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 레퀴엠
2000년 3월 17일 저녁–밤 / 해원읍 비탈길 — 해원성심병원 응급실 — 진주 요양병원 — 해원읍
저녁은 늦게까지 밝았다.
봄볕은 사람 마음과는 상관없이 날마다 조금씩 더 따뜻해지는 모양이었다. 낮 동안 돌담을 데우고 지붕 위에 오래 머물다가, 해가 기울어서야 천천히 물러나는 빛.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꼭 그 빛을 따라가 주지 않았다. 어떤 날은 봄이 와도 속은 아직 겨울이고, 어떤 날은 볕이 좋은데도 몸 안에서는 찬물이 도는 듯하였다.
서하는 해원 읍내에서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을 걷고 있었다.
모텔에서 나온 뒤 버스를 타고 내려, 다시 익숙한 길을 거꾸로 오르는 중이었다. 길은 가팔랐고, 바람은 저녁이 되자 더 차가워져 있었다. 아래쪽 마을에서는 저녁밥 짓는 냄새가 올라왔고, 길가의 매화는 거의 다 져 있었다. 대신 목련은 이제 막 몸을 열고 있었다. 흰 봉오리가 저녁빛을 받아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지는 꽃과 피는 꽃이 한 비탈에 함께 붙어 있는 때였다.
서하는 천천히 걸었다.
이현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방 안에 서서 손을 떨던 형의 모습,
“나는 그때… 여덟 살이었다”라고 말하던 목소리,
그리고 어머니는 문 닫히는 소리보다 먼저, 믿고 있던 아들이 돌아서는 소리를 기억하고 계셨을 거라고 자기 입으로 내뱉던 순간의 서늘함.
말은 꺼냈으나,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현은 아직 무너지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아직 병실 안에 남아 있었고, 영숙과 수만과 유라는 아직 각자의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오늘 하루만으로 무슨 매듭이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디선가 아주 오래 묶여 있던 실 한 가닥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비탈 중간쯤에서 서하는 잠깐 멈추었다.
숨이 차서가 아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얼굴을 보았다. 어머니의 얼굴, 형의 얼굴, 원장 수사의 얼굴. 사람의 얼굴은 한 번 마음 안에 들어오면 쉽게 떠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라는 얼굴은 더 그랬다. 사람은 어머니를 잃고도 오래 사나, 아주 조금도 잃지 않고 사는 법은 없었다. 멀어졌다고 여겨도 끝내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곳이 한군데씩은 몸 안에 남았다.
그는 다시 걸으려 했다.
그때였다.
비탈 아래 굽은 길에서 헤드라이트가 갑자기 번졌다.
불빛은 한 번 흔들리더니, 이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위로 치받아 올라왔다. 차 한 대가 너무 빠른 속도로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저녁길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다. 엔진 소리가 거칠었고, 차체는 길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렸다.
서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키려 했다.
그러나 비탈길은 좁았고, 돌담은 가까웠다.
차는 브레이크를 늦게 밟았다.
타이어 긁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
순간, 빛과 쇳소리와 흙먼지가 한꺼번에 엉켰다.
서하의 몸이 길옆으로 크게 튕겨 나갔다.
무언가 돌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고, 그 뒤로는 잠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차는 비탈길 한쪽에 비스듬히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사내 하나가 비틀거리며 내렸다.
술 냄새가 멀리까지 번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친 것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눈이 풀려 있었고, 입에서는 말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만 흘러나왔다.
“아, 아… 사람… 사람인가…”
그때 아래쪽 집 마당에서 개가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누군가 담장을 열고 뛰어나왔고, 곧 다른 발소리도 이어졌다. 해원에서는 저녁의 고요가 깨질 때 늘 그렇게 깨졌다. 하나의 소리가 마을 끝까지 번지고, 사람 몇이 고개를 들고, 다음 소리가 그 뒤를 잇는다.
“사고 났다!”
“어이구, 사람 치였다!”
“119 불러라!”
길가에 쓰러진 서하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은 반쯤 떠 있었으나 초점이 멀었다. 입가와 귀 아래로 피가 천천히 번졌다. 오른손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가슴께에서는 숨이 붙었다 끊기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그를 알아보았다.
“어? 저 사람 수도원 총각 아이가?”
“최씨네 막내 아니가?”
“서하 아이가, 서하!”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사고 직후의 몸은 살아 있는 것 같아도 너무 쉽게 부서질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함부로 안지도 못하고, 버려둘 수도 없고, 다들 손을 어디에 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순간이 있었다.
몇 분 뒤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해원성심병원 응급차는 오래 걸리지 않고 도착했다. 구조대원 둘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술 취한 운전자는 그제야 무릎이 풀린 사람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구조대원이 서하의 눈꺼풀을 들춰 보고, 목을 고정하고,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다른 한 명이 짧게 말했다.
“의식 떨어집니다. 빨리 옮깁시다.”
서하는 들것 위로 옮겨졌다.
그 순간 아주 잠깐, 그의 눈꺼풀이 떨렸다.
누가 몸을 숙여 이름을 불렀다.
“서하 씨. 들리십니까. 서하 씨.”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말이 되지 못한 소리 하나가 목 안쪽에서 걸렸다가 사라졌다.
응급차 문이 닫혔다.
사이렌이 다시 울렸다.
해원성심병원 응급실은 저녁마다 늘 부산스러웠다.
술 먹고 다친 사람, 공사장에서 손을 베인 사람, 열 나는 아이를 안고 달려온 엄마, 할머니 손을 붙잡고 우는 손주. 그런 소리와 발소리와 형광등 불빛이 뒤섞인 곳으로 서하가 실려 들어왔다.
“교통사고. 보행자.”
“음주운전 의심.”
“두부 손상 가능성 있습니다.”
“혈압 떨어집니다.”
짧고 빠른 말들이 이어졌다.
응급실 침대 위에 눕혀진 서하는 피에 젖어 있었다. 피가 많이 보인다고 해서 꼭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은 아니고, 피가 적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움직였다. 옷을 잘랐고, 정맥을 잡았고, 동공을 확인했고, 가슴 소리를 들었다.
“보호자 연락됐습니까?”
“가방에서 번호 나왔습니다. 수도원 쪽입니다.”
그 무렵 수도원 저녁 종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수련장 수사가 전화를 받았고, 곧 원장 수사에게 급히 달려갔다.
원장 수사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곧 외투를 걸쳤다. 오래된 수도자들은 급할수록 말이 적었다.
“차를 준비하게.”
그것뿐이었다.
이현이 소식을 들은 것은 경찰서에서였다.
강 형사가 서류를 넘기고 있을 때, 젊은 형사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낮게 말했다.
“해원 비탈길 사고 난 거… 최서하 맞답니다.”
강 형사의 손이 잠깐 멈췄다.
이현은 그 말을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사람의 머리는 너무 큰 불행을 들었을 때 바로 뜻으로 바꾸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소리로만 들리고, 뜻은 한참 뒤에 도착했다.
“뭐라고 했습니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교통사고랍니다. 음주운전. 지금 성심병원으로…”
그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이현은 의자를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강 형사는 한순간 그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아야 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전에, 사람 하나의 얼굴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이현은 거의 뛰다시피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 복도는 환했고, 사람들은 바빴고, 간이 의자에는 이미 지친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 평범한 응급실 한가운데 자기 동생의 죽음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최서하 환자 보호자분이십니까.”
간호사가 물었다.
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이 열렸으나 목소리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형입니다.”
한참 만에야 겨우 말했다.
간호사는 짧게 설명했다. 머리 쪽 손상이 크고, 출혈이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지켜봐야 한다는 말.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고, 상태가 급변할 수도 있다는 말. 의학의 말은 늘 정확하지만, 그 정확함이 사람을 위로해 주지는 못했다.
이현은 유리창 너머 응급 처치실 안을 보았다.
서하가 누워 있었다.
얼굴은 피에 젖어 있었고,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었으며, 몸은 여러 줄의 선에 붙들려 있었다. 오후에 자기 앞에 서 있던 그 동생이 몇 시간 만에 저렇게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낮에 들은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고, 이제 그 말을 한 사람이 저 안에 있었다.
형이 형 몫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곁에 내가 없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 문장이 유리창 안쪽에서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이현은 유리벽에 손을 대려다가 멈췄다.
손끝이 떨렸다.
원장 수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현은 복도 끝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보았다. 늙은 수도자와 젊은 죄인 사이에 무슨 말이 먼저 오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원장 수사가 먼저 물었다.
“의사는 뭐라 하더냐.”
이현은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대답했다.
“아직… 모른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응급실 안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복도 한쪽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사람 하나가 살아남느냐, 죽느냐를 기다리는 시간은 시계의 시간과 늘 달랐다.
조금 뒤, 이현이 아주 낮게 말했다.
“제 탓입니다.”
원장 수사는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말했다.
“지금은 그 말도 너무 이르다.”
이현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제가 그를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원장 수사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다.”
그 말은 희망이라기보다 명령에 가까웠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 동안은, 살아 있는 쪽으로 먼저 마음을 두라는 명령.
그 시각 진주 요양병원 402호에서는 소피아가 잠들어 있지 않았다.
간병인은 약을 먹이고 불을 줄였지만, 소피아는 좀처럼 눈을 감지 못했다. 어떤 밤은 몸보다 먼저 기억이 깨어나기도 하였다.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본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입술이 마른 흙처럼 갈라져 있었고, 눈가에는 오래 닦이지 않은 눈물자국이 엉겨 있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소피아는 문을 바라보았다.
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열어 주지 않을 문이었다. 그런데도 사람은 끝내 문 쪽을 보게 된다. 오래전부터 그러하였다. 살아 있는 동안 제일 많이 바라본 것이 하늘보다 문짝이었을지도 몰랐다. 열리는 문, 닫히는 문, 끝내 자기를 위해서는 열리지 않았던 문.
그녀의 입술이 아주 조금 달싹였다.
“서하…”
그 이름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 방 안에 흩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응급실의 소음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대신 사람들의 기다림은 더 짙어졌다. 누군가는 벽에 기대 졸았고, 누군가는 자판기 종이컵을 손에 든 채 식은 커피를 마셨고, 누군가는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그런 밤의 병원에는 묘한 평등이 있었다. 돈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다들 흰 문 하나 앞에서 같은 얼굴이 되었다.
수술은 길지 않았으나, 결과도 길게 설명되지 않았다.
의사는 마스크를 벗으며 복도에 나왔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나 예후가 좋지 않다는 식의 말을, 의사들이 늘 하듯 최대한 덜 잔인한 언어로 전했다. 의학의 말은 사람을 위로하기보다,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는 말에 가까웠다.
서하는 중환자실 쪽으로 옮겨졌다.
완전히 의식을 찾지는 못했으나, 아주 잠깐 눈을 떴다는 말이 있었다. 원장 수사와 이현은 번갈아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기다림은 점점 길어졌고, 말은 줄어들었다.
새벽 가까운 시각, 간호사가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얼굴이 더 굳어 있었다.
“보호자분…”
그 한마디면 충분하였다.
이현은 처음에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 사람은 울지도 무너지지도 못하고 잠깐 돌처럼 굳는 법이었다.
원장 수사가 먼저 눈을 감았다.
서하는 그렇게, 새벽이 오기 직전 숨을 거두었다.
세상은 아직 어두웠고, 먼 데서 새 한 마리가 먼저 울었다.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었고, 볕은 내일도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해질 터였다. 그러나 그 따뜻함이 닿지 못하는 자리도 세상에는 있었다. 사람이 죽는 자리는 늘 그런 자리였다.
이현은 끝내 벽을 짚고 주저앉았다.
울음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울음보다 먼저, 오래전 닫혔던 문 하나가 안쪽에서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머니를 향해 한 번 닫혔던 문, 그리고 오늘 서하를 향해 또 한 번 늦었던 자기 마음의 문. 그 문이 이제야 제 무게를 다 드러내며 쓰러지는 것 같았다.
원장 수사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긴 말은 하지 않았다.
말이 사람을 건져 올리지 못하는 밤도 있었다.
그날 밤 병원의 복도에는, 아주 낮게 레퀴엠이 울리는 것 같았다.
누가 틀어 놓은 음악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울음과 기계음, 문 여닫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마치 죽은 이를 위한 느린 성가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성가는, 산 사람들 각자의 죄 위로도 함께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