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수사 마리오

성모님의 마음

by 진동길

한 밤중. 대침묵 시간에 묵주기도를 바치던 꼬마 수사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식당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밤중에 누구지? 고양이들인가?”

길고양이가 가끔 주방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데니스 수사였다. 내일 아침 식사 당번이라서 미리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은 떡볶이구나.’ 주방 입구에서부터 맛있는 떡볶이 냄새가 꼬마 수사의 코를 자극했다. ‘딱 하나만 맛보고 싶다. 데니스 수사님한테 딱 하나만 달라고 청해볼까?’라는 유혹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침묵 시간이고 형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자기만 혼자 몰래 먹게 해달라고 청할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마음을 돌린 꼬마 수사는 다시 자기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마리오…”하고 데니스 수사가 낮은 목소리와 손짓으로 꼬마 수사를 불렀다. 꼬마 수사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네… 수사님…”

“이리 와봐… 떡볶이를 했는데… 간이 잘 맞는지 한 번 먹어봐…”

꼬마 수사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어느새 꼬마 수사는 식당 식탁에 앉아있었고 데니스 수사는 꼬마 수사를 위해 떡볶이 한 그릇을 내어왔다. 그리고 꼬마 수사가 떡볶이를 먹는 동안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맛있게 먹고 있는 꼬마 수사를 엄마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눈 깜짝할 새 그릇이 비워졌다.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꼬마 수사가 빙긋이 웃으며 배를 퉁퉁 쳤다. 그제야 꼬마 수사는 묵주기도를 바치던 중 내내 떠나지 않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수사님! 근데요. 저에게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시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은총을 받고 싶은데…”


“기적 같은 거요… 아주 큰 기적은 아니지만 좀 특별한 기적 같은 거요… 사실 아까 묵주기도 할 때도 하느님께 원망을 많이 했어요… ‘하느님 저는 왜? 아무리 묵주기도를 바쳐도 성모님의 손길과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요?’ 이렇게요. 수사님! 성모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마리오가 생각하는 성모님의 손길과 마음은 어떨 것 같아?” 엄마의 사랑과 정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꼬마 수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데니스 수사는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아… 주 아주아주 많이. 특별할 것 같아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시니까요.”

“오… 그렇구나. 그런데 마리오가 생각하는 성모님은 수사님이 만나고 알고 있는 성모님과는 조금 다른 분이신 것 같은데…”


“그래요? 수사님이 만난 성모님은 어떤 분이세요? 저도 알고 싶어요.” 꼬마 수사가 호기심에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데니스 수사의 눈을 바라봤다.


“성모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체험들과 이야기들은 아주 많은데…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옳지 이런 이야기가 있어… 연탄길이라는 책에 나온 ‘아빠의 생일’이라는 이야기인데… 잘 들어봐…”


### 아빠의 생일 ###


완섭 씨는 순대국밥 집을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아침 햇살이 높아져만 갈 때 여덟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눈에 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를 맞아 땀과 뒤섞인 쾌쾌한 냄새는 완섭 씨의 코를 찔렀습니다. 완섭 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습니다.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


아이는 아무 말없이 앞을 보지 못하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구걸이 아니라 식사를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싫고, 또 돈을 받을 확신도 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는 것이 왠지 꺼림칙했습니다.


“저어, 아저씨! 순댓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볼래.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자리라서 말이야.”


아이는 주인의 말에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지면서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주머니에서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습니다.


“알았다. 그럼 최대한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말이다, 아빠하고 저쪽 끝으로 가서 앉거라. 여긴 다른 손님들이 와서 앉을 자리니까.”


“예.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이는 아빠를 데리고 화장실이 바로 보이는 맨 끝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잠시 후 완섭 씨는 순댓국을 두 그릇 갖다 주고, 계산대에 앉아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아이는 아빠에게 소금을 넣어주겠다고 하면서 자기 국밥 속에 있는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주었습니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응, 알았어. 순영이 너도 어서 먹어라. 어제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나만 못 먹었나 뭐.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어. 어서 밥 떠, 아빠. 내가 김치 올려 줄게.”


아빠는 조금씩 떨면서 국밥 한 수저를 떠서 들었습니다. 아빠의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음식을 다 먹을 때쯤 완섭 씨의 마음도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밥을 다 먹은 아이가 돈 사천 원과 동전을 꺼내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그럴 필요 없다. 식사 값은 이천 원이면 되거든. 아침이라 재료가 준비되지 않아서 국밥 속에 넣어야 할 게 많이 빠졌어. 그러니 음식 값을 다 받을 수 없잖니?”


완섭 씨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천 원짜리 두 장을 다시 건네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다. 아까는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완섭 씨는 출입문을 나서는 아이의 주머니에 사탕 한 움큼을 넣어주었습니다. 좋아서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완섭 씨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완섭 씨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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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수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꼬마 수사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꼬마 수사의 눈에서 기어이 닭 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데니스 수사는 말없이 꼬마 수사의 안아줬다. 그리고 물었다.


“이 이야기에서 성모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은 누구일까?”


“모두 다 성모님의 마음을 닮은 것 같아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모두…”


“그렇지! 그래… 사람의 영혼과 마음은 원래 하느님 것이었기 때문에 성모님의 마음도 우리 이웃들의 마음도 그리고 마리오의 마음도 하느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 하느님의 마음은 본래 따뜻하고 온화하고 순수하고 아름답단다… 그러니까 성모님의 마음과 손길을 느끼기 위해서 특별한 기적을 청할 필요는 없어. 마리오의 마음이 늘 하느님과 성모님을 향하고 있다면 마리오의 마음이 성모님의 마음이야. 그렇게 되면 이웃들도 마리오의 마음을 보면서 성모님의 마음을 알고 느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