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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Nov 12. 2019

분수야 분수야, 우리 소원 들어주라~

16일 차 부의 분수

“얘들아,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가 있대.”

“우와, 우리 가보자!”


싱가포르 안내 책자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 ‘부의 분수 foundation of wealth’에 대해 읽었다. 너무 가보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 부의 분수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점심 메뉴로 어제 우연히 발견해 너무나 반가웠던,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김밥을 해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밥김이 있다. 그리고 냉장고에 싱가포르에서 산 맛살과 치킨텐더가 있다. 찬장을 열어보니 유기농 소금과 참기름이 있다.

이 재료들만으로 김밥을 쌌다.

치킨텐더와 맛살만으로 싼 김밥

부실한 재료로 싼 김밥을 아이들은 감사해하며 너무 잘 먹는다. 아이들이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줄 몰랐다. 한국의 맛과 조금만 닮아 있어도 너무 감사해한다. 16일,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익숙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소중함을 충분히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부의 분수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MRT를 타고 시티홀역에서 내렸다. 개찰구에서 나오니 바로 쇼핑몰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다, 눈에 빵집이 들어왔다.

브레드토크 빵과 함께

“우리 빵 먹고 갈까?”

"응"

예쁜 모양과 고소한 빵 향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딱 먹고 싶은 것 두 개씩만 고르게 했다.

그 자리에서 맛있게 다 먹고, 기분 좋게 다시 출발했다. 곳곳에 음력설을 기념해 꾸며놓은 조형물들이 많다.


"우리 구경하고 가자."

새해 복과 안녕을 기리며, 사진을 찍고, 출구를 찾아 지상으로 나왔다. 높은 타워들과 큰 도로뿐, 분수가 안 보인다. 다시 계단으로 내려갔다.

구글맵을 켜고 “부의 분수”를 목적지로 설정한 후 지하도 안을 걸어갔다.

‘“여긴 뭐지? 우리 구경하고 갈까?”

실내에 자동차들이 있다. 자동차 모양도, 자동차에 새겨져 있는 마크도 처음 본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목이 말라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음료수 부스에 갔다.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을 찾고 있으니, 직원이 뭘 마실지 물어본다.

핫초코와 커피를 주문했다. 무료란다.

갑자기 음료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무료 음료수로 에너지 충전하고 다시 부의 분수를 찾아 나섰다. 실내에서는 구글 지도가 더 방향 파악이 안되는 것 같다. 이정표에는 ‘부의 분수’가 드문 드문 적혀있다. 특히 이정표가 필요한 갈림길에는 표시가 없다. 결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찾아 갔다. 좁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분수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뭐지?’

사람들이 줄 선 곳을 살펴보니, 유리창 밖으로 분수 같은 것이 보인다.

“여긴가 보다. 줄 서자!”

사람들 뒤로 줄 섰다. 줄 맨 앞에는 유리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서 있다.

‘입장료를 받는 건가?’

궁금해서 아이들에게 가서 확인해보고 오게 했다.

앞을 살펴보고 온 아이들 표정에 흥분감이 묻어있다.

아이들은 사람이 나오면, 그 숫자만큼 들어가게 해서, 적정한 인원이 분수에 들어가 소원을 빌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침 흠뻑 젖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분수 만날 기대감이 더욱 커진 것 같다.

소원빌며 부의 분수를 도는 아이들

드디어 우리 차례다. 유리창뿐만 아니라 바닥은 물로 흥건하다. 차갑게 튀는 물에 웃으며 신나게 돌다 보니 소원은 정작 제대로 못 빈것 같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더 돌고 싶었지만 “딱 3바퀴”를 돌아야 소원을 들어준다니, 아쉽지만 그만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리틀 인도’로 정했다.

육교 위에서

또다시 구글맵을 켜고 ‘리틀 인도’ 가는 길을 검색했다.

우선 건물 밖에 나가는 것이 문제다. 실내가 넓고 출구도 많다. 일단 나왔다. 인도가 없다. 차도뿐이다. 다시 들어가 다른 출구로 나왔다.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찻길 밖에 없다. 건물 안에서는 방향을 찾기가 어려워 아이들과 함께 차 옆으로 조심조심 건물 주위를 돌았다.


두 차선 앞에 육교가 보인다.

‘저긴 어떻게 가지?’

아무리 둘러봐도 횡단보도가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차들 사이를 건너 육교 위로 올라갔다. 차 중심인 것 같다. 우리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없는 건지, 몰라서 우리만 불편감을 느끼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일단 가는 길의 방향을 잡았다. 육교에 올라오니, 막막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넓은 찻길 위에 놓인 높은 육교가 흔들린다. 아찔하지만 육교 외곽에 화단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 예쁘다.


육교를 내려와 ‘리틀 인도’를 찾아가는 길, 부기스 스트리트를 만났다. 10년 전, 아이들 없이 혼자 여행 왔을 때 한 참을 구경했던 곳이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보다는 규모가 작은 듯 하지만 오밀조밀 가게들이 모여있어 구경거리가 결코 적지 않다. 보물을 찾듯, 아이들과 골목골목 구경했다.

부기스 스트리트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가게를 지나 한 참을 가다 뒤를 돌아봤다.

아이들이 없다.

‘어디 갔지?’

아찔하다. 이 좁은 골목골목을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뒤돌아 왔던 길을 되짚어 나왔다. 한 명 한 명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사람들 얼굴을 살폈다.

없다.

좁은 샛길을 나와 아이들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가운데 통로까지 왔다.

‘어디 있는 거지?’

아이들과 함께 구경했던 장난감 가게 앞에 이르렀다.

장난감을 구경하는 아이들 무리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있는 것 같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할까 봐 가까이 다가가 봤다.

넋을 놓고 장난감을 보고 있는 아이들, 어, 우리 아이가 맞다.

‘다행이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아이들 잃어버려 까마득한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찾아다녔는데, 장난감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태평한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난다.

“얘들아, 너희는 엄마 잃어버린 줄도 몰랐지?”

아이들을 부르며 말하자, 그제야 장난감에서 고개를 돌려 본다.

“아니, 알았어. 엄마가 안 보인다고 동생이 울려고 하길래 내가 울지 말라고 했어. 엄마가 잃어버리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했잖아. 그리고 엄마 없는 애처럼 굴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엄마가 있는 것처럼 동생이랑 장난감 보는 척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엄마 잃어버리면 당황할 줄 알았는데,

엄마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한 눈 팔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너무 야무지다.

위기 대처 능력이 엄마인 나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찾아서 다행이다.

가슴이 철렁했는데, 당황해 허둥지둥 헤맨 엄마에게 아이들이 제대로 한 수 가르쳐 준 것 같다.

복잡한 부기스 스트리트

이번엔 내가 앞장서지 않고, 아이들을 앞세워 구경했다. 아이가 멈추면 나도 멈췄다. 우리 셋은 50cm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더 꼭 붙어 다녔다. 소유욕 억제하며 많은 물건들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주토피아와 겨울왕국 슬리퍼 한 개씩만 샀다. 1달러짜리 과일 주스를 입에 물고 다시 ‘리틀 인도’를 향해 갔다.


토요일이기도 하고, 음력설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엄청 많다.


복잡한 거리를 헤치며 ‘리틀 인도’를 찾아가는 길, 아이들이 먹던 과일주스를 내게 준다.

“왜? 맛없어?”

“아니.”

“그럼? 화장실?”

“응”

화장실이 급해졌나 보다. 보이는 건물 안으로 무조건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 정신없이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에 사람이 엄청 많다. 다른 층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절박한 표정의 아이들, 무사히 볼 일을 마치자마자, 내 손안에 있던 과일 주스를 다시 가져간다.

새로 산 슬리퍼로 갈아신고 ‘리틀 인도’ 찾아가는 길

우리는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하며 ‘리틀 인도’를 찾아 나섰다.

지도 앱상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찻 길만 건너면 인도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리틀 인도’인 것 같다. 골목에 들어서니 화려하게 꾸며진 길 건너편 복잡했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이다. 음력설과 상관없는 듯 거리는 한산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가게 앞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은 다 남자다. 그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의 우리 셋, 그들은 한적한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이방인을 구경한다. 우리를 따라 그들의 시선이 옮겨지는 게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엄마, 우리 그만 가자.”

“우리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보자.”

우리를 따라다니는 시선을 눈치 보며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어둑해진 시간, 남자들만 있는 거리를 걷는 것이 나도 부담스럽지만, 인도의 모습을 조금은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을 끌고 좀 더 들어가 봤다.

‘리틀 인도’ 이슬람 사원

달과 별 표식이 보인다. 이슬람 사원인 것 같아 가까이 가보았다. 출입구를 찾다가 안에서 나오는 한 아저씨와 마주쳤다.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얼른 우리를 지나쳐 간다.

“들어가 볼까?”

“아니, 엄마, 우리 그만 가자.”

온 김에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고, 종교적인 장소인데 예법도 모르면서 허락도 안 받고 들어가는 것은 실례인 것 같기도 해서 앞에서 사진만 찍기로 했다. 아이들은 사진 찍는 것도 눈치 보이는지 얼른 찍고 가자고 한다. 원래 예상했던 ‘리틀 인도’의 모습을 느끼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한적한 거리가 어두워지니 무섭기도 하다. 그대로 집에 돌아가기는 아쉬워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저녁 7시부터는 부의 분수에 조명이 들어온다는데 가서 보고 싶니?”

“응”

몇 시간을 계속 걸어 다녀, 아이들이 힘들다고 할 줄 알았는데, 흔쾌히 “응”이라고 해주니, 오히려 당황스러워 다시 물어봤다.

“우리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하는데, 갈 거야?”

“응, 보고 싶어.”

“그래, 가자”

낮에 부의 분수 앞 마트에서 사서 먹다 남은 팝콘을 꺼내 들고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분의 분수에 갔다.

밤에는 부의 분수 주변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문이 잠겨 있다. 분수가 아래에서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나온다. 분수 옆 계단을 이용해 위로 올라와 내려다봤다. 아이들은 큰 팝콘을 다 먹을 때까지 부의 분수를 지켜봤다.

‘아이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분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벅찬 감사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빌었다.


‘분수야 분수야, 우리 셋이 지금처럼 서로 느끼며 평생 함께 하게 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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