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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Sep 20. 2019

한달살기, 짐으로 뭘 싸지?

아무것도 안 챙겨도 돼? 한달살기 시작

오늘은 첫째 아이 방학식이다. 1학년인 첫째 아이네 반은 방학식 후 반전체 키즈카페에 가기로 했다.     

둘째는 아직 유치원 생이라 진작에 방학을 하고 집에 있었다. 오후에 방송국에서 생활정보 관련해서 잠시 촬영하러 집에 오기로 되어 있어 첫째만 키즈카페에 보냈다.     

첫째는 키즈카페 갔다가 친구 집에 가서 더 놀다 와서 저녁 늦게야 집에 오고, 둘째는 방송국 촬영으로 피곤해 내일 출발인 한달살기 짐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사실, 한 달 동안 뭘 할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계획이 없어서 그런지 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없기도 했다.  엄마도 한 달 여행이 처음이기에 무엇을 챙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보통의 여행처럼, 여권과 돈, 빨아 입을 예정이니 일주일치 정도의 옷과 수영복, 비상약 정도만 챙기면 될 것 같다.


그 외 무엇을 챙겨야 할지, 추가적으로 챙겨야 할 것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지만,  챙기지 않을 것은 확실히 정했다. 공부 거리는 하나도 안 가져갈 것이다. 일기의 특성상 어쩔 수 없어 일기만 챙길 것이다.

도도 자매는 한글이나 수학 등 학습지란 종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아직 아무 학원도 보내지 않지만, 이번 한달살이 방향이  "해야 한다", "해야 할 일" 등 시간적, 정신적 강박감을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바람 느끼기’ 등 철저히 놀고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인 만큼, 이를 위해 더더욱 공부할 것은 아예 안 챙길 것이다.     

맘 편히 한 달 동안 놀기 위해, 방학숙제도 이미 다 했다.

방학숙제가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다 해놓으니 맘이 편하다. 아직 짐을 아무것도 안 챙겼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은 자고, 내일 오후 2;20 비행기이니, 내일 아침 일어나 짐 챙겨야지.

홀가분하게 낯선 곳으로 떠나요~

   

  드디어, 한달살이 출발하는 날이다.

  

오늘 새벽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큰 캐리어 두 개를 꺼냈는데, 텅 비어있다. 텅 빈 캐리어를 보고 있으니, 뭔가 더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여권과 돈, 옷과 수영복을 챙기고 나니, 그 외 더 이상 뭘 챙겨야 할지 딱히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호텔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을 빌리는 것이니, 수건이나 휴지가 충분할지 걱정됐다. 그래서 휴지와 수건을 챙겼다.

  

옆에서 내가 짐을 싸는 것을 지켜보던 남편, 언제 사 두었는지, 조용히 나의 짐 안에, 쌀, 김, 누룽지, 라면, 1회용 위생봉투, 헤어 컨디셔너 등을 넣어준다.


"잘 먹으려고 가는 여행도 아니고, 부담 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느끼고 올 거야. 그리고 한 달인데 굳이 우리나라 맛을 찾을까? 그러니 김치나 라면,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챙겨주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혹시 모르니 하나씩만 가져가라고 한다. 많이 가져가면 스스로에게 부담을 잘 지우는 내 성격에, 다 먹고 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압박할 것 같다. 하지만, 걱정하며 미리 사다둔 남편의 성의를 받아, 김치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출발하기 전에 가져가기로 하고, 종류별로 한 개씩만 가방에 넣었다. 깻잎 통조림 1개, 장조림 통조림 1개, 볶음 김치 1개, 그리고 짜장라면, 국물라면, 볶음라면, 비빔라면 한 개씩 넣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살짝 두렵기도 하지만,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설렘이 더 크다. 아이들도 '여행'간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워 보인다. 이대로 쭉 즐거울 수 있겠지?


한 달 살기 숙박을 예약하고부터,  해야 할 일을 정하진 않았으니 구체적 모습이 그려지기보다 막연한 생각뿐이지만,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은 조금 다를 거라고 얘기해줬다. 무엇보다 아빠가 없으니 엄마를 많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도도 자매는 "우리가 잘할게."라고 야무진 의지를 보이며,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공항철도를 탔다.

사실 아이들이 자신들 몸집의 2/3만 한 커다란 캐리어를 끄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이 어설퍼 보이기도 하고, 빨리 움직이고 싶기로 해서, 캐리어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도도자매, 자신 만만한 표정을 보이며, 안 준다.  


 워... 워... 워...

 

평소 같았으면, 뺏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크게 심호흡하고, 아이들을 보니, 표정에서 '나 엄마 도와주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란 사람, 정말 엄마가 되기에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달살기 시작하는 벌써부터 조급함과 합리성을 들어 개입하려 하다니!!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늦더라도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조금씩 조금씩 내려놓고, 한걸음 한걸음 물러나 아이들을 지켜봐 주고, 아이들의 모습을 인정해 주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기에 약간은 서툴고, 버거워 보이지만, 스스로 끌며, 엄마를 도와주고 있음에 뿌듯해할 아이들의 마음을 짓밟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은 엄마가 되기에 한 참 부족하다. 아이들이 엄마를 생각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기특해하며, 감사해야지.


여유를 갖고자 노력하겠다고 이번 한달살기의 마음을 다짐하며, 공항에 도착했다.


남편이 두고 온 물건이 없는지 물어봤다.

“없어.”라고 건성으로 말하니 남편, 하나하나 또 친절하게 확인시켜 준다. 김치, 김치를 놓고 왔다. 남편이 냉장고에서 마지막에 꺼내서 챙기라고 했는데, 두고 왔다.


'고작 한 달인데, 그 기간 동안 김치 먹고 싶을까' 싶어, 없어도 '괜찮다'며 편의점에서라도 사자는 남편의 제안을 만류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혹시 모르니 조금이라고 가져가란다. 남으면 어떡하냐고 불평하는 나를 위해 편의점에서 10개로 낱개 포장된 김치 팩을 사 왔다. 나중에 정말 너무 고마운 일이 될 줄도 모르고 남편이 사준 김치를 투덜투덜 캐리어에 챙겨 드디어 출발했다.     


하루하루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만큼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막연함 기대감이 컸다.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두 발을 디디니, 비로소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이 곳, 싱가포르에 아이들과 나, 이렇게 셋이서 한 달을 보내는 것이 이제 현실로 느껴진다. 나 혼자 어른이라는 사실에 갑자기 막막한 책임감이 밀려온다. 원래 저녁 7:40 도착 예정이었으나, 8:20에 도착해, 바깥은 정말 캄캄했다.

혼자 어른이다. 내가 안전하게 두 아이들을 데리고 빨리 안전하게 숙소로 데려가야 한다.

  

캄캄한 바깥 모습에 조급해지고, 더욱 긴장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를 보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태연한 척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뭐부터 해야 하지?

우선, 지도를 보려면 인터넷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심카드를 먼저 사야 한다.

오기 전 어떤 유심카드를 살 건지 고민하고 고민해 골라뒀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여러 번 확인해 보았으나, 어딘지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무작정 직진,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찾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니 무작정 헤맬 수는 없다. 그랬다간 공항에서 나가기도 전에 아이들은 지쳐 완전 쓰러질 것이다. 외국인만 보면 말 시킬까 봐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 던 나지만, 엄마니까, 아이들을 돌봐줄 울타리가 돼야 하니까, 큰 용기 내어 보이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공항 내 멀지도 않은 유심카드 사는 곳을 찾아 가는데, 세 번은 물어본 것 같다.

유심을 구매했더니 직원이 내 휴대폰의 유심 교체를 알아서 해줬다. 너무나 간단히 유심칩을 바꿔 끼워 주며 바로 사용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불안하여 직원에게 “진짜 바로 사용 가능해?”를 수차례 물어본 것 같다.

내가 확인한 방법으로는 무슨 플랜을 구입해야 사용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은 일단 그냥 쓰고, 플랜 구입은 나중에 하면 된다고 한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똑같은 말로 여러 번 물어봤더니, 직원도 계속 “다 된 거야”라고, 같은 말만 반복한다. 의심스러워도 달리 방법도 없고, 내 옆에서 나만 바라보며 서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유심 설명서를 나중에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고, 일단 아이들과 공항을 나가야겠다.


다음으로 교통카드를 구매했다. 만 6세까지 미취학 아동은 무료라 둘째 것을 빼고, 첫째 것과 내 것, 이렇게 어른용으로 두 개 샀다.     

유심카드 구매와 교통카드 구매를 위해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교과서 영어를 입으로 내뱉으려고 너무 노력했는지, 벌써 어지럽고, 지친다. 교통카드 충전도 해야 하는데 것까지 할 힘이 없다. 원래 계획은 MRT 타고 가려고, 공항에서 숙소 가는 길을 찾아 두었는데, 택시 승강장을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웠다. 첫날부터 예상에 없던 예산을 쓰는 것에 잠깐 망설였지만 그곳에 서 있는 직원이 나의 간절하고 절박한 눈빛을 본 것 같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택시를 탔다.    


누가 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부담감을 느끼며 당황해 벌써 지친 엄마와 달리 아이들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잘 좇아 왔다. 오히려 아이들은 택시를 탄 것에 들떠있다. 아이들이 상황을 모르면 떼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아기 때부터 오늘의 계획, 일정들을 늘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 공항에서 숙소에 들어가는 방법도 미리 전철 타고 간다고 설명해줬다. 아이들은 택시를 탈거라 기대로 안 했다가 타게 돼서 그런지 눈이 휘둥그래 지며 좋아한다.     

택시 기사분께 호텔 주소를 알려줬으니,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내 할 일은 당분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아까 유심칩 구매 후 찜찜했던 부분을 확인하려고 설명서를 읽었다. 아이들도 택시를 탔으니 어떻게 가야 할지 살펴보지 않아도 되고, 안심이 되는지 밝아진다. 그동안 엄마처럼 다소 긴장해서 조용했었나 보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밝은 모습은 좋은 데, 둘이서 장난치며 좀 티격태격한다. 아이들이 내는 첫 소음인데, 어두운 택시 안에서 내가 익숙지 않은 영어를 집중해서 읽다 보니, 작은 소음도 거슬렸다. 그만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버렸다.    


“엄마는 혼자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너희는 서로 챙겨주지 못하고, 그새 말다툼하고 있니?”    


이런...!

내가 유심칩 산다고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갈 때 조용히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잘 좇아와준 기특한 아이들에게... 나의 부족함 때문에 또 화를 냈다.   


결국 아이들에게 첫날부터 화를 냈다.



너무 미안하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나란 사람은 왜 이모양인지.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문제다. 내일부터 조금 더 여유를 가져야겠다.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 뒤이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왔다.

체크인하며 내일 아침 조식 식당 위치를 물어봤다. 그런데 직원이  “우리 호텔은 식당이 없어”

내가 잘 못 알아들었나...? “조식 예약했는데, 돈도 지불하고.”

내가 예약한 내역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자, 그제야 내일 아침, 아침 식사가 준비되면 전화 주겠다고 한다. 전화 주면 그냥 로비로 내려오면 된다고 한다. 식당 없다며...뭔가 이상하지만, 준비를 안 한 만큼 갑자기 닥친 긴장감에 벌써 아이들에게 한 번 버럭 화도 내고, 지쳤다.


조용한 우리만의 공간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고 열쇠를 받아 들었다. 열쇠를 받아 들고나서, 아이들을 봤다.

내가 몇십 분째 체크인에 집중하는 동안, 두 아이는 많은 사람들로 복잡해진 로비에서 야무지게 캐리어를 잘 지키고 있었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두 아이가 캐리어를 잡고 가만히 내 뒤만 바로 봤을 아이들을 보니 택시 안에서 아이들에게 화를 낸 것이 더욱 반성이 됐다.    


  이렇게 엄마를 잘 챙겨주는 기특하고 야무진 만 6살, 7살이 어디 있다고.

  정말, 엄마인 내가 문제다.

  내가 몰라서 답답했던 것을 아이들에게 화를 낸 것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된다.     


아빠 없이 낯 선 곳에서 한 달 보내는 것에 출발하기 전까지 별 걱정을 안 했다. 오히려 막연한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도착하니, 막연한 기대감이 막연한 책임감으로 짓누르는 듯했다. 호텔 방에 들어와 우두커니 서서 엄마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빨리 샤워하고 자라고 다그쳐 억지로 잠든 아이들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어쩌자고, 이 어린아이들만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이 낯선 곳에 왔니.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매일 같이 고맙다는 말은 안 하고 싫은 소리만 해댄 남편도 너무 보고 싶다. 짐 챙기는 마지막까지 필요 없는 데 챙긴다고 온갖 구박을 당하면서도 일회용 장갑을 넣어주며 살뜰하게 챙겨준 남편이 너무너무 그립다. 떨어져 있으니 그 소중함을 새삼 알겠다.    


낯선 곳에 의지할 어른이 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로 닥치니... 괜스레 어깨가 무겁게 느껴져 아이들에게 버럭 화내고 말았다.


내일은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 계획이 없다. 내일은 한 걸음 성숙한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지내길 기대해 본다.

엄마, 캐리어 제가 잘 지키고 있어요/엄마, 저는 아빠에게 잘 도착했다고 문자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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