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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Oct 17. 2019

지금, 여기, 우리를 봐야 하는 이유

오롯이 현재를 누리고 싶어 떠난 한달살이

‘죽는구나’를 생각하게 됐을 때, ‘포기’가 아니라 ‘뭘 해야 하지?’를 고민했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이 아팠다.

위장약과 빈혈약, 보약 등등 내가 꾸준히 약을 먹기 시작한 나이는 5살 때부터인 것으로 기억한다.

온몸이 저리고 자주 쓰러졌다. 늘 어지럽고 아팠기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픔은 그저 내 일상이었다.


19살, 대학 1학년.

가장 찬란하게 빛날 그 시기에 암 추정 진단을 받았다.


20살, 안면근육 마비로 입이 돌아갔다.

신체 나이는 60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1살, 앞이 캄캄했다. 눈이 안보였다.

뇌빈혈로 시신경에 마비가 왔다. 학교를 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하고 했다.


죽는구나.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드니 억울했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지 못한 것이 속상했다.

대학 가면 할 수 있다고 미룬 일들인데, 대학을 다니기도 힘들다니.

결혼할 때 부모님이 허락하는 사람 만나겠다고 남자 친구 한 번 만나지 않았는데, 손 한번 못 잡아볼 수도 있다니.

세상에 내 이름을 남기기는커녕 도움 한번 주지 못하고 이렇게 끝날 수 있다니.


죽음을 생각하며 눈을 감을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아쉬움으로 남을 일들을 생각해 봤다.

주어진 시간에서 운명만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다.


내일로 미루며 살았는데,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중으로 미뤄두면 '죽는 순간까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범법행위 등 나쁜 짓이 아니라면


일단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생각한 만 19살, 가장 아쉬웠던 3가지를 했다.

대학을 조기 졸업했다. 이 세상에 의미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 시민단체에서 봉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날 이후, '지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하려고 한다.

그런데, 또다시 일상에 젖어, 이런저런 이유로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일들을 미뤄왔다.

 

비평준화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중학생 때 야간 자율 학습을 했다. 밤에 집에 가는 길,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좀 더 여유롭게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했다. 저녁 시간 운동장 지는 해를 보며, 오묘하게 물드는 하늘을 하염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오롯이 아이만을 봐주는 엄마'


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계속 미뤄왔다.

아이에게도 '이것만 끝나면'이라는 말로 계속 '기다림'을 강요했다.

아이가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벌써 유년기를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언젠가'로 미루는 동안, 내 몸은 비문증, 어깨 근육 파열, 골반 관절염과 족저근막염 등을 얻고 숨 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아이가 이제 나를 바라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평생 지는 해를 바라보지 못하고, 바람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 순간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시간

보드라운 아이들의 감촉

조금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지금 나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나는 어쩌면 작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 중요한 문제, 내가 존재하는 핵심에는 언제나 나의 아이들과 가족이 있다.


나와 아이들의 싱가포르 한달살이는 미루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미루면 안 되는 것들, 아이들과 나의 지금의 순간을 더욱 깨닫게 된 여정이었다.


엄마로서, 그리고 내 삶의 주체로서 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던 우리의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던 시간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했던 나와 아이들의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기록으로 남긴다.


앞으로도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매달리며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우리를 생각하면, 좀 더 빨리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선택하며 나의 길,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 오롯이 우리의 삶을 살고 싶다.


다양한 가치관의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본인들에게 중요한 것들을 바라보고 행복하길 바라며, 싱가포르에서의 나의 성장 일기, 우리의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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