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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Sep 23. 2019

한달살기, 진짜 엄마가 되고 싶다!

호기롭게 시작한 한달살기, 첫 번째 이삿날

어제 싱가포르에 도착했으니, 날짜상으로는 한달살기 이틀째이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직원의 "아침식사 준비됐어."라는 전화를 받고 로비로 내려갔다.

우리의 아침은...

로비에 내려가니 직원이 아침이라며, 봉지 꾸러미를 나에게 내밀었다.


어젯밤, 체크인할 때 식당이 없다고 말한 직원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난 호텔을 예약할 때 조식을 체크해서 예약했고, 조식비까지 이미 지불했다. 조식이 포함된 호텔 예약 바우처를 보여주자, 직원은 "알았어. 내일 아침 전화하면 아침 식사하러 내려와"라고 했다.

나에게 건넨 노란색 봉지 꾸러미는, 직원들이 조식 비용을 낸 나를 위해 준비해준 아침식사이다.


다소 부당해 보이는 봉지에 당황스럽고 울컥했지만, 나는 아이들 엄마니까.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 봉지를 들고 먹을 곳을 물어봤다. 건물 밖, 뒷마당을 가리킨다. 씩씩하게 아이들 데리고 유리문을 열고 뒷마당을 나갔다. 테이블과 의자가 몇 개 놓여있다. 이곳은 숙박 손님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직원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는 듯했다. 몇몇 직원들이 담소를 나누다 낯선 우리가 문을 열고 나오니, 그들도 당황한 듯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좋아한다며 몇 마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우리에게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지나간 길을 눈으로 좇으니, 그곳에는 쓰레기를 배출하는 곳이 있었다.    

건물 밖 뒷마당에는 노란색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나와, 아이들 셋이 있다.


이제, 나와 아이들, 셋만 덩그러니 싱가포르에 진짜 있구나!

    

깊은 생각 없이 호기롭게 저지른 싱가포르 한달살이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오늘은 아직 내 마음이 싱가포르에 온전히 활짝 열리기에는 좀 무리인 시간인 것 같다.

쓰레기를 배출하는 호텔 뒷마당에서 나 홀로 테이블 위 의자를 내리고 봉지에서 음식을 풀어 내놓았다.


플라스틱 일회용 포장지에 담겨 있는 현지 음식이 ‘너무 만만하게 봤어. 앞으로 각오해’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몸과 맘이 더 긴장돼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면 아이들이 더 낯설어하고 마음을 열지 않을까 봐 짐짓 맛있는 척 먹기 시작했다. 이미 낸 조식비가 아까워 도시락 하나를 꾸역꾸역 다 먹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앞으로 남은 30일도 억울하지만 하소연 못하고 이렇게 낯선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과 약간의 서러움까지 더해 더 이상 음식이 넘어가진 않는다. 더 이상 먹으면 체할 것 같았기에, 기름진 두 번째 도시락은 그대로 남겼다.

웬만해선 음식을 거의 남기는 일 없고, 아이들에게 늘 밥 한 톨도 소중한 줄 알고 먹으라고 강조하지만, 이 상황에서 강요하면 괜히 앞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더 반감이 생길 것 같아, 아이들에게는 도시락을 먹이지 않았다. 대신 어제 비행기에서 받은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게 했다.


다행인 것은 여기 호텔은 하룻밤 우리를 재워준 곳일 뿐이다. 이곳에서 맞이한 아침 기분을 빨리 떨쳐버리고 싶었다. 우리는 앞으로 겪어보지 않은 30일에 대해 호기심과 설렘, 그리고 여유를 발검음에 담아, 아이들과 동네 구경 겸 오후에 이사할 집을 찾아 나섰다.


어제는 밤에 늦게 택시 타고 와서 들어오면서 보지 못했는데, 호텔 앞에 나오니 시멘트 도로부터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도로 위에 나와 있는 짙은 노랑 발의 검은색 새도 신기했다. 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민 아기처럼, 아이들과 지도를 보면 걸어가는 길의 모습 하나하나,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인적 없는 골목길을 지나 다른 도로와 맞닿는 곳에 가니 버스 정류장 같아 보이는 곳이 보인다. 어그적 어그적 어설프게 걷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버스 정류장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빤히 바라본다. 우리도 그들의 시선을  여유롭게 바라봐주며, 사람들 속을 지나 이사 갈 집을 찾아갔다.


호텔에서 이사할 집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강한 햇살에 선글라스를 챙겨 썼는데, 주룩주룩 내리는 땀 때문에 코와 귀에 걸려 있는 선글라스도 귀찮은 짐으로 느껴졌다. 우리 셋 모두, 귀찮음보다는 뜨거운 햇살을 선택했다. 얼른 선글라스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아이들은 동네 구경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샌들을 신고 나섰다가 발도 까지고 땀이 멈추지 않고 계속 주룩주룩 흐르니, “왜 이렇게 멀어?”, “얼마나 더 가야 해?”를 반복해서 물어본다. 나도 숨 막힐 정도로 더운 날씨에 더해 아이들의 반복적인 질문으로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 또다시 회의에 빠졌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미 와 있는데, 이만큼 왔고, 또 어차피 다시 캐리어 끌고 와야 하는데 길을 못 찾으면 이따 더 힘들 텐데 끝까지 숙소를 찾는 수밖에.

처음 호텔에서 나설 땐 선글라스도 쓰고, 노란 발의 새도 한참을 좇을 만큼 여유로웠던 표정이, 줄줄 흐르는 땀과 무거운 발로 지쳐있었다.     

 

몇 번의 찻 길을 건너, 한 참을 걷고 걸어, 드디어 찾았다. 여기가 맞나??

요리조리 낯선 형태의 집 주소를 확인했다. “이야! 드디어 찾았다.” 아이들도 나도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집주인이 알려준 메일 박스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한다. 하나라도 놓치면 못 찾게 될까 봐, 괜히 시간 끌어서 아이들 헛고생시킬까 봐, 출발 하루 전 집주인이 보내 준 메모의 글자와 실제 표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찾아갔다.

 

주차장 입구로 보이는 곳을 찾았는데, 그 앞에는 불상도 놓여있고, 두리안 껍질도 가득하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골목이 몹시 어둡다. 잠시 아이들과 얼굴을 쳐다보며 여기로 가는 게 맞는지, 이 길로 꼭 들어서야 할지 망설였다. 다른 길이 없는지 다시 집주인의 메모를 살폈지만, 다른 길은 없는 것 같아 심호흡하고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 보았다.


헉! 이번엔 검은 고양이가 길을 차지하고 우리를 빤히 보며 안 비켜준다.

나는 어려서부터 개, 고양이를 무서워 피해 다녔다. 그리고 최근에는 말한테 물리기까지 했다. 동물에 대한 두려움이 큰 나에게, 아이들이 커다란 고양이를 보고 겁에 질려, “엄마!”하고 달려든다.


나는 심호흡하고, 큰 발을 굴려 고양이에게 겁을 줘본다. 겁먹은 내가 구르는 큰 발이라 그런지, 고양이가 전혀 안 움직인다. '너 뭐 하는 거야?'하고 나의 행동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다.

  

큰 소리까지 내며 동동 거리는 내 모습이 아이들은 무슨 놀이처럼 보였는지 같이 소리 지르며 발을 구른다.

고양이는 귀찮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길을 비켜 준다. 드디어 집주인이 말한 메일박스 앞에 도착했다. 먼지 가득한 메일 박스를 살펴 우리 집 호스를 찾아냈다. 못 찾으면 어떡하나, 혹시 메일박스에 열쇠가 없으면 어떡하나 이런저런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다.

    

어젯밤에 여기를 찾아와 어두운 뒷골목의 메일박스를 열어야 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구하게 된 호텔에서 첫날밤을 자게 된 것에 새삼 감사함이 들었다. 호텔이었기에, 늦은 저녁 도착했음에도 허둥대지 않고 체크인할 수 있었고, 물어볼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호텔에서 하룻밤 묵은 덕분에 캄캄한 밤이 아니라, 밝은 낮에 무사히 이사 올 집을 여유롭게 찾을 수 있었다. 호텔 예약한 것 때문에, 돈을 더 쓰게 됐다고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한 게 미안해졌다.

 

숙소 예약에 오류가 없어서 싱가포르에 도착한 어젯밤, 이곳으로 와야 했다면, 캄캄한 밤에 낯설고 외진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헤매다 지쳤을 것이다.  고양이들 무리를 지나는 것이 무서워, 메일 박스에서 열쇠를 찾아 들어가는 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집을 찾았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집을 찾아올 때는 엄청 멀었는데,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가깝게 느껴진다. 아까 이 길을 지나왔나 싶을 정도로 또 새로운 구경거리들이 눈에 보인다.


MRT역 확인을 하기 위해, 조금 돌아온 아이들의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편의점에서 슬러시를 사줬다. 슬러시 한 모금 빨더니 바로 엄지 척이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우리나라 슬러시보다 더 달달하다.


아이들은 몇 시간을 걸어 까진 발의 고통도 잊은 듯, 달달한 슬러시 한 모금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한 미소를 내게 건넨다.


숙소 체크인은 오후 3시이다. 하지만 이사를 아직 안 한 상태에서 어디를 갔다 오거나 뭔가를 하기에는 애매하고 불안해서, 11시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26인치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아이들과 아까 가보았던 숙소로 향했다. 한국에서 나올 때처럼, 엄마를 도와주겠다며 캐리어 하나씩을 끌고 나섰다. 하지만 울퉁불퉁, 길상태가 좋지 않으니 본인들 몸무게 만한 쌀이 든 캐리어가 잘 끌리지 않는다.

"엄마 저희가 할 수 있어요"라며 야무지게 말한 아이들에게 계속 캐리어를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리 낑낑대며 노력해도 턱이 있는 길을 오르지 못하고 있기에, '길 상태가 좋이 않은 것'을 탓하며, 결국 아이들에게서 캐리어를 건네 받았다. 나 혼자 캐리어 두 개 끌고 몇 키로 떨어져 있는 숙소로 이사했다. 그래도 한 번 와본 길이라고 좀 익숙하다.    

 

아직 정오밖에 안됐다. 체크인까지는 3시간이나 남았지만, 짐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을까 해서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한다. 짐을 놓기 위해 열쇠를 열고 집에 들어갔다.     


와.... 정말 더럽다.     

  

전 게스트가 누구였는지, 집안에 쓰레기가 뒹굴고 있다. 뒷 처리를 하나도 하지 않고, 정말 엉망으로 하고 갔다.  도착하는 첫날, 난 엄마니까 웬만하면 내가 다 치우고 잘 수 있으니 청소 안되어 있어도 제발 묵게만 해달라고 사정했었는데 결국 날짜 사정이 안되어 그렇게 못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계획한 대로 된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계획하지 않았지만 뜻하지 않은 행운들, 오히려 잘 된 일들도 많은 것 같다. 새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너무 속상해하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또 깨닫는다.

얼른 짐만 놓고 나와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기대했던 건물 6층에 있는 수영장을 보러 갔다.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먹다만 컵라면을 들고 허둥지둥 나오는 커다란 배낭을 멘 여행객과 마주쳤다. ‘혹시 저 사람이 우리 집에 방금까지 머물던 사람인가?’

얼룩덜룩 심하게 오염된 배낭과 정리되지 않은 긴 수염 등등 너무나 지저분해 보여, 마주친 건 순간이었지만, 그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우리가 머물 집에 저 사람이 좀 전까지 머물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이런저런 규칙, 부담을 내려놓고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여행이니, 다시 심호흡하고 무던하게 잊어버리기로 했다.


수영장은 6층에 있는 다른 집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6층 이웃이 내놓은 개가 짖는 바람에 또 한 번 기겁했다. 수영장 옆으로 그 개의 똥인지 누구의 똥인지 개똥도 있다. 마침 청소하시는 분이 들어온다. 우리가 나갔다 온 사이, 저 똥도, 우리 집도 깨끗해지길 바라며, 배고파하는 아이들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근처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핸드폰으로 동네 지도를 살펴보았다. 가까운 곳에 현지 푸드코드가 있다. 하지만 벌레와 쓰레기가 뒹굴던 집안의 모습과 수영장의 개똥으로 놀란 상태에서 음식까지 모험을 하기엔 두려움이 크다. 앗싸! 맥도날드다!. 다행히 맛을 예상할 수 있는 맥도날드가 지도에 보인다. 너무 반갑다.

지도를 보며 맥도날드를 찾아 골목골목 지나가는데, 너무나 향긋한 빵 냄새가 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셋이서 작은 빵집에 들어가 빵을 골라 담았다. 너무 맛있다. 가격도 우리나라 빵과 비교해 비싸지 않았다. 뜻밖에 발견한 맛있는 빵집 덕분에 우리 셋은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우리 셋은 앞으로 여기서 자주 사 먹자고 약속했다.

우리에게 맛있는 빵집을 만난 것, 낯선 곳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다.


다시 맥도날드를 찾아가는 길을 나섰다. 싱가포르 오기 전 알아본 동네 공공 도서관도 보인다. 도서관은 점심 먹고 구경하기로 하고, 일단 지나갔다. 조금 더 가니 놀이터 같은 곳이 나타났다. 놀이터처럼 보이는 곳에는, 철줄로 만들어 올라갈 수 있게 만든 피라미드 모양 하나의 구조물만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 참을 놀았다. 몇 번을 오르고 내리고 하고 나서 다시 배고픈 게 생각났는지 맥도날드를 찾아 나섰다.

  

이 근처인 것 같은데 아직 보이지 않는다. 쇼핑카트 같은 것을 끌고 사람들이 간판도 없는 어디론가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들어가는 그곳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따라가 보고 싶었지만, 괜히 헤맬 것 같아서 다시 핸드폰 지도를 보고 맥도날드만 찾았다.     


드디어 맥도날드다!    

이제 주문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랑 메뉴가 다르다. 엄마는 속이 울렁거린다. 누가 봐도 낯설어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당황하지 않은 척 메뉴를 찬찬히 살펴본다. 다행히 우리나라 해피밀 같은 키즈 메뉴가 있다.

울렁거리는 속을 누르며, 천천히 키즈 메뉴 2개를 시켰다. 싱가포르는 아이들 음료수에 초코음료, 마일로가 있다. 직원이 나에게 "마일로?"라고 물어서 "아니"라고 하니 종이팩에 든 음료수를 줬다. 종이팩에 든 주스를 받아 가니, 아이들이 왜 탄산음료가 아니냐고 물어본다.


 “이 나라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탄산음료 안 주나 봐, 대신 초콜릿 우유 같은 마일로 주던데 바꿔줄까?”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다른 아이들이 탄산음료를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몰라 몰라. 오늘은 그냥 먹어.


이번엔 장난감이 맘에 안 든단다. 아... 힘들다.

주문할 때 장난감을 우리나라처럼 친절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장난감을 보여주는 진열장도 없었고, 고르는 번호도 없었다. 그래서 직원이 주는 대로 받아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른 장난감 없냐고 물어보니, 물어볼 수밖에.

 “이 장난감 말고 다른 장난감은 없어요?”

어... 직원이 다른 걸 보여준다. 고를 수 있는 거였구나.

장난감을 바꾸게 되니, 조금은 용기가 난다. 앞으로는 ‘안되면 말고’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일단 물어봐야겠다.

가장 두려웠던 첫 주문을 해냈다.

케첩을 일회용 접시에 따르는 것도, 주문하는 것도 하나하나 생소해 긴장했지만, 하고 나니 별거 아니게 느껴진다.     


나는 평소에 소심한 면이 많다. 작은 일도 고민하고, 기우라고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기 전의 두려움이 더 큰 거 같다. 해보지도 않고 많은 걱정들로 시도하는 것조차 오랜 망설임으로 포기하고,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들 덕분에 망설임보다 도전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처럼, 하고 나면 별거 아닌 일들이 많은데.    


내가 어수선해하며, 얼이 빠져 있는 동안, 아이들은 이미 햄버거를 다 먹고, 장난감을 살피고 있었다. 무사히 주문을 마치고 한 숨 돌리고 나니 이제야, 우리 옆에 앉아 우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계셨던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인사라도 나누고 싶지만, 아직 인사를 건네기엔 내 정신이 없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이미 많은 시도를 했다’고 위로하며, 다음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여유 있게 말을 건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못 본 척했다.

맥도날드에서 나와 근처 마트에 가서 물 등 필요한 물건을 샀다.

첫 생활비 지출이니 필요한 것만 사겠다고 했지만, 엄마가 너무 긴장한 탓에 아이들도 위축되지 않았나 괜히 걱정돼서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이 든 초콜릿 하나씩 사줬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니 나도 좀 더 긴장이 풀린다.

마트에서 나와 허겁지겁 받아 든 거스름돈을 확인하는데, 첫째가 장난감 부품이 없다고 한다.


거스름돈 계산에 버벅거렸던 이유는 내가 싱가포르 돈이 익숙지 않은 것 때문이다. 그런데, 장난감이 없다고 하는 아이 때문인 것처럼, 장난감이 없어 당황해하는 아이에게 “짐 챙기고, 계산하며 정신없어하는 엄마는 안 도와주고 장난감만 보니?”라며 나무랐다. 정말, 나는 엄마가 되기에 갈 길이 멀다.


마트 직원에게 설명서를 보여주며, 어떤 부분이 없는지 설명해 줬다. 직원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새 상품으로 바꿔준다. 직원이 바로 새 상품으로 바꿔주고 나서야, 아이 때문에 당황한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없었던 상황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나의 부족함으로 괜히 아이를 나무란 내가 더 부끄러워졌다.


내가 집에 가서 뜯으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손에 들고 간 장난감을 궁금해하고, 포장을 뜯는 것은 아이들에게 당연한 행동일 수 있다. 본인들은 어린아이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아이들은 엄마한테 한 소리를 들어 오히려 황당했을 것 같다.


오늘도 정말, 아이들 입장이 아닌 내 입장만 생각했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겠지?


오늘을 반성하며, 내일 더 여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길 기대해본다.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엄마였던 적이 없었기에, 아이를 낳고, 아이들 행동을 바라보며 돌보는 하나하나의 과정이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두렵지만, 시도해 보는 것, 처음이라 어설프지만 하나씩 노력하고 배워나가는 것, 이게 엄마가 되는 과정인 것 같다. 내일은 진짜 엄마가 되고 싶다.
둘이 힘을 합쳐 캐리어를 함께 끄는 6살, 7살 도도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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