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7장 — 문 밖의 사람들

by 진동길

2000년 3월 16일 낮–저녁 / 진주 요양병원 — 해원읍 — 수도원





병실 문은 안쪽에서 닫혔다.

서하는 등 뒤로 쇠붙이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복도를 걸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걸음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 익숙한 보폭마저 제 것이 아닌 듯 무거웠다. 서두르면 무너질 것 같고, 늦추면 더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복도 끝에 창이 있었다.
창밖으로 남강이 보였다. 강은 한낮인데도 어딘가 새벽빛을 덜 벗은 얼굴이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강이었으나, 강을 보는 사람은 이미 어제의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이 아직 귓속에 남아 있었다.


이현이.
그날 밤.
밖에서.
문을.
잠갔다.


끊긴 말이라 더 아팠다. 매끈하게 이어진 문장보다, 그렇게 부서진 말이 사람을 더 깊이 찌를 때가 있었다.

서하는 창틀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그날 일을 알기 전의 이현과, 알고 난 뒤의 이현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같지 않았다. 한집에서 자라고 같은 밥상을 마주한 형이었으나, 사람은 어느 날 전혀 낯선 얼굴을 드러내는 수가 있었다. 모르고 있을 때는 하나뿐이던 얼굴이, 알고 난 뒤에는 두 겹 세 겹으로 갈라져 보였다.


핏줄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어서, 사람을 붙들어 주기도 하지만 더 깊이 옥죄기도 하였다. 끊어진다고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오래 안쪽에 있어, 한 번 살아나면 사람의 목을 더 질기게 조르는 법이었다.


강은 말없이 흘렀다.

흘러갈 때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던 것들이 있었다. 시간도 그랬고, 침묵도 그랬고, 사람의 죄도 그러하였다. 그냥 지나갈 때는 가벼운 듯하던 것이, 어느 날 어딘가에 걸려 멈추면 비로소 무게를 드러냈다. 쌓인 것은 무거웠다.


원장 수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네가 짊어져야 할 것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 자네 자신의 십자가네.'


그런데도 서하는 벌써 이현의 죄를 제 어깨에 얹고 싶어지는 마음을 느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누가 무거운 것을 지고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덜어 줄 수 있으면 덜어 주고 싶었고,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늘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대신 짊어지는 일이 때로는 그 사람이 끝내 제 몫을 마주할 자리까지 빼앗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서하는 창틀에서 이마를 떼었다.

오늘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지 못한다.

그 생각이 다시, 조금 전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원장 수사의 허락은 상태를 보고 돌아오는 데까지였다. 퇴원 수속은 형들과 병원 쪽의 의논이 더 필요했고, 형들은 지금 제 사정에 매여 있다. 그러니 어머니는 오늘도 402호 안에 남아 있어야 했다.


문은 다시 닫혔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안에 있었다.

그 사실이 발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죄책감인지 무력감인지, 아니면 이름 붙이기 어려운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드는 것은 대개 이름을 정확히 붙일 수 없는 마음이었다.




버스는 늦게 왔다.

진주에서 해원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낡았고, 3월 끝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길가의 매화는 거의 다 졌고, 목련은 막 피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지는 꽃과 피는 꽃이 한 길목에 함께 서 있었다. 봄은 늘 그렇게 왔다. 한쪽에서는 떨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겨우 열리기 시작하였다.


서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았다.

어머니의 손이 자기 손목을 붙들던 감촉이 아직 남아 있었다. 살의 감촉보다 뼈의 감촉이 더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은 스치고 지나가지만, 뼈는 한번 닿으면 쉬 잊히지 않았다.


창밖으로 빈 논이 지나갔다.
뒤집힌 흙은 아직 아무것도 품지 않은 채 드러나 있었다. 물 고인 자리만 환하였다. 비어 있는 논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얼굴 같았다. 무엇이든 심길 수 있고, 아무것도 심기지 않은 채 남을 수도 있는 자리. 사람의 시간도 가끔 그와 같았다.


어머니는 십오 년을 그 병실에서 버텼다.

그곳으로 밀어 넣은 것은 세상이었고, 그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아버지가 있었으며, 문을 잠근 것은 혈육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오래 덮어 둔 것은 침묵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동안, 한 사람의 생은 천천히 먼 데로 밀려갔다.


수도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하는 오래 생각하였다.

그것은 다만 담장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다시 고요 속으로 몸을 들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병실 안에 남아 있고, 형들은 헤어나지 못한 채 엉켜 있으며, 집안의 죄는 아직 해원 땅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럴 때 혼자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너무 쉬운 일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때 원장 수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 첫걸음이다.'


들었을 때는 그냥 지나가는 말 같았으나, 지금은 달랐다. 말은 돌아돌아 결국 제 자리를 찾아오는 법이었다.

서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어머니를 당장 밖으로 모셔 나올 수 없다.
기백의 분노를 돌려세울 수 없다.
이현의 몫을 대신 질 수도 없다.
수만이 무엇을 쥐고 있는지 다 알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지의 침묵과, 알고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침묵은 달랐다. 이현이 그날 밤 문을 잠근 것이 두려움이었는지, 냉정이었는지, 서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모른다는 것이 오늘 자기 어깨에 얹힌 가장 무거운 짐 같았다.


버스가 해원 읍내로 접어들자 해원천이 잠깐 창밖으로 스쳤다.
물빛은 아직 차가웠다. 차가운 것들은 오래 남았다.




해원경찰서 가까운 모텔 방에서 이현은 혼자 있었다.

조사는 오늘로 세 번째였다. 강 형사는 전날보다 말수가 적었다. 길게 몰아붙이는 것보다 짧게 끊는 쪽이 더 사람을 견디기 어렵게 하였다. 스스로 무너질 시간을 주는 편이 더 잔인할 때가 있었다.


이현은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등이 조금 굽어 있었으나 바로 펴지 않았다. 몸을 바로 세우면 생각도 다시 바로 세워야 할 것 같았고, 지금은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창밖은 대낮이었다.
낮은 사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 제 손이 깨끗하다고 믿어 왔다. 직접 더럽히지 않았고, 절차와 문장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 깨끗함이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았다.


깨끗한 손으로도 문을 잠글 수 있었다.
깨끗한 손으로도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깨끗한 손으로도 남의 고통 앞에서 물러설 수 있었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제나 무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하지 않은 것들이 더 오래 남았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소피아.
그리고 십오 년.

열다섯 살의 자신,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그 기억을 그는 오래전부터 묻어 두고 살아왔다. 더 바쁜 일을 만들고, 더 먼 계획을 세우고, 더 어려운 문장 속으로 들어가며 생각할 틈을 없애는 식으로. 그런데 오늘은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누가 안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듯하였다.


이현은 화장실로 가 물을 틀고 손을 씻었다. 이미 깨끗한 손을 자꾸 씻는다는 것이 우스운 일인 줄 알았으나 멈추지 않았다. 물을 잠그고도 한동안 젖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잠근다는 동작.

오늘은 그 단순한 움직임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시장통 뒷골목, 낡은 다방 건물 이층 셋방.
영숙은 하루 종일 그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어제 들어온 쪽지는 이미 재가 되어 바닥에 남아 있었다. 영숙은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흔적이 남아 있어야 지금 자기가 어디쯤 서 있는지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오전에 공중전화에서 전화가 왔다.


“퇴원 서류가, 오늘 움직입니다.”


그 말뿐이었다. 전화는 곧 끊겼다.

영숙은 그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소피아 쪽 일이었다. 누군가 소피아를 병원 밖으로 꺼내려 하고 있었다.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것은 몸만 나오는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 안에 오래 남아 있던 기억과 이름도 함께 따라 나왔다.


소피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영숙은 알고 있었다.
아는 자에게는 그 앎 자체가 무기가 되었다. 곧장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무기였다.

전화 속 목소리를 떠올리자 유라의 얼굴이 따라왔다.


영숙은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자꾸 부를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코트를 걸쳤다.

밖으로 나갈 시간이었다.




수도원 정문에 이를 때까지 서하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해원에서 오르는 비탈은 가팔랐다. 숨이 찼으나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다시는 저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육중한 대문 앞에 서서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아침에 나설 때와 같은 문인데, 돌아와 선 사람은 이미 아침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빗장이 풀렸다. 수련장 수사가 말없이 비켜섰고, 서하는 묵례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문이 닫혔다.


같은 소리였으나 다르게 들렸다.
아침의 닫힘이 바깥으로 나서는 사람 뒤에서 잠기는 소리였다면, 지금의 닫힘은 돌아온 사람을 다시 안으로 들이는 소리였다.


만과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서하는 곧장 원장 수사의 방으로 갔다.

노수사는 작은 나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서하가 들어서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곧바로 묻지 않았다. 한동안 서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래 산 사람은 말보다 얼굴을 먼저 읽는 법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원장 수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은… 좀 어떠시더냐.”

“예. 살아는… 계셨습니다.”


짧고 무거운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원장 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마른 손으로 그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 주었다. 짧은 동작이었으나 그 안에는 조급한 위로나 공연한 동정이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젊은이가 혼자 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만 담겨 있었다.


잠시 뒤 원장 수사가 물었다.

“가서 보고 오니… 마음에 말 못 할 것이 하나 얹힌 게로구나.”

“예.”

“그것이 네가 감당하기에, 무거운 것이냐.”

“예.”

“그것마저 짊어질 수 있겠느냐.”


서하의 눈가가 조금 떨렸다.

“모르겠습니다.”


원장 수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다.”


그 말은 버스 안에서 서하의 마음을 치고 지나간 생각과 맞닿아 있었다. 우연인지 섭리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거기 놓여 있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가서 기도하거라.”

서하는 깊이 묵례하고 방을 나왔다.




저녁 종이 울리기 전, 그는 어둑한 경당 구석에 무릎을 꿇었다. 제대 앞에는 붉은 성체등만이 조용히 타고 있었다. 그 길고도 잔인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진주에 갔고, 어머니를 보았고, 형제의 배신을 들었고, 끝내 어머니를 그곳에 남겨 둔 채 홀로 돌아왔다. 형제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세속은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았다.

그는 이제야 기도가 무엇인지 조금 다르게 알 것 같았다.

기도는 해결을 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채, 그 무력함과 함께 무릎 꿇는 일이었다.


수도자들이 하나둘 경당으로 들어왔다. 검은 수도복 자락이 어둠과 섞였다. 만과가 시작되자 서하는 천천히 입을 열어 찬미가를 따라 불렀다. 목소리는 가늘었으나 끊기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수도원의 대문은 세속을 향해 닫혔다.

그러나 서하의 마음속에는 그날부터 또 다른 문 하나가 생겨났다.

이현이 있는 쪽의 문이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쉽게 열어서는 안 되는 문.
알면서도 곧장 쓰지 않기로 한 것들이 모여 있는 문.

그 문은 잠긴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닫혀 있을 뿐이었다.

닫혀 있는 것과 잠긴 것은 다른 일이었다.


“지금은 너희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요한 16,12)

작가의 이전글죄와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