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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Oct 29. 2019

유니버셜 스튜디오

아이들의 성장, 엄마의 도전

아이들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이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다.

뭐든지 다해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갑자기 몰려오는 무게감과, ‘나 혼자 어른’이라는 두려움에 싱가포르 도착한 첫 날밤 울었다. 그리고 며칠간 내 계획대로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을 때마다 날카롭게 아이들을 다그쳤다. 더 이상 내가 그려놓은 완벽한 엄마인 ‘척’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2일 차 센토사섬 가는 길, 아이들은 놀다가도 안내 방송이 나오면, 귀 기울여 정류장 이름을 듣고 내릴 곳을 알려줬다. 복잡한 푸드코트 안에서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 우리 앉을 자리 찾고 있을 테니 천천히 주문하고 와”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고 내가 할 일을 상기시켜 줬다.


그동안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엄마의 역할’에 빠져 아이들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척’하던 모습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아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정해놓은 ‘엄마 역할’을 하려고 고군분투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엄마인 ‘척’하는 것을 내려놓았다.

그제야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를 업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도와주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조금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아이들은 한 달 경제를 생각해 불필요한 물건 구매를 자제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의견을 제시한다. 낯 선 곳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두려움이나 부담감이 몰려오지 않았을 것 이다. 그러면 아직도 나는 ‘완벽한 엄마’인 ‘척’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환경의 변화로 나는 좌절하게 됐지만, 덕분에 아이들의 성장을 볼 수 있었다. 사고 싶은 것 앞에서 필요성을 고민하고 절제하는 아이들, 주어진 상황에서 즐길 거리를 찾아내고, 힘들지만 참아내며 끝까지 걸어가는 아이들, 서로 의지하며 배려해주는 아이들, 무거운 엄마의 짐을 나눠 들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여행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함께 있는 그 시간 자체가 너무나 설렌다.


가만히 아이들 표정을 보는 것이 나에게 가장 행복하지만 오늘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는 오늘을 위해, 도서관 가서 스토리 텔링 수업만 듣고, 낮잠 자고 수영하며 휴식을 취했다. 어제의 휴식은 아이들 컨디션 유지를 위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 엄마를 위한 이유가 더 컸다.

싱가포르 한달살기 13일차 : 집에서 수영하며 휴식한 도도자매

한달살기 동안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을 정하지 않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음에도 ‘유니버셜 스튜디오’ 가는 것을 첫 엄마 숙제로 정한 것은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기에, 개장 시간부터 폐장 시간까지 아이들 요구에 맞춰 움직일 각오를 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하버프론트 역에 일찍 도착해, 오늘도 여유롭게 걸어서 센토사 섬에 들어갔다.

엊그제 센토사 섬에 가봐서 그런지 아이들은 집에서 MRT역까지, 그리고 MRT에서 내려 센토사섬, 유니버셜 스튜디오까지 척척 길을 잘 찾아갔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입장 시간 기다리는 도도자매

아직 입장 시간이 안되어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렸다가 들어왔다.

아이들은 지도를 펼쳐보며 가까운 어트랙션부터 하나씩

다 탔다.


놀이기구에 타면 안전벨트를 스스로 채운다.


엄마의 각오가 무색하게 엄마는 그저 따라다니고 지켜봤다. 같이 줄을 섰지만, 둘이서 잘 타 주니, 엄마는 그저 아래에서 기다렸다. 아이들 마음에 맞는 놀이기구는 여러 번 탔다.

아직 7살인 둘째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놀이기구는 무서워 했지만 언니의 응원에 힘입어 모든 놀이기구를 다 시도했다. 언니의 오랜 설득으로 두 개의 열차가 교차하는 어트랙션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놀이기구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키가 안돼서 시도할 수 없었다. 둘째보다 겁이 많은 엄마는 첫째에게 혼자 타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첫째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니 내가 계속 못 타겠다고 할 수 없었다.


‘설마 죽겠어?’


하는 마음으로 타기로 했다. 2시간가량 기다렸다. 줄이 줄어들수록 첫째는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긴장하고 겁먹은 엄마를 보고, 마지막에라도 첫째가 혼자 타 주겠다고 해주길 바랬다. 결국 우리 차례가 됐다. 놀이기구에 앉아 하얗게 질린 엄마의 얼굴을 보고, 첫째가 내 손을 잡아준다. 순식간에 놀이기구가 끝났다. 놀이기구에서 내렸지만, 여전히 아찔하다. 첫째는 내 손을 잡고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둘째에게 갔다.

2시간을 혼자 기다린 둘째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엄마랑 언니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지상과 가장 가까워지는 위치에서 고개를 들고 계속 놀이기구를 봤다고 한다. 그러다 동전을 주었다며 내 손에 쥐어준다.


싱글벙글 웃는 첫째,

2시간을 차분히 혼자 기다리며 의젓한 표정으로 맞아주는 둘째, 쑥쑥 자란 아이들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언제 이렇게 컸지?’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면, ‘독립된 자아로 잘 크고 있구나’,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벌써’, ‘이렇게 컸구나’하는 생각에 이 시간이 ‘참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정신 못 차리는 엄마를 배려해 두 아이는 끝날 때까지 놀이기구를 둘이서 타 줬다.

폐장시간이 됐지만, 아직 더 놀 수 있는 아이들은 아쉬움이 남는 눈치다. 아쉬운 마음 조금 달래 보려고 비보시티에서 와플을 사 먹으며 쉬고 있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부부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이들은 와플을 먹다 말고 나를 본다. 노부부는 아이들이 귀엽다며 영어로 말을 걸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한국사람이에요. 아이들이 영어로 말 못 해요”라고 하자, 이제는 나에게 우리나라 정세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리고 경계 없이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삶의 무대로 삼으며 살으라는 말을 한다. 나도 우리 아이들이 고정관념 없이 어디든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 어디에 살든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느낌을 갖고, 소신 있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기억하겠지만,

엄마와 함께한 순간의 느낌도 기억할 것이다.


와플을 먹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겠지만,

와플을 먹으며 노부부와 나눈 순간도 기억하길 바란다.

놀이기구를 타며 느낀 순간의 짜릿함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분수에서 함께 물 튀기며 놀았던 그 순간,

맛집에서 사 먹은 값비싼 음식뿐만 아니라

길거리 음식에 발걸음을 멈추고 눈빛 교환하며 사 먹은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며 살기 바란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고, 서로 도와주려는 배려심이 오늘도 쑥쑥 자란 것 같다. 시도하고 도전해보려는 태도를 보여준 아이들이 기특하고 뿌듯하다. 훌쩍 커버린 모습에 행복하면서도 아쉬운 밤이다.


함께하는 내일이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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