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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Nov 07. 2019

예상한 대로 되지 않는 우리의 길

15일 차 미술관 나들이

싱가포르 관광청에서 발행한 안내 책자에서 정보를 봤다.


금요일 저녁마다 싱가포르 미술관에 무료입장 가능하다.


오래 미술관에 머무는 것은 아이들에게 지루할 수 있으니, 무료로 입장 가능한 시간에 미술관에 가기로 정하고, 저녁까진 집에서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집에 과일을 다 먹어서 마트에 다녀올까 했는데, 아이들이 둘이서 사와 보겠다고 한다.


골목길을 나오면 두리안만 파는 가게가 있고 그 옆에는 여러 과일을 파는 가게가 있다. 지나다니면서 자주 봤던 곳이기에 아이들에게 5 달러를 주고 오렌지를 사 오게 했다. 첫째는 지폐 한 장을 지갑에 넣어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둘째는 집 열쇠를 손에 꼭 쥐고 집을 나섰다.


30여분이 지난 후, 둘이 돌아왔다.

첫 심부름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을 연 도도자매
엄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부르는 모습에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이 되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우리가 오렌지를 고르고 돈을 냈는데...”

“냈는데? 돈이 모자랐니?”

“아니, 돈 남아서 거슬러 왔어. 그런데...”

“그런데...?”

“아저씨가 이거 주셨어.”


아이들 손에는 귤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심부름을 하고 선물까지 받아 묘한 기분이 들었나 보다.


아이들은 덤으로 받아온 귤의 껍질을 먼저 깠다. 쭈글쭈글하고 퍽퍽한 느낌의 껍질을 벗겼다. 우리나라 귤과 비교해 수분이 적고 덜 달달했지만 아이들은 둘이서만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 오고 받아온 덤이라 그런지 뿌듯함에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지 한 알 한 알 입에 넣을 때마다 웃음 가득하다.


점심은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한국 공항에서 사 온 김치, 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보름도 안돼 다 먹었다. 김치 없어도 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김치 꼭 있어야 한단다. 할 수 없이 어제 마트에서 싱가포르에서 만든 김치를 사 왔다. 달달하고 특이한 맛이다. 김치 타령하던 아이들도 한 조각 먹더니 못 먹겠다고 한다. 비싸게 주고 산 김치를 안 먹기는 아까워 볶았다. 그리고 스팸과 달걀을 넣고, 구운 김을 얹었다. 아이들이 최고의 맛이라며 너무 잘 먹는다. 한국 돌아가면 또 이렇게 해달라고 한다. 과연, 한국 가서도 잘 먹을까? 김치가 부족하니, 재료가 부족하니 그 가치가 더 빛나는 것 같다. 아이들, 정말 한국에서와 다른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밥 잘 먹긴 했지만, 김치에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진 않았다. 여기선 김치 한조각도 정말 감사하게 먹는다.

아이들이 싱가포르에서 맛있게 먹던 허연 김치볶음밥

아이들의 새로운 도전을 성공하고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오늘의 목적, 공짜로 미술관 관람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미술관 무료 관람만 하러 외출하기엔 좀 아까워서 무료 관람 2시간 전 차이나타운에 먼저 갔다. 차이나타운에는 아이들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경거리들이 많다. 다가오는 음력설을 기념해 거리 곳곳은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다가오는 닭띠해를 기념한 전등

화려하게 꾸며 놓은 복잡한 도로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화장실이 급하다. 화장실을 찾아 쇼핑몰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길, 아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떡볶이 그림이 있었다. 간절한 아이들 눈 빛을 무시할 수 없어 가게 안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박스가 쌓여있는 테이블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한국에서라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을 11달러짜리 떡볶이와 김밥을 아이들은 먹으며 정말 행복해한다. 어느새 아이들은 다 먹고 아쉬워하는 눈 빛을 보낸다. 두 번 시키기엔 아까운 양과 맛이다. 아이들도 엄마 마음을 아는 것 같다. “엄마, 비싼데 사주셔서 감사해요. 진짜 맛있었어요.”라고 말하며 가게를 나선다.

11달러짜리 떡볶이와 김밥을 먹는 도도자매

어느새 어두워졌다. 클라크키의 예쁜 야경을 마주치게 됐다. 반짝반짝 불빛이 강물에 반사돼 너무나 예쁘다.

클라크키의 야경

드디어 싱가포르 미술관에 도착했다.

싱가포르 미술관 앞에서

폐장 30분 전이다. 입장하려 하니, 직원이 표를 사란다. 관광청에서 발행한 책자에 적힌 “금요일 저녁 무료입장”을 보여줬다. 원래 무료인데, 현재는 특별전이 진행되어 무조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단다. 미술관 목적으로 외출을 했지만, 폐장이 3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20달러를 주고  입장권을 사긴 아깝다. 외국인 관광객 2명도 우리처럼 무료 관람 혜택을 찾아왔다. 그들은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아침부터 아이들과 계획했기에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며 어찌할지 고민하다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엄마, 미술관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다음에 와요.”

“그럴까?”


싱가포르 미술관

미술관을 목적으로 나오긴 했지만, 급하게 들어가 쫓기듯 나오는 것보다 아이들 말대로 다음에 다시 오는 게 나을 것 같다. 싱가포르 미술관 외부를 구경한 후 걸었다.

미술관 문이 닫힐까 봐 급하게 걸어왔다.
그런데 목적이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정지 화면처럼 느껴진다. 고적한 거리를 눈에 담으며 걸었다. 한 참을 걷다 MRT 역을 발견해 집에 돌아왔다.


우리가 의도한 외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리워하던 떡볶이와 김밥을 먹었다.

평화롭게 빛나는 야경을 담을 수 있었다.

고적한 싱가포르 밤거리를 함께 걸었다.

설레는 마음 간직하고 집에 돌아왔다.


예상대로 되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만나고 느낀다. 오늘의 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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