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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Sep 11. 2019

엄마와 아이들의 “해야할일”, “해야만 하는 일”

DDay -171, 무식한 실수로 시작된 한달살이 도전

"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넓은 수영장에서 밝은 햇살을 맞으며 수영을 즐기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 결제 규정을 제멋대로 이해하고 시작된 약 3년 전의 이야기이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뭐 샀어? 120만원 결제가 됐는데?”

“아... 내가 싱가포르 집 그냥 본 거야. 돈 나가는 건 아니야. 내가 체크인하면 나가는 거야”

“그래? 그런데 카드 결제 문자가 왔어.”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현재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남편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남편에서 문자가 간다.

남편의 전화를 받고 숙소 예약 사이트를 들어가서 다시 읽어봤다.


헉!  이런...!


예약자가 숙소에 체크인을 하면 호스트에게 돈을 준다고 적혀있는 부분을, 넓은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아이들과 놀 생각만으로 행복에 젖어 카드결제가 체크인이 될 때 될 거라고 어처구니없이 제멋대로 이해하고 저지른 실수이다.


집 구경을 하게 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미국으로 1년 주재 근무를 가게 된 둘째 유치원 친구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는 '2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뉴욕에서 한 달 살 수 있다'라고 하였고, 그 말이 진짜 가능한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이들과 오롯이 지내기'를 실행하고 싶다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미루던 간절한 꿈이 정말 200만원만 있으면 실현 가능할지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집 구경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 2살, 3살 때, 아이들과 같은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 엄마가 놀이터에서 "아이들 학습지 뭐해요?"라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대답했다. 그 아이는 1살 때부터 한글 학습지와 수학 학습지를 했다고 한다. 영어유치원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연년생 두 딸에게 우리나라 아이들의 당연한 성장과정처럼 여겨지는 한글 학습지 하나 시키지 않았다. 한글은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 규칙과 함께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습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시키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해야 한다고 하는 학습의 과정들을 듣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을 뒤쳐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나 때문에 아이들이 정상적인 지능 개발이 안 되는 건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거기에 더해 엄마가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고, 알아서 준비하는 눈치 빠른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우리 아이들은 한 살 때부터, 엄마가 회사에 가기 전에 어린이집에 가야 해서 새벽 6시부터 부스스 깨어 등원 준비를 했다. 회사에 눈치 보며 엄마가 정시 퇴근을 해도 우리 아이들은 가장 늦게 하원 했다. 아이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의 선택으로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집에 왔다.

5살, 6살 되어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어린이집은 나이 제한으로 더 이상 다닐 수 없어, 유치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맞벌이라 어떻게든 보내야 하는데, 여기저기 알아보고 지원한 유치원 추첨에서 모두 떨어졌다. 떨어진 유치원 중 꼭 들어가고 싶었던 유치원에 대기가 되어 입학했다. 유치원까지 20분 정도 걸어가는 길에 아이들은 보도블록 사이에 핀 꽃들을 보며 자주 발걸음을 멈추었다. 회사 출근을 위해, 나는 늘 아이들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늘 바쁜 마음으로 멈춰 선 아이들을 끌고 유치원에 제일 먼저 등원시켰다.


그런데 어렵게 들어간 유치원이 폐원 예정 통보를 받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농장에서 뒹굴며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주던 유치원이, 30여 년 전 교회 건물을 증축하면서 만들었던 문제로 폐원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 의지가 아닌 나의 선택으로 아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더 이상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상황을 강요하기 싫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유치원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아이들을 무조건 보낼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행복한 마음을 지켜주는데 노력하고자 나는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을 한 상태이지만, 온전히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유치원 폐원을 막고자 매일 밤낮으로 회의하고, 7년째 부담을 주던 박사 논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조금만 기다려줘’를 강요하게 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는 가능한 논문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밤과 주말에는 거의 꼼짝 않고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엄마가 이거 끝내고 너희만 봐줄게’로 아이들과 나 스스로에게 ‘기다림’을 강요했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원래 있던 저혈압에 더해 족저 근막염과 골반 관절염, 어깨 근육 파열, 비문증 등등 온갖 병을 얻고,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중에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박사과정 수료를 위해 시험 준비를 하며 둘째 아이 출산을 했다. 잦은 출혈과 기절에도 불구하고 회사 출근과 박사 과정, 육아 등으로 나는 쉴 틈이 없었다.    덩달아 아이들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엄마 배 밖으로 나와서도 여유롭게 숨을 쉬어 보지 못했다. 늘 빨리빨리 서두르도록 채근당하며 여유를 부리지 못했던 아이들과, 아이들의 선택에 따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해’라고 바라보는 부담스러운 시선이 없는, 낯선 곳에서 진정한 자유와 여유,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엄마와 아이로, 오롯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품게 되었다.


우리 셋이 현실적으로 어디서 지내볼 수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곳이니 만큼 무엇보다, 안전한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정아버지 칠순으로 다 함께 여행을 가 봤던 싱가포르가 떠올랐다. 싱가포르라면, 치안도 괜찮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 차 렌트 없이 여기저기 찾아다니기 괜찮을 것 같아 낯설지만, 아이들과 한 달 살아보는데 덜 두려울 것 같았다.  이런 마음으로 싱가포르 집을 구경했다.


‘언젠가 한다면 여기서 한 번 해볼까’라는 막연한 한달살이 동경의 마음으로 햇살 가득 품은 넓은 수영장이 인상적인 집을 구경했다.

그런데, 구경 한지 30분도 채 안돼 카드 결제가 되다니!!     

너무 당황스러워 어지럽고, 머리가 새까맸다. 남편의 전화를 받고 바로 취소 버튼을 눌렀다.     

 

헉! 그런데, 또 이상하다.      

취소했다. 취소 버튼을 눌렀는데, 환불, 취소 결제 문자가 안 온다!     


숙박비 규정을 이제야 읽어봤다.

28박 이상은 장기 숙박으로 한 달치 숙박비가 보증금으로 되어 환불이 안된다고 적혀있다.

육아휴직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내가 1시간도 안 되는 사이 120만 원을 그냥 날려버리게 되니 앞이 캄캄했다. 업체에 전화해 어처구니없는 나의 상황을 얘기하며, 사정했다.

한 시간도 안돼 결제와 취소가 이루어졌어도 한 달 숙박비를 지불하는 것이 규정상 맞긴 하지만, 업체에서도 결국 나의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해해 주고, 다시는 이런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약속과 함께 취소를 취소하고, 예약상태로 바꿔줬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하게 된 예약으로,  마침내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꿈을 실행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7살, 8살이 되고 나서 비로소, 사회적으로 짐지우고 있는 ‘해야만 하는 일"들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오롯이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를 실행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음에도,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아이들과 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다는 꿈의 실현이 어처구니없는 무모한 숙소 결제 덕분에 눈 앞에 다가온 것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루 24시간 온종일 함께 보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할 기회가 오게 됐다!!

논문 때문에 좌절하고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첫째가 7살 때 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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