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네 Sep 16. 2019

백수 엄마, 한달살이 가능할까?

항공권 예약과 사라진 숙소

3일 전, 31일 치 싱가포르 숙소비를 결제했으니, 결제한 숙소비를 날리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한 달 살기를 해야겠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한 달 살기를 하지?


싱가포르에서 두 아이와 함께 셋이서 한달을 살려면 얼마나 들지?

숙소 결제를 저지르게 되어 한 달 살기를 실행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고 나서, 이제야 현실적인 예산 점검을 했다.


나는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을 하면 나에겐 수입이 없으니, 육아 휴직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의 개인적인 소비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리고 육아휴직 들어오기 전, 미리 예상되는 큰 지출, 나의 박사 과정 마무리를 위해 예상되는 경비에 대하여 준비를 해 놓았다. 하지만, 한달살기는 예상에 없었다.


한달살기는 예상에 없었지만, 이왕에 결제된 숙박비를 유용하게 쓰고 싶었다.

주변에서 정하는 "해야 할 일", "해야만 하는 일"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낯선 곳에서, 아이들을 오롯이 바라봐줄 수 있는 그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한달살이를 위해 가계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서 의지하거나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된다면, 남편의 희생(?)으로 가게 되는 한달살이가 된다면, 미안한 마음에 본전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좀 더 보람된', '좀 더 알찬'이라는 기준을 만들고, 또다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아이들을 위한 이번 여행을 온전히 나의 힘으로 실행하고 싶었다. 좀 더 부담에서 자유로운 한달살이를 위해 내가 충당할 수 있는 예산이 되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박사 과정 마무리를 위해 예산을 실제 소요 비용보다 보수적으로 잡아 두어, 소비하는 여행이 아닌 일상을 느끼는 한달살이는 가능할 것 같았다.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한다면, 모아둔 이 예산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싱가포르에서의 한 달 살이가 가능할 것 같았다.  

 

내가 숙소 결제를 하고 깜짝 놀랐던 남편, 싫은 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외벌이라 은근 비용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을 것 같다. 은근 비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남편에게 나의 지불 능력을 알려주고, 싼 비행기 표를 같이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남편이 국적기 예약을 권유했다.


"국적기는 비싸잖아?"

"국적기 말고, 좀 저렴한 항공기 없어?"

내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한달살기를 하려면 아끼고 아껴야 하기에 국적기 예약을 권유하는 남편의 말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알아서 한달살기 비용을 지불한다고 했더니, 남편이 너무 태평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좀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국적기를 권유한 이유를 들어보니, 아끼겠다고 다른 항공기를 찾아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살이 숙박을 예약한 때가 딱 방학이 시작되는 다음 날, 주말로 성수기라 국적기와 저가항공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였다.

아직 만 6살, 7살인 두 아이를 엄마 혼자 데리고 가는 첫 도전인데, 줄 서고 짐 부치고... 하나하나의 절차가 쉽지 않고 버거울 거라며, 처음부터 지칠 수 있다는 것도 다른 이유였다. 결국 최저가 항공권보다는 조금 더 주긴 했으나 남편의 의견에 따라 국적기로 예약했다.     


한달살이 숙소 체크인을 하기 168일 전, 항공권 예약을 했다.

내가 꿈꾸던 한달살이의 모습은 무언가를 하는 여행이 아닌,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온전히 아이들과 느끼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따라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싱가포르에서 한 달간 머물 집과 비행기 표를 예약했으니, 나의 한달살이 준비는 끝났다. 이제 진짜로 가기만 하면 된다!!


만 6살, 7살, 두 딸과 싱가포르에서 한달살이를 위한 집과 항공권을 예약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 출발 95일 전이다.


그런데... 숙소가 사라졌다!!


한 달치 숙박비를 지불하고, 항공권 결제까지 했으니,

방학식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한달살이를 간다는 사실은 정해졌다.  

   

그런데 한달살이 3개월 전, 숙박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숙소 중개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호스트의 일방적인 사유로 숙박 예약이 취소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만 남아있었다.      


숙소와 항공권 예약 외에 한달살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간다고 생각하고 떠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숙소가 사라지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중개 업체에 전화했다. 호스트가 집을 갑자기 매매하게 되어 나에게 예약한 기간 동안 렌트를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호스트가 집을 팔았다니, 예약한 집을 이용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제 어떡하지?     


급하게 집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사라진 싱가포르 숙소 모습

지난번 30분 만에 결제가 되어버린 숙소는 사실, 넓은 수영장 사진만 보고 결정된 것이었다.

결제가 이루어진 뒤, 한달살이를 어떻게든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서야, 구글 지도를 통해 공항에서 들어가는 길, 시내와의 거리, MRT 역, 공공 도서관과의 거리 등을 살펴보았다. 시내하고도 거리가 꽤 멀고 MRT역은 근처에 없고, 공공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은 갈아타야 하는 불편한 곳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결제해 버린 나의 실수이니 그냥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한달살이 하는 모습을 꿈꾸며 있었는데, 그 숙소가 취소되었다.     


숙소가 취소되었지만, 항공권 예약을 했으니, 숙소를 다시 찾아야 한다.

이번에는 위치를 확인하고 이전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격이랑 조건이 맞는 집을 발견하면 지도로 위치를 확인하고, 대중교통 접근성, 놀이터, 도서관 위치도 확인하며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수영장까지 있으면서, 나의 예산에 맞는 집이 없었다.


원래 예약했던 숙소  “수영장”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아빠와 떨어지지만 즐거울 수 있을 한달살이를 꿈꾸게 했기에,  “수영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작은 욕조 스타일의 수영장이라도 있다면 감사하기로 했다.


처음 숙소의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집은 우리가 가는 기간 예약이 이미 다 차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기간 예약이 비어있는 집들은 처음 숙소비의 3배 이상 되는 집들로, 나의 예산을 너무 초과하기에 예약을 할 수 없었다. 시내와 가까울수록 렌트비가 비쌌다. 시내와 가까운 곳인데 좀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은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곳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를 한다는 것은,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나에게는 눈치를 봐야 하는 부담되는 두려운 일이었다. 집은 작더라도 아이들과 나, 이렇게 셋만 있을 수 있는, 셋만의 휴식처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 시내와 약간 거리가 있더라도 찾아보았다.


30분 만에 결제했던 첫 집을 잃고, 집을 구하기 위해 하룻밤을 꼬박 새워 찾아보았지만, 우리가 갈 집이 없다.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백수 엄마에겐 처음부터 무리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이번 한달살이 이대로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달살기, 다시 꿈꿔도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