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부활: 상처를 통해 흘러나오는 생명의 자비

by 진동길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온 평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의 기쁨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머물고 있는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죄책감, 언제 붙잡힐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닫힌 문을 뚫고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책망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 짧은 인사 안에,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 할 '하느님의 자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머리로 이해하는 단순한 용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오장육부를 흔들고, 닫힌 문을 부수며 들어오는 강렬하고도 끈질긴 사랑입니다.




라하밈(Rahamim, רחמים)과 헤세드(Hesed, חֶסֶד): 포기할 수 없는 어머니의 태, 꺾이지 않는 약속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할 때, 히브리어로 '라하밈'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말은 본래 '어머니의 자궁'을 뜻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배신감보다 먼저, 길 잃은 자식들을 향한 '라하밈'이 끓어오르셨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열 달 동안 품어 낳은 자식을 결코 포기할 수 없듯, 예수님은 죄책감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당신의 태중으로 다시 품어 안으시며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또한, 구약의 자비는 '헤세드'입니다. 이는 '포기하지 않는 언약의 자비'입니다. 라하밈이 감정적이고 본성적인 자비라면, 헤세드는 '의지적이고 결단하는 자비'입니다.


상대방이 자격이 없거나 심지어 배신을 하더라도, 하느님 편에서 맺으신 언약(약속)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책임을 지시는 신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쳐내도 끈질기게 다가오는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토마스 사도처럼 의심하며, 때로는 주님을 외면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듯 요동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헤세드)는 우리의 나약함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한 번 사랑하시기로 맹세하셨기에, 끝까지 책임지시고 끈질기게 다가오시는 결단입니다. 의심하는 토마스를 내치지 않으시고,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오신 그 발걸음이 바로 '헤세드'의 자비입니다.




스플랑크니조마이(Splanchnizomai, σπλαγχνίζομαι)와 엘레오스(Eleos, ἔλεος):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다가오시다


예수님은 당신을 의심하는 토마스에게 다가가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요한 20,27)


주님은 왜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에 끔찍한 십자가의 상처를 그대로 남겨두셨을까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군중의 아픔을 보시고 느끼셨던 자비를 희랍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라고 합니다. 이는 '창자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과 비참함을 먼 발치서 동정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심장과 내장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손과 발, 옆구리의 상처는 바로 우리를 향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감수하신 '스플랑크니조마이'의 흔적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비참함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동하는 자비, '엘레오스'(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를 향한 '불쌍히 여김')입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키리에 엘레이손)"라고 외치는 것은, 바로 그 상처 입은 손으로 나의 닫힌 문을 열고 들어와 이 비참함 속에서 나를 건져달라는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부활: 자비를 입은 자, 자비를 베푸는 자로 일어섬.


형제 자매 여러분, 토마스는 예수님의 상처를 만지며 자신의 모든 교만과 불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고백합니다.


상처를 향해 뻗었던 토마스의 손은,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의 끝없는 자비에 붙잡히는 손이 되었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내며, 우리도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엽시다. 두려움, 죄책감, 상처와 미움으로 잠가둔 그 방에 부활하신 주님을 모셔 들입시다.


어머니의 자궁(라하밈)처럼 따뜻하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헤세드), 당신의 살이 찢기는 아픔(스플랑크니조마이)으로 우리를 건져내시는(엘레오스) 그분의 상처 안에 우리의 아픔을 봉헌합시다.


그리고 그 크신 자비를 체험한 우리는,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 서로에게 자비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 준 이를 용서하고,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연민으로 다가설 때, 부활하신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를 통해 세상에 흘러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여기, 각자 우리 삶의 자리에서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내 자비 안에 머물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