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 십자가의 시간 속에 숨겨진 하느님의 크신 사랑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크신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거센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성실히 살아보려 애썼지만 일이 한없이 꼬여만 갈 때, 육신의 질병이 찾아와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혹은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 홀로 남겨져 마치 캄캄한 담벼락 안에 갇힌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가장 어둡고 아픈 순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두려운 질문이 피어오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치시는 건가? 내가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지금 그 죗값을 치르며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칭찬과 처벌, 성공과 실패라는 세상의 잣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하느님과의 관계도 이 세상의 논리로 측량하려 듭니다. 삶이 평탄하면 복을 받았다 기뻐하고, 삶에 시련이 닥치면 하느님께서 나를 단죄하신다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하지만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하고 두렵게 만드는 그 거짓된 목소리를 거두어내고자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을 헤아려 벌을 내리는 차가운 심판관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가 겪는 시련은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의 이끄심'입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며 무거운 짐을 들고 나면, 다음 날 온몸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느끼며 "나를 망가뜨리려 한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통증이 내 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임을 알기에 기꺼이 감내합니다.
우리의 영적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삶의 시련, 굳게 닫힌 관계의 단절, 경제적인 압박과 육신의 아픔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미워해서 내리시는 형벌이 아닙니다. 세상에 의지하던 나약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굳게 신뢰하도록 영적인 체질을 바꾸어 주시는 거룩한 '성화의 과정'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모든 자녀가 다 받는 징계(파이데이아, παιδεία)를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아지 친자식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의 원어에서 ‘파이데이아’라는 이 단어는 누군가를 때리거나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린아이를 인격(인격·도덕·지성 전체)적으로 양육하고 돌보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훌륭한 스승은 제자가 악기를 연주하다 틀린 음을 내면, 연주를 멈추게 하고 손 모양을 교정해 줍니다. 그 순간 제자는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 불편한 교정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마침내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십자가 시간을 통해 우리를 아름다운 주님의 자녀로 빚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내 삶에 하느님의 간섭이 있고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가장 확실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둘째, 하느님께서는 결코 아픔을 도구로 우리를 벌하시지 않습니다.
가끔 "하느님께서 나를 겸손하게 하시려고 일부러 이 병을 주셨구나"라며 두려움에 떠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형벌을 내리시기 위해 시련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죄의 무게와 상처를 온몸으로 대신 안으셨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를 옭아매던 모든 굴레와 죄악의 사슬은 끊어졌고, 우리는 구원의 은총으로 온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아픔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한계이거나, 피할 수 없는 삶의 풍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벌어진 그 캄캄한 절망의 상황 속으로 친히 들어오십니다. 마치 차가운 감옥에 갇힌 이들을 잊지 않고 찾아가 위로를 전하듯, 주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어둡고 단절된 십자가의 시간 속으로 다가오시어 우리를 품어주시고, 그 아픔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셋째, 흔들리지 않는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아이가 처음 글씨 쓰기를 배울 때, 엄마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자신의 큰 손으로 덮어 쥐고 함께 글씨를 써 내려갑니다. 아이는 마음대로 손을 움직일 수 없어 답답해하지만, 엄마가 그 손을 꽉 쥐고 놓지 않는 이유는 훗날 아이가 자유롭게 자신의 세상을 펼쳐가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꽉 붙들고 계신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거짓된 평화가 아닌 흔들리지 않는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환경이 좋으면 기뻐하고 나빠지면 절망하는 것은 감정의 반응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돌보심을 통과한 영혼은 다릅니다.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내면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가 솟아오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화'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거룩한 성화의 과정을 은총으로 채우기 위해 두 가지를 실천합시다.
첫째, 내 입술의 언어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바꾸십시오.
절망이 덮쳐오고 스스로를 향한 단죄하고자 하는 마음이 차오를 때, 요동치는 감정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파도를 보지 말고, 영원한 말씀에 닻을 내리십시오. 내 죄가 나를 짓누를 때 "나는 단죄받지 않는다!"라고 선포하십시오. 두려움이 덮칠 때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을 소리 내어 기도하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소리 내어 말씀을 선포할 때, 어둠의 유혹은 더 이상 우리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작은 순종의 열쇠'를 꺼내어 드십시오.
꽉 막힌 절망의 문을 여는 열쇠는 거창한 희생이 아닙니다. 불안으로 밤잠을 설칠 때 단 1분만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대는 것, 억울함이 밀려올 때 시편 42편 6절을 펴서 "내 영혼아, 어찌하여 허물어지며 내 안에서 신음하는가? 하느님께 바라라."라고 소리 내어 읽는 것. 이 작은 순종의 몸짓 하나가 우리를 옭아매려던 악의 세력을 허물어뜨립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삶의 시련은 하느님의 벌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더 넓고 맑게 빚어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애틋한 돌보심이자 이끄심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시간이 다가올 때 두려워 숨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십자가를 친히 지셨던 주님의 품으로 더 깊이, 더 뜨겁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아픔의 시간 끝에는 반드시 찬란한 부활의 영광과 의로움의 열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떠한 십자가 앞에서도 나를 빚어내시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을 신뢰하며 참된 평화를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