이 섞여 있었다.


“그럼 누가 가져갔대.”

“누가긴 누군가.”

“그 집에서 제일 조용한 놈.”


조용한 놈은 대개 무섭다. 떠들던 놈은 들키지만, 조용한 놈은 들키지 않는다.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강수만.”


그 이름이 국밥집 바닥을 한 번 긁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도 혀끝을 아꼈다. 아끼는 혀끝에는 두려움이 있다. 두려우면 단정해야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 놈 눈빛 못 봤나. 사람 목 물어뜯을 날만 기다리는 눈이라.”

“그 놈이 가져갔으면… 이제 누가 주인인지 모르는 거지.”


그 말이 나오자 국밥집이 잠깐 조용해졌다.

‘주인’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심장을 건드렸다. 이 동네에서 주인은 곧 목줄을 쥔 자였다.


그때, 구석 자리에서 술기운 섞인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근데 둘째 도련님은 어째 됐노.”


사람들의 눈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옮겨갔다.

둘째. 서울. 말.


“서울 검찰이 잡아갔다가 풀어줬다더만.”

“돈 냄새 맡고 서울서 왔다 카더라.”

“둘째는 말로 사람 죽인다 카던데.”


“말로?”


누군가 웃었다.

웃음은 이해가 아니라 조롱이었다. 이해 못 하는 것을 조롱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조롱은 종종 돌아온다. 돌아온 조롱은 칼이 된다.


정 할매가 국자를 들고 솥을 한 번 저었다.

국물이 끓는 소리가 말보다 길게 남았다.


“말로 죽이든 칼로 죽이든.”

“사람은 지가 한 거, 지 몸으로 받는다.”


그 말은 신앙처럼 들렸고, 미신처럼도 들렸다.

국밥집 말은 늘 그렇다. 참과 거짓이 같은 숟가락에 섞여 나온다.


문이 열리며 찬 바람이 들어왔다.

젖은 우산을 털며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얼굴이 닳아 있었다. 닳은 얼굴은 말을 아낀다.


누군가가 낮게 말했다.


“유라 봤나.”


그 이름 하나로 국밥집이 잠깐 멈췄다.

살아 있는 피해자의 이름은 죽은 가해자의 이름보다 무겁다.


“춘식 아재 딸.”

“아부지 맞아 누워 있다 아이가.”

“근데도 웃지도 않더라.”

“눈이… 눈이…”


“눈이 뭐.”

“아무 것도 없는 눈이라.”


아무 것도 없는 눈.

그 말이 이상하게 사람들을 움찔하게 했다. 분노의 눈은 끝이 있는데, 아무 것도 없음은 끝이 없다.


또 다른 누군가가 툭 던졌다.


“기백이 약혼녀는 어찌 됐노.”

“박 군수 딸 말이가.”

“그 집도 파탄이지 뭐.”

“약혼이란 게, 돈 섞이면 피 된다 아이가.”


누군가가 맞받았다.


“피가 뭔 죄고.”

“피가 죄는 아니지.”

“근데 피로 사는 놈들은 죄를 잘 섞는다.”


말이 한 번 더 어두워졌다.

국밥집은 늘 이렇게 어두워진다.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더 잘 본다고 착각한다. 어둠에서 잘 보이는 건 사람 마음속 짐승이다.


정 할매가 솥뚜껑을 살짝 들었다.

김이 두껍게 올라왔다. 김 속에서 사람 얼굴이 잠깐씩 흔들렸다. 얼굴이 흔들리면 마음도 흔들린다.


그날 해원읍은 판결을 내렸다.

증거 없이, 법 없이.

그러나 혀는 늘 법보다 먼저 판결한다. 판결을 내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줄 아는데, 편해지는 건 마음이 아니라 잔인함이다.


국밥집 밖, 비는 다시 굵어졌다.

비는 소문을 씻어내지 못했다. 소문은 물에 씻기지 않는다. 소문은 사람 입에서 입으로 옮겨 붙는다.


그때, 구석 자리에서 누군가가 아주 작게 말했다.


“목줄… 아직 안 나왔다.”


그 한 문장이 그날의 국밥보다 더 뜨거웠다.

목줄이 없으면 주인이 없다. 주인이 없으면 짐승은 더 날뛴다.


정 할매는 아무 말 없이 국자를 들었다.

국물을 더 떠서 그릇에 담았다. 국물은 똑같이 뽀얬다. 그런데 그날 국밥집의 뽀얀 국물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도 더 검게 느껴졌다.


검은 것은 바깥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