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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Oct 20. 2019

오늘 우리가 가는 길

마리나베이, 멀라이언 파크 등 11일 차 일상

내일 행복해지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지금 행복해지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오늘 우리 뭐 할까? 어디 갈까?

우리 몸 상태에 맞춰, 우리 기분에 맞춰 그날그날의 일정을 정한다. 우리에게 맞는 곳을 찾으려고 오차드로드 관광안내 센터에서 받은 책자를 샅샅이 뒤지고, 보고 또 봐서 책을 받은 지 열흘도 채 안됐는데 벌써 너덜너덜 해 졌다.


오늘 우리는 돌아다니기로 했다.

대략 일정을 멀라이언파크 - 마리나베이 - 마리나베이 근처 공공 도서관 - 포트캐닝 - 세인트 앤드류 성당 - 국립도서관으로 정했다.


사실 첫 목적지 외에는 목적지가 명확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멀라이언 파크 도착 이후 일정은 아이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가 집을 나선 이유는 우리가 즐겁기 위해서이지,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가다가 힘들면 좀 쉬었다 천천히 갈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싫어한다면 굳이 무리해서 일정을 강행할 생각이 없다. 이런 마음으로 MRT를 타고 래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역에 내렸다.


래플스 플레이스 역에서 나오니 조각품들이 보인다. 조각품들을 구경하고, 본격적으로 멀라이언 파크를 찾아 걸어갔다. 래플스 플레이스 역이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있어 어디가 싱가포르 강 쪽인지 감이 안 온다. 구글 지도에 의지해 찾아갔다. 높은 건물들을 지나서 나오니,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이다. 그래도 우리의 첫 목적지, 멀라이언 파크를 향해 찾아갔다. 예전에 여행 왔을 때는 관광버스가 바로 앞에 내려줬기에 MRT 역에서 내리면 바로 눈앞에 강이 보일 줄 알았다. 우리는 둘러 둘러 큰 찻길도 건너 도착했다. 쉽지 않게 와서 그런지 멀라이언 파크가 있는 싱가포르 강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일 년 반전에 외가댁 식구들과 함께 탔던 세계 최대 규모의 관람차인 ‘싱가포르 플라이어’가 보인다. 이왕 왔으니  다른 관광객들처럼 멀라이언 상, 싱가포르 플라이어 등 기념이 될 만한 배경 앞에서 사진도 찍고 둘러 싶었지만, 아이들은 싱가포르 강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지켜보는 일이 재미있는지 강물 위에 떠 있는 갖가지 쓰레기를 봤다.

"쓰레기가 신기하니?"

"응, 저것 봐."

새로운 쓰레기를 찾아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고 싶었지만, 한 동안 함께 쓰레기를 지켜봤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볼까?"

"그래."

한참 강물을 보다가 아이들 동의를 받아,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쇼핑센터로 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끼어 잠깐 기념품들을 구경했다. 아이들은 기념품의 가격들을 확인하며 연신 “우와, 비싸다”를 외친다. 뭐라도 기념이 될만한 것을 사기 위해 고르는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의 외침은 괜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갖고 싶다’, ‘사고 싶다’ 고 말하는 대신 “우와, 비싸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고마우면서도 그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져 아이들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마리나베이에 와서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다면 안내 책자에 나온 마리나 배라지를 가 볼 생각이었다. 쓰레기를 볼 때는 아이들 얼굴에 생기까지 돌더니, 기념품을 구경하다 다시 출발하자고 하니 좀 힘든 기색이다. 그래서 앉아서 좀 쉬고 책도 좀 볼 겸 도서관을 가기로 했다.


에스플래나드 다리(Esplanade Bridege)를 건너 도서관에 들어갔다. 도서관 건물에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들을 잠시 둘러보고 도서관 곳곳을 살펴본 후, 아이들은 자신들이 볼 만한 책이 있는지 찾아봤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아이들 책상도 있고 꽤 많은 공간이 아이들 책으로 꾸며져 있는데, 에스플래나드 도서관은 한편에 소파가 놓여 있지만 아이들용 책상 의자가 따로 없고, 아이들 책도 찾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의 의자와 가구들로 차분한 분위기의 도서관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힌 후, 포트캐닝을 향해 갔다.


포트캐닝을 향해 가는 길에 높은 기념비가 보여 멈춰 섰다. 뾰족한 기념비가 궁금해 가까이 가서 읽어보니 '일제시대 민간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라고 적혀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읽어보고 싶었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아이들을 세워두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서 아쉽지만 다시 출발했다. 다시 걸어가는 길에 커다란 분수가 보인다. 분수가 보이자 아이들은 분수 앞으로 달려간다. 단을 높이 올려 만든 분수라 발을 담글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은 가까이 다가가 옆으로 튀는 물방울로 잠시 더위를 식혔다. 세인트 앤드류 성당, 싱가포르 경영대학과 법학 대학에도 잠시 들렸다. 소방서를 지나 드디어 포트캐닝에 도착했다.


포트캐닝에 올라 잠시 불어오는 바람도 느끼고, 그네도 탔다.

놀이터 그네가 아닌 바닥에 세워놓은 정원용 그네라 흔들 흔들 약하게 움직이니,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아주 잠깐 타본 후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가자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한 마지막 목적지, 국립도서관을 향해 갔다.

실내에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굉장히 크다.

국립도서관에 오기 전, 어린이 도서관이 잘되어 있다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책자에서 봤다. 아이들도 나도 기대하고 어린이 도서관을 찾아다니는데 안 보인다. 어디지? 한참을 찾아다니는데, 분명 여기일 것 같은 자리에 표지판을 발견했다. "공사 중, 2017년 1월 20일 재개장 예정"이란다. 어린이 도서관에 대한 기대로 아이들은 힘들어도 걷고 걸어왔기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예상한 일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오늘도 그런 경우다. 아쉽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기에 꽂혀 있는 몇 개의 어린이책 중 끌리는 책 몇 개를 꺼내 봤다.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기대한 어린이 도서관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미련은 남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즐겼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함께 아이들과 걷고 보고 느꼈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각자 눈에 들어오고 느낀 것은 달랐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지금, 여기, 가능한 행복을 선택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래 걸어 도착한 곳이 우리 예상과 다르더라도,

매 순간 느끼고, 채우는 오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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