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8장 — 그림자의 목줄

by 진동길

8장 — 그림자의 목줄



비는 오후 내내 내리다가, 버스가 산을 내려오는 동안 잠시 멎었다.


산이 낮아질수록 공기는 두꺼워졌다. 수도원의 공기가 비어 있는 것이었다면—아무것도 없어서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이 무참히 쳐내진 후의 서늘한 비어 있음이었다면—읍내의 공기는 그 반대였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 기름 타는 냄새, 연탄재 냄새, 낡은 간판 위에 쌓인 먼지가 빗물에 씻겨 내려오는 냄새. 세상의 냄새는 한 번도 중립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세상의 냄새는 언제나 인간의 질척이는 욕망을 기억하게 하는 냄새였다.


이현은 버스 창가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어둠이 오지 않았다. 어둠 대신 해원경찰서 조사실의 형광등 불빛이 망막 안쪽에 시퍼렇게 박혀 있었다. 그 빛은 꺼지지 않았다. 죄가 어두울 때 잘 자란다고들 하지만, 조사실에서 이현이 뼈저리게 배운 것은 달랐다. 죄는 밝을 때 더 선명해진다. 빛이 폭력적으로 쏟아질 때 죄의 윤곽은 더 날카롭게 살을 벤다. 자신이 오만하게 휘갈겼던 문장들이 그 빛 아래서 얼마나 끔찍한 흉기로 반짝였는지를, 그는 바닥 속까지 알아버렸다.


확인.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밀어 보낸 단어.


그 단어가 강 형사의 낡은 서류철 속에서 어떤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를 이현은 똑똑히 보았다. 자신이 누른 것은 그저 버튼이었고, 자신이 보낸 것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종이 위의 문장이라고 정당화했었다. 그러나 강 형사의 말은 달랐다.


‘이 문서가 진짜 기가 막힌 건 내용이 아니라 그 자리입니다.’ 자리. 자리가 의미를 만든다. 자리가 펜대를 시퍼런 칼로 둔갑시킨다.


이현은 창문에 이마를 붙였다.


유리는 차가웠다. 차가운 것들은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는데, 이 차가움은 자발적인 정직이 아니라 억지로 무릎이 꿇려 발가벗겨지는 수치스러운 정직이었다.


버스는 모퉁이를 돌았다.


산 아래 작은 정류장에서 이현은 내렸다.




수도원으로 오르는 길은 언덕을 타고 굽이졌다.


가는 길은 늘 같았다. 언덕을 오르면 솔밭이 나오고, 솔밭을 지나면 낡은 담장이 보이고, 담장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출입문이 나왔다. 그런데 그날은 솔밭에서부터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무언가 평소와 다른 짐승의 기척이 그 자리에 먼저 와 있었다. 이현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등줄기로 먼저 알았다. 생존을 위해 벼려진 사람의 등은 가끔 눈보다 정직하다.


담장 바깥, 수도원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


비 맞은 소나무 한 그루 아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서 있다는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음습하게 ‘붙어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나무가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것처럼, 그 사내도 그 자리에서 오래전부터 한 몸인 양 서 있었다. 그는 비에 젖어 있었다. 방금 내린 비를 맞은 것인지, 아니면 평생을 진흙탕 속에서 축축하게 살아온 사람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입고 있는 양복은 제법 값나가는 검은색이었으나, 넥타이는 뱀의 허물처럼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강수만이었다.


이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멈춘다고 해서 도망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발이 먼저 땅에 얼어붙었다. 몸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이성보다 먼저 파국을 읽어낸 것이다. 사내는 이현이 멈추는 것을 보고도 다가오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완벽하게 통달한 자의 태도였다. 기다림에 익숙한 짐승은 제 몸을 서두르지 않는다.


이현은 천천히 걸어갔다.


발은 사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원해서가 아니었다. 벼랑 끝에 선 자가 기어이 벼랑 아래로 끌려가듯, 발이 속절없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내의 얼굴이 흉터처럼 또렷해졌다.


강수만은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었다. 이현보다 세 살이 더 많은 새파란 청년의 나이. 그러나 수만의 얼굴에서는 그 나이로 보이는 구석을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이는 달력이 세는 것이고, 시간은 사람의 몸이 쌓는 것이다. 수만의 얼굴에는 해원장의 개로 살아온 이십여 년의 끔찍하고 눅진한 시간이 쌓여 있었다.


툭 불거진 광대뼈 아래로 그늘이 짙었다. 스물셋의 나이에 엘리트의 길만 밟아온 이현의 얼굴이 창백하고 서늘한 대리석 같다면, 스물여섯 수만의 얼굴은 수만 번 짓밟힌 검은 흙바닥 그 자체였다.


그의 두 손은 복부 앞에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손이 솥뚜껑처럼 크고 두꺼웠다. 손끝이 거무스름하게 죽어 있었는데, 그것은 타고난 땟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피와 오물을 평생 닦아내며 배어든 짐승의 빛깔이었다. 수만의 손은 입보다 먼저 그의 비루했던 생(生)을 낱낱이 증언하고 있었다.


이현이 두 발짝 앞에서 멈추었다.


서로를 외면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 성(聖)과 속(俗)의 경계선.


강수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말로 오래 걸렸네예.”


인사가 아니었다. 무심한 확인이었다. 평생을 등 너머로 모셨던 도련님을 향한 존대였으나, 그 억양은 갯벌 바닥을 긁듯 끈적하고 건조했다. 자신이 쥔 패가 상대방의 목줄이라는 것을 알 때, 목소리는 저절로 쇳소리를 낸다.


“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이다. 참고인 조사였어.”


이현의 목소리가 바닥을 긁으며 나왔다. 속이 타들어 가면서도 끝끝내 하대(下待)를 고수하는 도련님의 오만한 반말. 그러나 그 서늘한 표준말이, 수만의 짐승 같은 사투리 앞에서는 어쩐지 맥없이 바스러지는 듯했다.


수만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납득이 아니라, ‘역시 내 예상대로’라는 조롱 섞인 끄덕임이었다.


“강 형사, 그놈 눈썰미가 보통 아입니더.”


수만이 담담하게, 그러나 뱀처럼 차갑게 말했다.


“시골 촌동네 짭새라꼬 얕잡아봤다간 도련님 큰코다칩니데이. 그 인간 부임한 지 삼 년짼데—이 읍내 바닥에 구린내 나는 일들은 지 손으로 싹 다 그어놓은 독종이라예. 도련님이 머리 굴리가 꽁꽁 숨기논 그 잘난 서류 쪼가리도, 그놈 코는 피하기 어려웠을 깁니더.”


이현의 턱 근육이 경직됐다.


‘감히 하인 따위가 내게 훈계를 해?’


본능적인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현은 애써 그것을 내리눌렀다. 비릿한 솔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소나무가 먼저 울고,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공기가 한 박자 뒤에 흔들렸다.




수만은 천천히 안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그 동작은 지독하게 느렸다. 위협하려는 자는 빠르게 움직이지만, 이미 목줄을 거머쥔 자는 천천히 움직인다. 그가 꺼낸 것은 작은 광목 주머니였다. 수만은 그 작은 주머니를 투박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현 쪽으로 스윽 내밀었다. 넘겨주지는 않았다. 그저 눈에 박아 넣으라는 듯이.


“아시겠능교.”


이현은 알았다.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보지 않아도, 영혼이 먼저 감지하고 비명을 질렀다. 수만이 거친 손가락으로 천천히 주머니 입구를 열었다.


안에서 짧고 굵은 도장 하나가 대가리를 내밀었다. 윤기가 흐르는 상아 도장. 옆면에는 붉은색 인주가 묻은 채 ‘최태국(崔泰國)’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해원장 제국의 숨통을 쥐락펴락하던 절대 권력, 인감도장이었다.


이현의 동공이 도장 위에서 멎었다.


심장의 박동이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 아버지가 평생 제 품속에 품고 살았던 물건. 그 도장이 찍힌 자리마다 사람들의 피눈물이 쏟아졌고, 수백억의 돈이 움직였으며, 자식들의 운명이 갈렸다. 그 절대 반지가 지금, 자신이 평생 벌레처럼 짓밟고 교사했던 하인의 손바닥 위에 떡하니 얹혀 있었다.


수만은 도장을 다시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으로 접힌 낡은 종이 봉투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유언장입니더.”


그 여섯 글자가 허공에 떨어지자, 세상의 밀도가 달라졌다. 비 냄새, 솔 냄새, 젖은 흙 냄새가 일순간 피비린내로 변했다.


“무식한 기백이 형님도, 그 억수로 똑똑하신 도련님도…… 결국 이거 없으모 빈 껍데기 아입니꺼.”


이현이 짠 서류(칼)가 제국을 해체하는 설계도라면, 이 봉투(목줄)는 그 제국의 주인을 결정하는 유일한 열쇠였다. 이 스물여섯 살짜리 짐승의 안주머니 속에, 3,000억의 옥새가 완벽하게 장악되어 있었다.


“……그걸 언제부터, 네가 쥐고 있었어.”


이현의 목소리가 기어이 참담하게 갈라졌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이성이 산산조각 나는 파열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현은 자산 포괄양수도 계약서를 짜고, 수만에게 살인의 당위성(청소)을 세뇌시켜 그가 손에 피를 묻히게끔 판을 깔았다고 맹신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강수만은 금고를 열어 이현의 서류(칼)를 남겨두고, 가장 중요한 인감과 유언장(목줄)만을 가로챘다. 이현이 권력의 '해체'를 꿈꿀 때, 수만은 권력의 '이전'을 실행한 것이다. 설계자는 이현이었으나, 그 건물의 주인이 된 자는 그림자였던 수만이었다.


수만이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봉투를 안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그날 밤, 지가 금고에 처음 손을 댄 기…… 순전히 도련님이 쓴 그 ‘서류’ 때문이었심더.”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서류라니.”


이현이 짐승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어르신이 직접 넣어두신 기라예. 도련님이 밖에서 몰래 맹글어가 굴리던 그 무시무시한 서류를, 어르신이 귀신맨치로 먼저 채가꼬 그 금고 안에다 단단히 가다 놨단 말입니더. ‘내 도장 안 찍히모 니놈의 그 잘난 대가리도 똥휴지 조가리에 불과하다’ 카는 걸, 지 새끼들한테 떡 하니 증명해 보일라꼬예.”


그 억센 사투리가 서늘한 비수가 되어 이현의 등뼈를 길게 그어 내렸다.


아버지는 이현의 배신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덮어둔 채, 이현이 쓴 칼을 자신의 금고에 역으로 보관하며 아들의 목을 조일 날만 기다렸던 것이다.


“금고 문 딴 거는, 어르신이 벌써 침대에서 거품 물고 쓰러지신 뒤였심더.”


수만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건조했다.


“기백이 행님이 어르신 멱살 잡아흔든 것도 제가 방에 들어가기 전이고, 영숙 실장님이 수면제 타 믹인 것도 제가 가기 전이라예. 지는 예, 그 텅 빈 금고에서 딱 하나만 챙기 나왔심더. 어르신이 송장이 돼가꼬도 품속에 악착맨치로 끌어안고 있던 이 거…… 진짜…… 목줄만예.”


그 지독한 독백이 끝나는 자리에서, 이현은 평생을 지탱해온 지식인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헐떡이며 내뱉었다.


“……대체, 왜 네가.”


수만은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그러나 평생을 하늘처럼 군림하려 들었던 그 오만한 천재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도련님은 저 책상머리에 앉아가 펜대나 굴리고 서류 쓰셨지예. 지는 그 서류가 어데서 튀나왔는지 다 알고 있었심더. 어르신이 그기 금고에 가다 놓으면서 도련님 목줄을 우째 죌 작정이었는지도 다 알았고예.”


수만의 억양이 처음으로 이빨을 드러낸 늑대처럼 탁하고 끈적해졌다.


“어르신은 그 서류로다가 도련님을 평생 노예 맹글라 캤심더. 자식이 애비 파멸시킬라꼬 쓴 그 반역 문서가, 도리여 자식 숨통을 옥죄는 목줄이 되게 맹그는 거. 그기 영감이 평생 써먹던 수법 아입니꺼.”


이현의 입 안이 바싹 타들어 갔다. 완벽한 오판. 자신이 수만을 덫으로 몰아넣은 줄 알았는데, 자신은 처음부터 아비가 짜놓은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날벌레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캐서 내 그 목줄을 가온 깁니더.”


수만이 이현의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이현이 며칠 전 뒤란에서 오만하게 뱉었던 단어들을 잔인하게 되돌려주었다.


“도련님이 그 잘난 입으로 씨부리던 ‘합리적인 청소’…… 지가 참말로 깔끔하게 해치웠지예. 근데 이 집구석 진짜 주인이 누군지는, 도련님의 그 얄팍한 펜대가 아이라. 요 도장이 정하는 거 아입니꺼. 도련님이 시작한 그 똑똑한 장난질…… 결국 내 손아귀에 쥐인 이 도장 하나로 끝난 기라예.”


잔혹한 팩트였다.


이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반말을 고수하며 우위를 점하려 했던 이현의 방어기제는, 투박한 사투리를 뱉어내는 수만의 퀭한 눈빛 앞에서 쓰레기처럼 부서져 내렸다. 평생을 발밑에 두고 무시했던 서자 앞에서, 이현은 철저한 패배자이자 아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멍청한 미끼로 전락했다.


수만이 다시 안주머니에 손을 얹으며 몸을 돌렸다.


“이걸 쥐고 우짤지는…….”


그는 일부러 말을 흐렸다. 어떻게 할지는—채우지 않은 빈자리가 더 끔찍한 형벌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머리 억수로 좋으신 도련님이 뼛골 빠지게 함 고민해 보시지예.”


수만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난생 처음으로 이현을 아니 막내 도련님을 등지고 걸음을 옮겼다.




사내가 걸어가는 젖은 뒷모습을 이현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둡고 젖은 솔밭 사이로 검은 양복이 먹물처럼 번지며 사라졌다. 수만이 남기고 간 족적은 진흙처럼 끈적하게 이현의 붕괴된 이성을 옥죄고 있었다.


등 뒤의 수도원 담장 안에서는 수도자들의 기도가 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현은 수도원 문을 향해 발을 내디뎌 보려 했으나, 발이 바닥에 시멘트를 부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련님이 시작한 장난질, 결국 내 손아귀에서 끝난 거 아입니꺼.


수만의 쇳소리 같은 사투리가 솔바람을 타고 귓바퀴를 찢었다.


이현은 주머니 속의 나무 묵주를 미친 듯이 틀어쥐었다. 거친 나무 알갱이가 손금 사이의 여린 살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맺힐 듯 아팠다. 그 작은 통증만이 지금 이현이 이 세상에서 쥘 수 있는 유일하게 정직한 감각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환상이었고, 오만이었으며, 끔찍한 착각이었다.


먼 곳에서 바다 소리가 들렸을까.


저 멀리, 마을을 아래 파도가 제 몸을 찢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잊고 있던 바다의 포효가 귀를 때릴 때, 그것은 심판관의 몽둥이질처럼 서늘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기우는 해는 인간의 절망 따위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현은 비로소 담장 문 앞에 섰다.


손을 올리자, 쇠붙이로 된 문고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차가운 것들은 인간을 억지로 정직하게 만든다.


그는 짐승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기어이 문을 밀었다.


끼기긱—.


열리는 쇳소리가 비명처럼 컸다.


수도원은 작은 소리를 무섭게 증폭시킨다. 죄의 크기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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