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8장 — 닫히는 문

by 진동길

2000년 3월 17일 새벽–저녁 / 가르멜 수도원 — 해원읍 모텔 — 진주 요양병원 — 해원읍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으나, 밤은 이미 제 힘을 거의 다 써버린 듯하였다.

수도원 뒤뜰의 나무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바람은 낮은 담장 위를 스치며 마른 잎 몇 장을 굴렸다. 서하는 그날 새벽, 잠에서 깬 것이 아니라 더는 누워 있을 수 없어 일어난 사람처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은 무거웠으나, 마음이 먼저 잠을 밀어낸 뒤였다.


세면장으로 가는 복도 끝 창문으로 바깥이 보였다.
매화는 거의 다 져 있었다. 젖은 꽃잎 몇 장이 돌계단 틈에 붙어 있었고, 목련은 아직 덜 열린 채 나무 끝에서 희끗희끗 밤을 견디고 있었다. 지는 꽃과 피는 꽃이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때였다. 남녘의 봄은 늘 그런 얼굴로 왔다. 다 가 버린 것과 이제 막 오는 것이 한 바람 속에 섞여 있었다.


서하는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물이 차가워도 정신이 맑아지지는 않았다. 전날 병실의 공기가 다시 떠올랐다. 소독약 냄새와 눅은 이불 냄새, 오래 닫혀 있던 방의 서늘한 기운. 그리고 그 속에서 잠깐 번뜩이던 어머니의 눈.


이현이.
그날 밤.
밖에서.
문을.
잠갔다.


그 말은 밤새 그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다. 기도문을 외워도, 성가를 속으로 더듬어도, 끝내 그 다섯 마디가 더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사람의 말은 한 번 살에 박히면 쉽게 빠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이 어머니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오래 묻혀 있던 뿌리의 신음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

그 이름은 사람마다 다르게 부르지만, 그 안에 깃든 뜻은 대개 비슷하였다.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나를 품고 있던 자리.
멀어졌다고 여기는 순간에도, 가장 깊은 곳에서 나를 붙들고 있는 자리.
돌아갈 수는 없어도 끝내 돌아보게 되는 자리.


서하는 수건으로 얼굴을 눌러 닦으며 생각하였다.
어머니를 다시 병실에만 두지 않겠다고.
형의 죄를 대신 지지도 않겠다고.
그러나 형을 버리지도 않겠다고.


셋을 한꺼번에 붙드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그 셋 가운데 하나라도 버리면 자기 자신이 아주 달라질 것 같았다. 사랑이 언제나 덜어 주고 대신 져주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네가 네 몫을 지게 두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일, 그것도 사랑일 수 있었다. 그런 사랑은 더 차갑고 더 어려웠다.




경당에는 아직 붉은 성체등만 켜져 있었다.
서하는 제대 앞까지 나가지 않고 뒤편 긴 의자 끝에 앉았다. 무릎을 꿇으면 기도문이 저절로 나올 것 같지 않았고, 그대로 앉아 있으면 금세 무너질 것 같았다. 그는 양손을 모은 채 오래 앉아 있었다.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누구를 붙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하였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였다.

이현을 만나야 한다는 것.


그 생각이 마음 한가운데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특별한 확신이 번쩍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길 말고는 다른 길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의 이름은 살아 있는 자식들을 기어이 움직이게 하는 법이었다. 살아 있는 자식도, 이미 마음이 반쯤 죽은 자식도, 제 방식대로 어머니 쪽으로 끌려가게 마련이었다.


아침 식사 뒤, 서하는 원장 수사의 방을 찾았다.

노수사는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빛 아래 성무일도서를 펴 둔 채 앉아 있었다. 서하가 문턱에 서자 수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곧바로 묻지 않고 얼굴을 먼저 살폈다. 말보다 먼저 사람의 안색과 숨결, 침묵의 모양부터 보는 눈길이었다.


“무슨 일이냐.”


낮고 마른 목소리였다.

서하는 잠시 숨을 골랐다.


“한 번 더 나가고 싶습니다.”


원장 수사의 시선이 조금 깊어졌다.


“병원으로 가려는 게냐.”

“아닙니다.”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형을 만나야겠습니다.”


노수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묵주 알 하나를 손끝으로 천천히 굴릴 뿐이었다. 서하도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미 밤새 자기 안에서 몇 번이고 꺼내 본 말이었다. 고집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었다. 해야 할 것을 늦게 알아차린 사람의 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마침내 노수사가 물었다.


“제 몫을 지게 두려고요.”


그 말에 노수사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노수사가 다시 물었다.


“버리지도 않으려고요.”


방 안은 조용하였다.

바깥에서는 새 한 마리가 잠깐 울고 말았다.

원장 수사는 오래 앉아 있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안으로 돌아오너라.”

“예.”

“논리로 이기려 들지 마라.”

“예.”

“네가 들은 말만 전하고, 그 말이 가야 할 자리까지는 스스로 가게 두어라.”


서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예.”


그가 문을 나서기 직전, 노수사가 아주 낮게 덧붙였다.

“상처 입은 사람은 남의 상처를 보면 제 상처까지 한꺼번에 붙들려 든다. 그러다 제 손도 피 보게 마련이다.”


서하는 문고리를 잡은 채 잠깐 멈추었다.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는 작았으나 전날보다 덜 흔들렸다.




해원 읍내의 모텔은 낮에도 어둑하였다.

낡은 간판은 빛이 바래 있었고, 복도에는 눅은 장판 냄새와 싸구려 비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서하는 몇 번이고 숨을 고르려 하였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여러 번 말을 꺼내 보았으나, 그 말을 형의 얼굴 앞에 내놓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문 앞에 섰을 때, 그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드렸다.

안에서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두 번째로 손을 들려던 참에 안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잠시 누군가 문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기척이 있더니, 문이 조금 열렸다.


이현이 서 있었다.

하루 만에 사람이 저리 달라질 수 있는가 싶었다. 얼굴은 더 마르고 눈 밑은 꺼져 있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눈빛이었다. 늘 무엇인가를 계산하고 재던 눈이 아니라, 밤새 자지 못한 사람의 눈, 제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혼자 들은 사람의 눈이었다.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


목소리는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형을 만나러.”

서하는 문턱을 넘지 않은 채 대답하였다.


이현은 잠깐 서 있다가 비켜섰다.

“들어와라.”


방 안은 눅눅하였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으나 공기가 돌지 않았다. 침대 시트는 구겨져 있었고, 작은 세면대에는 물방울이 아직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누군가 한밤중에 오래 서성인 뒤의 방 같았다.

서하는 문가 가까이에 섰고, 이현도 앉지 않았다.


한 방 안에 두 형제가 마주 서 있었으나, 둘 사이에는 오래 비켜 두었던 시간이 한꺼번에 들어와 서 있는 듯하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현이었다.

“어머니를 보고 왔다며.”

“예.”

“상태는… 많이 안 좋더냐.”


그 물음이 끝났을 때, 이현은 이미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얼굴이었다. 너무 늦게 묻는 자의 목소리, 묻는 말 자체가 제 죄를 드러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서하는 그 물음을 바로 받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말했어.”


이현의 손이 문짝 가장자리를 쥔 채 가만히 굳었다.

서하는 전날 병실에서 들은 그대로를 끊어 말했다.


“이현이.
그날 밤.
밖에서.
문을.
잠갔다.”


방 안이 순식간에 더 좁아지는 것 같았다.

이현의 입가가 잠깐 비틀렸다.


“어머니가… 그걸 말했다고.”

“예.”

“그 말을 너는 믿는 거냐.”


다급한 논리가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는 아직도 자기 안의 차가운 이성으로 그 순간을 다시 덮어 보려는 듯했다.

한참 뒤, 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때… 여덟 살이었다.”

말끝이 마르고 낮았다.


“어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그게 어디까지 가는 건지… 내가 다 알 수 있었겠냐.”

그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무서웠다.
어머니도 무서웠고, 아버지도 무서웠고, 그 집이 다 무서웠다.
그냥… 조용해지기만 바랐다.”


그 말은 변명인 동시에, 그가 처음 입 밖으로 꺼낸 가장 오래된 고백이었다.

서하는 오래 침묵했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어린 이현을 변호할 말도 있었고, 그를 미워할 말도 있었고, 어머니를 대신해 울부짖을 말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말은 지금 다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가장 낮고, 가장 물러설 데 없는 말 하나만 꺼냈다.

“형은 몰랐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문 닫히는 소리보다 먼저, 믿고 있던 아들마저 돌아서는 소리를.”


그 말은 칼처럼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너무 낮고 조용해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이 그대로 가슴에 닿는 말이었다.

이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서하가 다시 말했다.

“형은 그날 어머니 쪽으로 가지 않았고,
그 뒤로도 계속 안 가고 살았잖아요.”


그 말에 이현의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였다.
사람은 누가 밀어서 무너지는 것보다, 오래 피해 온 자기 모습이 제 눈앞에 서 있을 때 더 깊이 무너지는 법이었다.


한참 뒤 이현이 물었다.

“너는… 나를 어쩌려고 여기 왔냐.”


그 물음에는 두려움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서하는 창밖을 잠깐 보았다. 모텔 맞은편 담장 너머로 목련 한 그루가 보였다. 몇 송이만 피어 있었고, 나머지는 아직 봉오리였다. 매화는 이미 졌고 목련은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중간쯤 걸려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봄 햇살은, 사람 마음과는 달리, 조금씩 더 따뜻해지고 있었다.


“형의 죄를 대신 짊어질 생각은 없어.”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야지.”


이현이 쓴웃음 같은 것을 지었다.

“그렇다고 두고 볼 생각도 없어.”


이현이 얼굴을 들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그의 눈에 놀람 같은 것이 스쳤다.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게… 무슨 뜻이냐.”

“형이 형 몫을 져야 한다는 뜻이야.”

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그런데 그 곁에 내가 없지는 않겠다는 뜻이야.”


그 말 뒤에 긴 침묵이 흘렀다.

이현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평생 계산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계산할 수 없는 말은 더 낯선 법이었다.


“왜.”

이현이 물었다.

아주 작고 어린 목소리였다.

“왜 그러는데.”


서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형제니까, 하고 말하기에는 너무 쉬웠고, 사랑하니까, 하고 말하기에는 자기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래 침묵한 끝에 그가 말했다.


“내가 형이 아니니까.”


이현은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 듯 서하를 바라보았다.


“내가 형 대신 문을 잠근 사람은 아니니까.
형이 풀어야 할 일은 형이 해야 하잖아.”


이현은 시선을 떨구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 무렵 진주 요양병원 원무과에는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목소리는 낮고 정중했으나 지나치게 매끈하였다. 상대는 자기를 환자 친척 쪽 사람이라고만 밝혔다. 보호 절차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니 퇴원 논의는 조금 더 신중히 해야 한다는 말, 최근 환자 상태가 불안정하다 들었으니 외부 접촉을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말,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이 순서대로 흘러나왔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별것 아닌 통화처럼 메모지 한 귀퉁이에 몇 자 적어 두었다. 그러나 그런 몇 자가 쌓여, 사람 하나의 길을 늦추는 수도 있었다.


병원 앞 골목 건너편 공중전화 부스에는 수만이 서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그는 다만 누가 어느 시간에 병원으로 전화를 하는지, 누가 언제 병원 건물로 들어가고 나오는지, 그런 냄새를 맡기 위해 서 있었을 뿐이었다. 확인하는 일은 늘 그의 몫이었고, 그는 그런 몫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금 뒤 그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보다 먼저 영숙은 시장통 끝 골목을 걷고 있었다.

검은 코트 자락이 바람에 한 번씩 흔들렸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급한 사람일수록 걸음을 늦출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영숙은 오래전에 배웠다. 판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사람은 제 얼굴을 더 고요하게 다듬어야 했다.


시장 끝집 담장 밑에는 젖은 매화꽃잎이 붙어 있었고, 맞은편 집 목련은 막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영숙은 그 앞을 지나며 잠깐 눈을 들었다. 지는 것과 피는 것이 한 가지에 함께 붙어 있는 모양이 우습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였다.


“그래.”

그녀가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다들 나오기 시작하는구나.”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서하가 모텔 방을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조금 기울어 있었다.

복도 끝 창으로 저녁빛이 비쳐 들고 있었다. 낮보다 부드러운 빛이었으나, 사람 얼굴을 덜 선명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그는 문을 닫고 복도를 걸었다.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현은 따라 나오지 못하였다.


계단을 내려가며 서하는 생각했다.
어떤 문은 한 번 두드린다고 바로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문은 안쪽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손을 대기 전까지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


모텔 바깥으로 나오니 공기가 차가웠다.
낮보다 바람이 더 서늘해져 있었다. 해원천 쪽에서 물 냄새가 올라왔고, 길 건너 전파사 앞 의자에는 노인 둘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제 속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죄가 드러나고,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져도, 시장은 서고 버스는 다니고 저녁은 왔다.


주머니 속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서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남긴 말과, 형의 떨리던 손과, 원장 수사의 목소리가 한데 얽혀 있었다.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름 붙일 수는 없었으나, 어제와는 다른 시간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였다.

그날 저녁, 진주 요양병원 402호 문은 다시 닫혔다.


소피아는 안쪽에 누워 있었고, 복도에는 간병인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누가 퇴원을 논하고, 누가 서류를 붙들고, 누가 전화를 거는지는 그 문이 알지 못하였다. 다만 닫힌 문은 자기 할 일을 하듯 거기 서 있었다.

그리고 해원의 어느 방에서도, 또 수도원의 어느 방에서도, 각자의 문이 제 몫의 침묵을 품고 닫혀 있었다.


그날 저녁 닫히는 것은
방문 하나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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